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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Nov 03. 2022

너의 투명한 바리케이드

너에게 쓰는 연서

너는 여전히 차가웠던 겨울, 아니 여름

배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서 내게 왔다

가족이 되어주라며, 유성우가 떨어지는 듯한 파란 눈으로 간절하게

우울함의 기질은 세상의 유약한 것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는 걸까

작고 소중한 존재가 늘어날 때마다 그런 의문을 가지곤 했다


동그란 분홍 코, 흰 발, 파란 눈, 볼록 나온 똥배

너를 구성하는 단어들은 폭닥폭닥 햇살에 마른 침구 냄새가 은은히 배어 있다

또 어떤 말로 너를 표현할 수 있을까

이런 식상한 표현을 제외하고서


너는 아무도 밟은 적 없는 올 해의 첫눈,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유성,

존재하지 않는 새벽의 신월,

소낙비 오는 날의 나무 아래,

상상 속에서만 일렁이는 호수,

이런 말도 식상하려나

원래 사랑하는 이를 표현하는 게 이리도 어려웠나


어렵기만 하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우스운 말들은 그냥 잊어버리는 걸로 하고,

나는 또 비겁하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다만 진심으로

그럼 너는 또 지겹다며 하품이나 해 대겠지만

이 사랑이 너에게 빼앗은 자유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사랑은 사랑이라 그 단어만으로 의심받지 않으니까


너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왜 너의 작은 이빨에도 우주만큼의 상처를 받을까

나는 너에게 무슨 존재일 수 있을까

나는 너의 지겨운 가족,

나는 너의 낮잠의 불청객,

나는 너의 창문의 연인,

나는 너의 계속 두드리는 문,

나는 너의 투명한 바리케이드,


아니, 나는 너의 아무 존재이지 않아도,

그저 네 곁에 몸을 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의 작은 울음에 잠에서 깰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만으로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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