긍정심리학: 쾌락의 쳇바퀴 현상
흉흉한 날들이 계속 되네요
늘 항상 언제나 안전하시길 바라며,
기분 좋은 글로 마음 정화하세요 :)
강아지를 키우기 전 몇 가지 고민에 반드시 답을 내려야 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냄새였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재료를 분간해 내는 개코 남편에게 강아지 냄새는 치명적일 터였다. 냄새에 대한 긴 논의 끝에 우리는 새 가족을 맞이했다.
마롱이와 처음 보낸 계절은 여름이었다. 숨이 넘어갈 만큼 뜨거운 기온이었다.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에어컨을 풀가동한 집에서 종일 뒹굴뒹굴했다. 먹고, 자고, 밀린 드라마를 몰아 봤다.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절전 모드의 잉여 인간이 되어 나른한 오후를 보냈다.
저녁이 되어서야 엉망이 된 집이 눈에 들어오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지개를 켜고 분리수거를 위한 긴 여정을 떠났다. 쓰레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다. 쓰레기 하나 없는 집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다. 에어컨 냄새부터 음식 냄새에 강아지 응가 냄새까지. 오염된 냄새가 집 안 가득 차 있었다. 온종일 이 냄새에 파묻혀 지냈다니, 심지어 개코 남편이 이 냄새를 못 느꼈다니. 우린 왜 강아지 키우길 유예해 온 걸까? 황당함과 동시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갑작스럽게 풍겨 오는 냄새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서서히 퍼지는 냄새에는 차차 익숙해진다. 마롱이가 곁에서 시원하게 응가를 하고, 우린 배달 음식 냄새를 풍기며 식사를 했다. 그 공기를 에어컨이 최선을 다해 순환시키며 집 안 가득 채웠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서서히 길들여졌다. 제아무리 개코 김씨라도 소용없었다. 인간은 냄새에 적응하는 존재인 것이다.
인간이 적응하는 것이 냄새뿐이랴! 두 달 전 나는 무려 반으로 접히는 최신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다. 고가의 신문물을 볼 때마다 뿌듯함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게 녀석은 나를 기쁘고 설레게 했다. 그랬던 휴대폰은 지금 우리 집 거실 어딘가에 덩그러니 던져져 있다. 소파에 툭, 침대에 턱,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일이 부지기수이고 강아지가 이따금 폰을 밟아도 신경 쓰지 않는다. 더 이상 이 친구는 내게 소중하고 특별한 기분을 선사하지 못한다. 적응하고 만 것이다.
투룸에서 아파트로 이사 오던 날, 인생의 목표를 이룬 듯했다. 하지만 이제 자가가 아닌 전세라는 사실에 불평한다. 적어도 50평은 되는 ‘내’ 집이 아니고서야, 멋스럽게 리모델링한 구옥이 아니고서야 성에 차지 않는다. 새로 산 옷은 한두 번 입으면 다시 입고 싶지 않고,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두 끼를 연달아 먹으면 물린다. 인간은 이다지도 쉽게 익숙해지고 금세 싫증을 내는 존재다.
좋은 조건을 가졌다고 달라지는 건 아니다. 혜성처럼 떠오른 아이돌 스타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이른 나이에 데뷔해 추억거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원이 있다면 친구들과 분식집에 앉아 떡볶이 같은 걸 먹는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떡볶이를 먹으며 그 장면을 보던 나는 젓가락을 탁 내려놨다. 그가 입은 옷은 명품이고, 그가 타고 돌아갈 차는 외제 차이며, 그가 사는 집은 한강이 보이는 리버 뷰 프리미엄 아파트였으니까. 떡볶이 같은 거? 내가 먹던 떡볶이 다 줄 테니 나랑 바꾸든가!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대다수가 주춤한다. 거창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첫사랑과의 결혼, 한 달간의 해외여행, 내 집 마련, 사업 성공, 로또 당첨, 자녀의 인서울 대학 입학…… 우리는 대단한 소망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행복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인생 최고의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좋다. 그런 일도 분명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하지만 일생에 한번 이루어질까 말까다. 이런 행복을 꿈꾸다 보면 평생 한번도 행복하지 못하고 인생의 막을 내릴 수도 있다. 물론 부단히 노력해 기어이 해내기도 한다. 혹은 얻어걸려 행복을 손에 쥐기도 한다. 그럼 이제 영원히 행복할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동화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행복을 마주한 순간에는 황홀감에 빠진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적응하고 만다. 붕 떠올랐던 기분은 금세 제자리로 다시 돌아간다.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 현상이다. 