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도 나태해지는 천성에
무엇을 하는 날보다 하지 않는 날이 많았고
어떠한 날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소설을 한 글자도 읽지 못했어
흰 물성을 가진 종이에 적힌 수많은 낱말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숨통을 조여 오는 것만 같았거든
우울한 날을 더 우울하게 만들어줄 음악을 틀고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철저하게 단절된 시간을 보내고
차가운 여름 음식을 먹으며 지난한 하루를 달래고
스스로를 보살피지 않은 많은 날들은 그렇게 업이 되어 또다시 나를 괴롭히고
무더운 여름이지만 지극히 서늘했던 그날의 부산물은 이제 이곳에 없어
무더운 더위를 받아들이고 열기에 맞설 수 있게 된 이유가
그 누구도 아닌 사람 하나 때문이라는 게 나조차도 믿기지 않아
빠른 시간에 너에게 젖어든 내가 깃털만큼이나 가벼워 보였겠지만
나는 쉬이 사랑에 빠지는 부류는 아니야
네가 처음 보았던 나의 밝은 모습은 너를 위해 비축해 두었던 빗물이야
외롭고 축축한 음지를 벗어나게 해 준 양지의 사람이야
이런 글은 아직 너에게 부담이 되겠지 처음 느껴보는 낯설고 이상한 마음이야
너에 대한 사랑 시를 적어 내리는 게
언젠가는 다시 나의 목을 조여올까
잠시 네가 내 글을 읽고 진심을 엿볼 수 있다면
기꺼이 아픈 시를 써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