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을 이겨내는 법(feat. 계절성 우울증)
꿈에 귀신이 나왔다. 소스라치게 놀라 깬 나는 온몸에 오스스 돋아있는 소름을 느꼈다. 9월 9일, 낮은 아직 땀이 날 정도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지만, 밤 온도는 굉장히 차가워진 날이었다. 자기 전 열기를 식히느라 열고 잔 창문으로 밤새 찬 공기와 함께 닭살이 피부를 뒤덮었다. 내 소름은 악몽의 결과일까? 아니면 온도의 결과일까? 악몽은 혹시 소름의 결과물이 아닐까?
정서는 해석에 영향을 받는다. 무엇에 대한 해석? 몸의 반응에 대한 해석. 정서는 언제나 신체 반응을 동반한다. 긴장하면 심장이 뛰고 땀이 삐질 흐른다. 행복하면 온몸이 각성하고 미소 근육이 움직인다. 우울하면 근육이 늘어지며 힘이 빠진다. 이런 반응을 해석하며 우리는 감정을 읽는다.
Schachter와 Singer(1962)는 아주 오래전 정서와 관련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사람을 흥분시키는 호르몬 에피네프린을 주사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한 것이다. 에피네프린이 투여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연구진은 주사를 맞은 사람 중 일부에게는 이 효과를 정직하게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두통이 있거나 어지러울 수 있다며 애매하게 알려주었다.
주사를 맞은 참가자들이 모여있는 대기실에서 참가자(인척하는 공모자) 한 명이 흥분한 연기를 시작했다. 매우 기뻐 보이거나 매우 화가 난 모습으로 말이다. 이 사람을 본 참가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옆 사람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동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두 집단의 반응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먼저 약효를 정확하게 듣지 못한 사람들은 예상대로 공모자의 행동에 동요했다. 상대가 기뻐 보일 때는 함께 기뻐하고, 상대가 화를 낼 때는 함께 기분이 상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반면 정확한 약의 효능을 알고 있던 참여자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일까?
에피네프린은 사람들을 신체적으로 흥분시켰다. 여기서 약효를 정확히 알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 반응을 약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따라서 평온할 수 있었다. 당연히 일어날 만한 반응이 일어났다고 여긴 것이다. 반면에 신체 반응이 왜 일어나는지 몰랐던 참가자는 심장박동과 거친 호흡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현저하게 눈에 띄는 옆 사람과 관련지어 해석하게 된 것이다. 저 사람이 성가시게 구니까 나도 짜증이 난다, 저 사람이 기분 좋으니까 덩달아 행복해진다, 하고 말이다.
연애 7년, 결혼 8년 차 부부인 우리는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설렘보다 친밀함을 무기로 반려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한 지 3년쯤 되었을 무렵 색다른 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 때는 여름이 다가오는 6월이었고 우리는 반딧불이를 보기 위해 한마을의 축제 장소로 향했다. 늦은 시간에야 볼 수 있다는 반딧불이를 기대하며 새벽 1시까지 마을회관에서 대기했다.
약간의 소음이나 빛에도 불빛을 숨기는 예민한 곤충이기에 마을 사람들은 조용히 할 것을 몇 번이고 주의했다. 물론 휴대전화를 꺼내는 것도 금지였다. 하지만 아이들과 동행한 가족은 이를 지킬 수 없었다. 반딧불이가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은 환호를 참아내지 못했고, 신기해하며 카메라로 찍어댔다. 실수로 플래시가 켜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결국 어둡고 조용한 시간은 이뤄지지 못했고 간절했던 불빛 친구도 볼 수가 없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가려는데 이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우리 부부를 불렀다. 꼭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아도 돼요. 둘이서 조용히 보고 와요. 이맘때쯤 오면 아무 때나 볼 수 있어. 캠핑 의자 가지고 다시 와요.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다시 마을을 지나 산길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시각, 그곳은 아주 어둡고 조용했다. 들리는 건 저벅저벅 우리 두 사람의 발소리, 야생동물의 갑작스러운 울음소리, 그리고 가끔 눈으로 돌진하는 나방의 날갯짓 소리.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운전하는 남편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설레는 걸까? 맞아, 나 이렇게 멋진 남자랑 결혼했었지. 우리는 오랜만에 손을 꼭 잡고 드라이브를 하며 돌아왔다. 이날의 설렘은 사랑이었을까?