기분은 높거나 낮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쳇바퀴처럼 빙빙 돌아 기어이 원상 복귀한다. 우울하던 사람은 다시 우울한 원점으로, 유쾌하던 사람은 다시 유쾌한 원점으로. 큰 성공을 누린 연예인 역시 거기에 적응하고 또 다른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음악을 즐기기로 유명한 가수가 있었다. 신곡이 유튜브를 통해 소위 ‘떡상’하면서 세계적 유명 인사가 되었고,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 떨쳤다. 하지만 그는 그 후로 오랫동안 음원을 발매하지 못했다. 이젠 음악이 즐겁지 않다며 오히려 우울감을 호소했다.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자신도, 더 큰 성공을 이룰 가능성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정점을 찍는 순간이 오면 끝없는 행복에 파묻힐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행복은 소모품과 같아서 한번 사용하면 닳아 없어진다. 그러니 우리는 행복을 무작정 기대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글을 끝내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행복의 조건을 재정립하면 된다. 적응된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찾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신 스마트폰을 산다→행복하다→적응이 끝나고 행복감이 증발한다→최신 노트북을 산다→행복하다→적응이 끝나고 행복감이 증발한다→최최신 웨어러블 워치를 산다→행복하다→적응이 끝나고 행복감이 증발한다→최최최신 태블릿PC를 산다…… 이렇게 살면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 참 쉽죠? 아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재벌 2세가 아니기에 이렇게 살 수 없다.
우리는 행복에 금방 익숙해진다. 그러므로 더 나아져야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행복을 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보다 더한 행복을 찾지 못하면 불행해진다.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국내 여행은 시시해지고, 최고급 요리를 먹으면 편의점 음식은 맛없게 느껴진다. 정점의 행복은 그 외의 일을 행복의 경계 밖으로 밀어낸다. 그러니 처음부터 무리한 행복을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의 행복은 쉽고 값싸고 보잘것없어야 한다. 만만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업그레이드가 쉬워진다. 그럴수록 더 자주 행복해질 수 있다. 보여 주기 위한 행복은 이제 그만.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나에게는 값싼 행복 메뉴판이 있다.
얼그레이 티에 밀크폼 추가해 마시기(4000원)
분식집 떡볶이(비싼 건 제외, 4000원)
유튜브로 재즈 음악 틀고 티백 홍차 마시기(200원)
도서관에서 책 빌리기(공짜)미세먼지 없는 날 산책하기(공짜)
강아지의 코 고는 소리 듣기(공짜)
강아지 발 냄새 맡기(공짜)
조카와 영상통화(무료)
해외 직구 하기(한국보다 저렴함)
실물보다 날씬하게 나온 사진 SNS에 올리기(공짜)
강아지와 고양이 동영상 보기(공짜)
『쇼미더머니』 다시보기(회당 2200원)
『벼랑 위의 포뇨』 오프닝 영상 보기(넷플릭스 월정액 구독)
배달 음식에 따라 온 펩시콜라 중고 거래(수익 창출)
전기장판 위에서 극세사 이불 덮고 낮잠(공짜)
좋아하는 작가 신간 소설 예약하기(약 15000원)
내 책 리뷰 찾아보기(좋은 글만 골라 본다, 공짜)
내 귀여운 강아지 자랑(공짜)
신나는 노래에 덩실덩실 춤추기(무료)
모아 놓은 카드사 포인트로 쇼핑(포인트 차감)
카페 시그니처 메뉴 시켜 먹기(8000원)
안 보는 책 나눔하기(택배비 조금, 나누는 기쁨)
옛날 사진 보기(무료)
책장 정리(무료)
헌책방 구경(무료+책값)
나를 행복하게 하는 값싼 취미다. 한두 개가 아니므로 돌려 막기가 가능하다. 적응되거나 지루해질라 치면 또 다른 행복을 고르면 된다. 덕분에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행복할 수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는 게 재미없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인생은 지루함으로 가득 차 있어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축하합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앞으로 뭘 하든 행복할 거라는 뜻이거든요. 아직 행복하지 않다는 건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비로소 행복할 준비가 된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이제 무엇부터 시작할지 골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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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출처는 <내 마음 공부하는 법>으로, 출간된 원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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