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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Oct 26. 2022

나의 작은 외계인, 땅콩

너에게 쓰는 연서

작은 택배 박스 안에 더 작은 고양이 둘. 솔직히 말해 작은 몸으로 시끄럽게 울던 그 아이들을 이토록 사랑하게 될지 몰랐다. 때는 바야흐로 2014, 평생 살던 곳을 떠나 도착한 타지는 2년이 다 되어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낯설었고, 전학을 간 학교에도 적응을 못해 외로운 이방인 행세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택배 박스를 하나 가지고 들어왔다. 선물일까 하는 기대도 잠시, 귀를 찡하고 울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안에는 얼핏 보면 커다란 땅콩처럼 보이는 복슬복슬하고 냄새나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었다. 무언가를 직감한 아이처럼 그 작은 존재들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엄마에게 당장 원래 있던 곳에 데려다 주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 울음은 무슨 의미였을까. 혹시 부모에게서 떨어져 낯선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에 대한 동일시의 감정을 느꼈던 걸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바쁜 일이 있다며 저 시끄럽고 꼬질꼬질한 것들과 나만 두고 집을 나섰다. 그게 그들과 나의 아슬아슬한 첫 만남이었다.


역시나 불신주의자답게 고양이들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게 목소리는 냉장고보다 크고, 다리는 짧은데 움직임은 잽싸서 무언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혹시 고양이라는 존재는 설계가 잘못된 것 아닐까 생각했다.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온갖 얄미운 행동들을 하니 말이다. 무섭다며 책상 뒤에 숨어 들어가 묽은 똥을 실컷 싸고, 자신이 싼 똥을 묻히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얄미운 녀석들. 그날 오후, 작은 악마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진이 빠져 누워 있는데, 찾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고양이가 작은 발로 아장아장 걸어 내게로 왔다. 미안하다는 의미였을까. 한 줌도 되지 않는 게 내 다리에 몸을 기댔다. 온몸으로 복슬복슬한 털의 감촉을, 따뜻한 체온을, 작지만 커다란 심장 박동을 느꼈다. 순간 마음이 동했다. 미움에서 사랑으로 가는 시간은 5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모든 걸 걸어 이 작은 아이들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내 영혼의 무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 너희의 이름은 땅과 콩. 평생을 둘이 함께 하라는 의미에서 한 단어를 둘로 나누어 주었다. 땅콩 행성에서 나를 괴롭히러 내려온 작은 외계인.


처음 만날 날부터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땅콩과 나는 늘 같은 공간에서 잠든다. 서로의 숨결로 호흡한다. 사랑하는 마음은 끈적한 젤리처럼 녹아들어 서로에게 달라붙는다. 땅콩과 함께 살면서 빨리 늙고 싶다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야속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지만, 이제는 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생이 우리를 갈라놓아도 나의 우주 속에서 우리는 영원히, 늘 함께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땅콩을 기억하는 한 너희는 작은 우주가 되어 내 곁에 머무르리라는 것을. 그러니 이제 노파심에 죽음을 생각하는 일도 두렵지 않다.  


매일 땅콩의 귀에 나지막이 외는 말, 거짓말 같겠지만 사실 처음 그 순간부터 알았다고, 나는 너희를 사랑하려고 태어난 것 같다고. 너희는 날 살리러 이 지구에 온 외계인이냐고. 혹시 다음 생에도 나를 잊지 않고 찾아와 줄 수 있냐고. 그러면 땅콩은 나만 들을 수 있는 조용한 음의 높낮이로 그릉그릉 답한다. 마치 내 말이 다 맞다는 듯이. 나는 그럼 괜스레 웃음이 나와 달콤한 허밍을 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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