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을 극복하는 회복탄력성
미안함으로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 어느 월요일이었다.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았는데, 어쩐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친구가 잘못한 것도 아니었고 자리가 불편했던 것도 아니었다. 만나고 싶은 친구를 만났을 뿐인데 머리는 멍했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가 어떤 말을 해도 응, 응, 대답만 하고 때로는 자리에 엎드리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우울한 순간이 참 많았는데, 그것이 어떤 사건이나 이유에서 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울했고, 특히 월요일이면 더 우울했다. 학교 다닐 때도 월요일이 되면 수업 시간을 겨우 버텨내고 쉬는 시간이 되면 엎드려서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블루먼데이라는 말이 있다. 우울함을 상징하는 블루와 월요일이 만나 만들어진 말이다. 블루먼데이는 일 년 중 가장 우울한 월요일을 뜻하는 말로,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말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클리프 아르날이 처음 언급한 이 용어는 아래와 같은 공식으로 설명된다.
W는 날씨, D는 빚, d는 월급, T는 크리스마스를 지난 시간, Q는 새해 결심한 목표를 실패한 시간, M은 낮아진 동기, N은 행동해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날씨는 춥고, 빚은 많은데 월급은 늘지 않고, 행복했던 크리스마스는 이미 과거가 된 지 오래 지난 데다가 1월 1일에 세운 계획은 지키지 못 했고, 의욕은 다 사라졌는데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히 남아있으니 우울함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이 공식도, 블루먼데이 그 자체도 과학적인 검증이 불가한 개념이다. 모든 월요일 중 1월 셋째 주 월요일이 가장 우울한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월요병 그 자체는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주말, 혹은 연휴 내내 즐기면서도 이 여유가 끝날 거라는 생각에 불안에 떨고 월요일을 마주하는 순간, 그 스트레스를 감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망률을 살펴보면 월요일과 토요일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데, 토요일은 우발사고 사망률이 높은 반면, 월요일은 자살 사망률이 높다.특히 1~20대 청년들에게서 이 현상이 눈에 띄는 걸 봐서는 왕따와 같은 관계 문제, 학교생활 스트레스나 사회초년생의 회사생활 적응, 심리적 압박감이 원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월요병, 그러니까 월요일의 우울증은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 한 기사에서 이런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월요병을 고치려면, 일요일에 출근하세요. 웃을 일은 아닌 게 대학원 시절, 하도 바빠서 주말에도 연구실을 나갔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 월요병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월화수목금토일병이 다 있어서 아픈 게 디폴드 값이었던 거지만.
아무튼 역경 없는 삶을 살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통제권을 벗어난 일이다. 우리가 블루먼데이를 극복하려면 내면에 단단함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겠다. 다가올 고난을 긴장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역경을 경험하고도 우뚝 서서 버티는 힘!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용어는 탄력성, 심리적 건강성, 회복력 등 다양하게 번역되었는데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가 다시 돌아온다는 ‘회복’과 역경을 되 튀어 오르는 성장인 ‘탄력성’을 합쳐 부르면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회복탄력성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탄력, 탄력이란 무엇인가. 피부 탄력... 20대 까지만 해도 아침에 발견한 베개 자국은 세수하고 나올 때쯤이면 차올라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오후 늦은 시간에도 어떤 주름의 베개를 베고 잤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탄력이라는 건 외부의 물리적 영향을 받아도 원상태로 돌아오는 힘이다. 마음에도 탄력이 있다면 어떤 일을 경험하고도 그 일이 있기 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
주중에 받은 고난을 회복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는 누적되어 높은 성탑을 쌓을 것이다. 층간 소음에 시달린 사람은 작은 소음에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처럼, 다시 찾아올 어려움을 마주하기 싫어 조마조마하다 보면 소소한 문제도 대단한 역경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상태에서 월요일은 힘든 날의 시작이라는 불안의 트리거가 된다. 탄력 없는 고무줄을 당기고, 당기고, 당기기만 하면 어느 순간 툭 끊어져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툭 끊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역경에도 빠르게 원상태로 돌아가는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긍정 회로를 돌리면 된다. 회복탄력성이 낮은 사람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바로 부정적인 사고가 빠르게 자동으로 일어난다는 것인데 소위 말해서 꼬여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회복이 더뎌진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니엘 카네먼은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 조금 잔인한 방식의 연구를 진행했다. 바로 대장 내시경이었다. 연구진은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었고 한 그룹의 환자들은 검사가 끝나자마자 내시경을 제거해주었지만, 다른 그룹의 환자들은 조금 더 방치한 후 제거해주었다. 첫 번째 집단 환자들의 고통은 10분 이내로 끝났지만, 두 번째 집단 환자들의 고통은 20분 넘게 지속되었다.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대장 내시경으로 인한 고통이 더 적었다고 보고한 환자가 두 번째 집단이었단 것이다. 심지어 내시경 재검사 의사 역시 두 번째 집단이 더 강했다. 첫 번째 집단의 경우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내시경이 제거되었지만, 두 번째 집단은 고통이 점차 줄어드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게 끝난 일은 고통으로 남지만, 고통이 점차 나아진 경험은 제법 버틸만한 일로 기억된다.
