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총각이던 시절, 온라인 데이팅 앱을 한동안 사용했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주 6일을 일하는지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나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나와 내 주위 솔로 친구들 사이에서 온라인 데이팅 앱은 (가뜩이나 한국에 비해 사람이 적은 이 토론토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 (주위 사람들이 교회나 성당을 다니라고 했지만, 종교인도 아닌 사람이 사람 만나러 나가려니,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일요일은 쉬고 싶다.
처음 앱을 사용할 때는 뭔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기회에 설레기도 하고 온라인에 올라온 사람들의 프로필에 호기심도 생겼었다. 이렇게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좋아 여기서 평생 짝을 찾아보겠어! ...라는 다짐도 잠시, 앱을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기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매칭된 상대 프로필을 대충 읽어보고 (처음에는 궁금해서 이것저것 읽어보지만, 나중에는 그냥 사진만 보고 넘어간다.) 매칭이 되면 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이어지면 약속을 잡고 차를 마신다. (그나마 이것조차도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다.) 몇 번 이런 만남을 가지다 보면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현타가 온다. 무슨 입사 면접 가는 느낌. 만남의 기회가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러 금쪽같은 쉬는 날 시간을 내기도 힘에 부친다.
또한 매일같이 온라인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계속 사람들을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프로필에 나온 외모, 학벌, 직업. 스펙주의자의 끝판왕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알고 있다. 아무리 그 사람의 배경과 능력이 대단해도 성격이 개차반이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하지만 짧은 시간에 사람들을 빠르게 판단해서 ‘효율적'으로 사람을 만나려다보니, 편협하기 그지없는 잣대를 만들어 버렸던 것 같다. 인연을 만들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나에게 맞춤형을 찾으려는 허황된, 피로감만 높아지는 생각과 함께.
며칠 전 내담자가 온라인 데이팅을 하면 할수록, 설렘은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일처럼 느껴진다는 푸념을 들었다. ‘힘들다 ‘는 표현과 함께,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위에 있는 싱글 남녀가 서로를 발견하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온라인 데이팅. 통계에 따르면 팬데믹 전후로 온라인 데이팅 사용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자만추’보다 온라인 앱 사용이 더 높아진 세상.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보니 이제는 연애도 소파에 누워서 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동시에 로맨스가 소모적으로 변해버렸다느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훑어 넘기기 식으로 매칭된 사람을 보고 뭔가 아니다 싶으면 다음 사람으로 넘어 가는거다. ‘그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알아보자’ 하기엔 피곤하고 번거로우니까. 다음 타자 등판!
어떤 사람들은 온라인 데이팅이 로맨스를 파괴했다고 말한다. 나는 오히려 로맨스를 만들 기회는 많아졌지만, 그 난이도도 상대적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자연스럽게 형성하게 된다. 온라인 프로필이라는 제한적인 정보에서 더더욱 그 선입견은 강하게 만들어진다. 이미지와 사진, 짧은 소개로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판단하게 강요하고, 끝없이 줄 지어 선 새로운 누군가의 프로필들은 우리의 선택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 사람도 괜찮지만 더 괜찮은, 조금 더 나에게 맞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과연 나에게 100% 맞는 사람을 커다란 온라인 풀에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사람과 사람이 인연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효율을 따지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생각이다. 인연은 맞춰진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환경과 배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충분한 리허설이라고 쓰고 다툼이라고 읽는다을 거치며 맞추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라인 데이팅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쁘다고 하면 모순인 게 나도 내 아내를 온라인을 통해 만났다.) 어쩌면 온라인 데이팅으로 인연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앱'이라는 도구보다는 사용자의 수동적인 마음가짐 때문이라 생각된다.
추가 뇌피셜: 어쩌면 앱이 사용자를 점점 수동적으로 변하게 유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앱 개발 회사는 그 유저가 오랫동안 앱을 사용할 수록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
온라인 데이팅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장일뿐, 학교나 직장, 동호회가 아닌 인위적인 온라인상에서 상대방을 알고, 또 인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만남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만약 온라인 데이팅에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연 찾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인연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