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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Nov 16. 2022

나 자신을 향한 기대감

생각

얼마 전에 회사를 때려치웠다. 회사 분위기도 너무 뒤숭숭하고, 스트레스로 가뜩이나 점점 줄어드는 머리가 다 빠져 대머리가 될 것만 같았다. 관리직으로 진급하면 월급도 높아지고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뭔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 기획을 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일의 대부분이 직원들이 낸 사고를 수습하고 가르치는 게 거의 주된 일이었다 (물론 업종에 따라 다르겠다.) 건강이 눈에 띌 정도로 나빠졌고 보상심리 때문인지 소비만 더 커졌다. 돈 더 많이 벌면 좋을 줄 알았는데 집에 이쁜 쓰레기만 더 늘어.


회사를 나오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는데 막상 그렇지 않더라. 샤워해도 머리 덜 빠진다. 더 이상 아침 샤워가 무섭지 않아.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쓴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게시한 날짜를 보니 2년이 훌쩍 넘었다. 사실 글을 쓰려고 몇 번 마음먹었지만 (차마 시도를 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그러지 못했다. 부담감이 앞섰다. 생각해보면 매번 브런치에 올릴 글을 쓸 때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잘 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그래도 나름 심리치료를 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써야지', '이해하기 쉬운 글을 써야지', 라는 나 자신에게 세운 ‘기대치’가 있었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전보다도 더 못 쓰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시작하기 더 어려워졌다. 마침 그 시기에 이직을 했고, 대학 강의까지 맡으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하게, 이제 그만 쓰자!라는 생각으로 브런치를 포함한 상담 관련 소셜미디어 활동을 전부 중단했다. 나도 좀 놀아야지.  


그리고는 거짓말처럼 홀가분해졌다. 근데 퇴사를 하고 나니 글 쓰는 것도 이제는 미룰 핑계가 없어졌다.


만화나 글을 소셜미디어에 계속해서 쓰지 않으면 상담사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에게 무의식적인 압박을 주고 있었나 보다. 마치 '나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틀을 만들어놓고,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것처럼. 막상 안 하겠다 마음을 먹고 나니 불필요한 것들에 대한 관심이 줄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만 찾아 집중하기 더 쉬워졌다. 여전히 최대의 적은 유튜브다. 이건 어떻게 끊을 수가 없다. 


우리 모두 스스로를 향한 '기대치'를 가지고 있고, 적당한 기대치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대치란 가만히 놔두면 점점 커지는 습성이 있고, 제때 관리해주지 않으면 무작정 높아져 스스로에게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감당이 안 되는 기대치를 억지로 맞추려다 지치거나 또는 맞추지 못해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며 나무라곤 한다. (*게으름은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만약 스스로를 게으르다고 탓하는 습관이 있다면 무엇이 본인을 게으르게 만드는지, 혹시 높은 기대치에 부담감도 덩달아 높아져 자포자기한 결과는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어떠한 기대를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한 번쯤 '내가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리스트를 쭉 적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물어보자. 지금 나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치가 적당한지. 너무 높게 잡고 있다면, 조금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만약 '당연히 이 정도 기대치는 가지고 있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당연함은 어디서 온 것인지. 나 스스로 세운 높은 기대치에 불필요한 부담감을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기대치를 낮출 수 없다면 몇 가지는 잠시 미룰 수 없는지. 



한 달 남짓 남은 2022년, 새해가 오기 전에 내 마음에 있는 기대치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봐, 잘 쓰려는 부담 안 가지고 의식의 흐름대로 그냥 쓰면 또 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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