슬픔과 기쁨과 같이 명확히 구분되는 정서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정서도 많다. 이를테면 질투는 미움에 가까운가, 사랑에 가까운가? 정서가 애매할 때 우리는 몸을 (무의식적으로) 관찰한다. 그리고 몸의 반응에 이름을 붙인다. 심장이 폭주 기관차처럼 날뛰며 숨이 가빠질 때 저 사람을 증오해! 하고 해석할 수도 있고, 뜨겁게 사랑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해석의 결과가 내가 느끼는 정서가 된다.
권태에 빠진 연인에게 공포영화를 보거나 귀신의 집을 체험하라는 조언이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려움과 사람의 감정을 일으키는 신체 반응이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장이 무서워서 요동치는 건지 설레서 날뛰는 건지 우리는 변별해 내지 못한다. 그래서 냅다 옆에 있는 사람이 좋아서 그러는가 보다 하고 결론을 내린다. 공포심은 순식간에 사랑으로 탈바꿈된다.
가을을 탄다. 가을은 사람들을 울적하게 만든다. 부정적인 감정이 우리를 휩쓸려 할 때, 힘이 없고 밤낮으로 잠이 쏟아질 때, 갑자기 눈물이 울컥하거나 자책하는 일이 많아질 때, 우리는 가을을 탄다고 말한다. 다른 표현으로는 ‘계절성 우울증’이다.
무더운 날씨가 끝나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해가 짧아진다. 그만큼 일조량이 줄어드는 하루를 맞이해야 한다. 햇빛은 행복의 호르몬이라 부르는 세로토닌을 방출하도록 돕는다. 그러니 가을이 되면 여름에 비해 세로토닌 방출량이 적어지고,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세로토닌은 수면에도 영향을 준다. 우울증 환자에게 낮에 산책을 자주 하라고 제안하는 것은 해를 보며 세로토닌을 충분히 방출해 숙면에 도움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해를 잘 보지 못하니 잠들기가 어렵고, 수면 부족은 피로를, 피로는 무력을, 무력은 우울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이 모든 당연한 신체적 상태를 ‘우울하다’ ‘슬프다’ ‘나는 쓸모없다’와 같은 느낌으로 이름 붙이기 시작하면 그 상태가 실제가 되어버린다.
부정적 감정에 빠지려 할 때, 그저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나를 방치하지 말고,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생각해 보자. 내 앞에 그 사람이 원인이 아닌데 내가 처한 상황이 문제가 아닌데 따가운 눈총을 보내기 전에 말이다. 힘이 없는 것은 점심을 조금 먹어서일 수도 있고, 짜증이 나는 것은 어제 푹 자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화가 나는 것은 단순히 더워서 불쾌지수가 올라간 것뿐이고, 두근거리는 마음은 긴장이 아닌 설렘과 기대 때문일 수도 있다.
몸은 구체적이고 마음은 추상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몸과 마음의 관계성을 자주 간과한다. 그러나 마음은 몸으로부터 온다. 완벽한 정답이 아닌 해석이 달린 주관적 열린 결말로. 영어 단어를 번역할 때 해석을 잘못하면 뜻을 왜곡해 문제를 일으키지만 마음의 왜곡은 때때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나의 해석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에게 감정을 선택할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일어난 몸의 반응이라면, 그리고 선택할 수 있다면 나쁜 의미보다 좋은 의미로 오역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날 밤 나는 왜 악몽을 꿨을까? 최근 스트레스받는 일이 많아서? 아니면 그저 찬 바람에 돋은 소름을 내 마음이 공포로 착각해서? 어제 나는 오랜만에 긴 바지를 입고 잤다. 몸은 포근했고 기분 좋은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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