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설자 Jul 28. 2024

여름 한가운데서

단 하루인 오늘

 

 비 온 후 여름날 들판은 싱그럽다. 풀꽃이 무리 지어  핀 사이로 개양귀비가 간간이 피어 초록이 더 도드라진다. 비가 오다가 해가 나니 습한 공기가 올라오며 열기를 뿜어낸다. 각시원추리꽃이 흐드러지고 연꽃도 하얗게 피어오른 여름은 절정, 그 한가운데를 천천히 걷고 있다. 그 길에 어린 날 이야기들이 돋아나고 있다.    


 

고향의 여름은 싱그럽다. 천지에 비릿한 풀냄새가 가득하다. 뒤뜰의 감나무는 잎이 넓어지고 하늘을 가린다. 우영팟에 이슬이 맺힌 오이 잎사귀를 들추면 작은 오이가 매달려 있고 참외며 수박이 조롱조롱 열린 싱싱한 여름. 삶은 풋콩을 까먹고 목화 다래를 따먹으며 많이도 모가지를 비틀었다.


 팔월 백중날이 되면 수박을 가지고 바다로 간다.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에서 하루 종일 놀고 발개진 얼굴로 집에 온다. 마당에 친 모기장 안에서 하늘의 별을 센다. 소나기가 내리면 피난 가듯 이불을 안고 방으로 뛰어 들어와도 곧 먼 데서 들리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자장가 되어 달게 잔다.


이슬이 내린 새벽부터 울어대는 매미소리에 눈을 뜨면 싱그러운 여름 아침이 마당에 와 있곤 했다.



 

물길을 건너는 돌다리에 고라니 발자국과 청둥오리 발자국이 가지런히 찍혀 있다가 갑자기 새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다. 따라오던 친구가 사라진 걸까. 먹을 것을 잡느라 아니면 길을 잃었나. 그러다 다시 이어지는 반듯한 발자국. 돌다리를 만들고 돌 위에 새 발자국을 새겨 놓고 친절하게 이름까지 달아준 마음이 흐뭇하게 한다.      



  삶의 길에서 발자국을 남기며 나아가다가 어디선가는 방향을 잃고 어지러이 자취를 남겼을 터이다. 나가다가 돌아서고, 망설이다가 다른 길로 가고, 다시 제자리로 왔다가 돌아섰다가…. 가야 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서성거리던 회한과 망설임도 있었겠지. 그저 마음이 흐르는 대로 가리라던 인생일지도.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세워진 괴테의 말.


 “오늘이란 너무 평범한 날인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단 하루인 오늘.

그 오늘을 걸으며 걸어온 발자국 나아갈 발자국을 생각한다.


단 하루인 오늘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콩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