우리의 자아는 경험하는 자아 experiencing self 와 기억하는 자아 remembering self로 구분된다. 경험하는 자아는 사건에 대한 팩트, 그 자체에 대한 자아라면 기억하는 자아는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자아다. 위 실험을 보면 두 번째 집단의 경험하는 자아는 객관적으로 더 긴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아는 나아진 상태에 주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여 괜찮았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은 기억하는 자아가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다.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억하는 자아가 행복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습관은 말 그대로 습관이어서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변기에 앉기 전에 바지를 어떻게 내릴지, 변기에 어떤 각도로 앉을지, 휴지는 어떻게 풀지, 물은 어떻게 내릴지 고민하지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우리 몸에는 그 모든 절차가 습관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응애하고 태어났을 때부터 볼일 보는 일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변기 커버에 긴장하고, 물에 빠질까 봐 조심하고, 조준에 실패할까 봐 각도 조절도 해보며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습관이 된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인 생각을 습관화하는 것도 처음에는 쉽지 않다.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아무 노력 없이도 긍정 회로가 돌아가는 나를 반드시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는 불행한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부정적으로 기억하는 자아에게 나를 맡겼다. ‘늘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겨!’ 불평스러운 마음은 또 다른 사건에도 뾰족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제는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오! 이번 일 책에 써야지’ 글쓰기는 나의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요즘엔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아쉽다. 인생이 심심하면 글이 잘 안 써지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예술가들은 일부러 삶에 고난을 만든다고 하겠는가.
요즘에는 SNS에 가감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사람이 많다. 사업 실패담, 장애가 생긴 이유, 희소병에 걸린 아이를 양육하는 이야기, 억울한 사건. 과거에는 숨기기 바빴던 무거운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는 아니겠지만) 올린다. 때로는 카펫에 라면 쏟은 사진, 비싼 돈 주고 새로 산 지갑을 강아지가 물어뜯은 사진처럼 작다면 작은 인생의 스트레스를 올린다.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어오는 순간에 ‘SNS에 올려야지’ 하는 마음이 극복을 돕는 것이다.
최근에는 반려동물의 장례식 장면이나 눈을 감는 장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위로 댓글만큼이나 비난 댓글도 함께 쏟아진다. ‘이런 건 마음으로 간직하세요. 진짜 슬프면 이런 걸 못 올리지 않나?’
이처럼 어려움을 공개하는 용기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관심받으려고 별짓을 다 한다고 흉본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과정도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과정, 힘든 일에 긍정 회로를 돌리는 수단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역경을 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게 능사는 아니다. 견딜 방법이 있다면 저마다 그 방법을 최선을 다해 동원해 자신을 지켜야 한다.
블루는 우울함을 대표하는 색으로 상징된다. 하지만 블루는 미세먼지 없는 하늘의 색이기도 하고 오염 없는 바다의 색이기도 하다. 블루는 멋쟁이의 바지 색이기도 하고, 신비로운 요정의 눈동자 색이기도 하다. 당신의 월요일이 블루라면, 그 색은 가장 아름답고 따뜻한 색 블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