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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Aug 10. 2024

대나무

대나무에 내리는 초록비

   

 고향집 울타리 동쪽 모퉁이에 대나무가 소복이 자란다. 내 방이 가까워 언제나 대나무 잎이 비벼대는 소리가 파도소리처럼 들렸다. 여름날 대나무에 초록비가 내릴 때면 창문을 열고 턱 괴어 비 오는 모습을 오래 보곤 했다. 빗방울이 댓잎에 후드득 떨어지면 휘청 아래로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며 댓잎 건반 연주를 했다.


 대나무에 내리는 초록비. 나는 그 비를 사랑했다. 한때 록 밴드 자우림을 좋아했는데 김윤아의 노래도 좋지만 "보랏빛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시적인 밴드 이름을 더 좋아했다.

    

 그 대나무를 잘라 묶어 마당비로 만들고 깎아 산적꽂이도 만들고 연살을 만들기도 했다. 길게 깎아 바구니를 만들기도 했다. 제사가 돌아오면 아버지는 잘 자란 대나무 한두 그루를 자른다. 이파리를 다듬고 마디로 나누어 세우고 반으로, 반에 반으로 잘게 쪼갠다. 무릎에 두꺼운 헝겊을 올려놓고 쪼개진 대를 낫으로 얇게 저민다. 몇 번 낫이 닿지 않았는데 매끈해진다. 납작한 댓살을 다시 다듬고 한쪽 끝을 시옷자로 깎으면 산적꽂이가 만들어진다. 삶은 돼지고기를 납작하게 썰어 일곱 점씩 꽂아 간장 양념에 지져내고 가지런히 쟁반에 쌓아 올린다. 묵도 일곱 점씩 꽂아 쟁반에 놓는다.


 길게 쪼개어 얇게 다듬어 연살을 만든다. 날이 퍼런 낫으로 긴 대나무를 두께도 같게 얇게 저미는 기술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얇게 저밀 때마다 깎인 대나무 껍질이 빙글 말리며 거품처럼 수북하게 쌓인다. 가오리연은 긴 것과 짧은 것 두 개만 있으면 되지만 방패연에는 대나무 살이 여러 개가 들어 오빠도 옆에서 거든다.  

    

 농사일에 바쁘다가도 아버지는 댓살을 다듬어 대바구니를 짠다. 대나무를 엮어 물허벅을 담는 바구니도 만들고 곡식 바구니도 만든다. 미리 손질하여 적당히 말린 대나무는 잘 휘어진다. 격자형으로 여러 가닥을 엮어 바닥면을 먼저 짜고 여러 개의 중심 살 주변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옆면을 짜면 바구니 형태가 잡히면서 높아진다. 바구니 깊이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윗부분에 잡기 좋게 가닥을 꼬아 둥근 테두리를 만들어 마무리를 한다. 바구니를 짜느라 아버지 손은 댓살에 긁히고 거칠어져 손톱 끝이 뭉툭해진다.


 대나무를 짜면서 아버지는 내게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노련한 아버지 손길 따라 댓살이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을 넋 놓고 보면서 이야기에 빠진다. 대나무에 꽃이 피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들을 때는, 나라가 망하면 절대 안 되니 꽃이 피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빌곤 했다. 4.3 때, 대나무로 만든 죽창으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이야기는 아버지 입속으로만 삼킨다. 4.3에 대해 말을 하는 것조차 금지된 시절이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대바구니에 엄마가 밀가루로 풀을 바른다. 못 쓰는 헝겊이나 두꺼운 달력종이로 바구니 바깥과 안을 발라 햇빛이 좋은 마당에서 말린다. 마당에는 풀 바른 바구니 마르는 고소한 냄새가 떠다닌다. 고추잠자리도 구경 나와 바구니 사이를 날아다닌다. 바삭하게 마른 바구니는 팽팽해지면서 아주 단단해진다. 좁쌀이나 가루 등속을 담아도 틈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대바구니를 쓰다 해지면 땔감으로 쓰면 되었다. 수백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보다 훨씬 자연친화적인 조상들의 지혜가 만들어낸 독특한 물건이다. 자연물을 이용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며 무엇 하나 버리는 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동네에 상여를 놓던 곳집이 있었다. 인가가 없는 키 큰 삼나무 길이라 삼나무가 하늘을 가려 어둠이 더 짙었다. 대나무가 무성한 그곳을 지날 때 댓잎 스치는 소리는 곳집에서 들려오는 귀신의 소리만 같아 발걸음이 빨라지곤 했다. 금방이라도 곳집 안에서 상여가 벌떡 일어나 앞길을 막을 것만 같았다. 곳집은 사라지고 펜션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대나무는 남아 있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익산 미륵사지 뒷동네 대나무 숲


 결혼하던 날 눈이 내렸다. 며칠 전부터 신랑 집 올레에는 막 자른 잎이 무성한 대나무로 풍성한 아치를 엮어 세워 대나무 숲 궁전처럼 꾸며놓았다. 예식장에서 식을 마친 신랑 신부는 바닷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눈 내리는 겨울에도 푸르고 싱싱한 대나무 아치를 지나 신랑 집으로 들어섰다. 막 시작한 젊은 부부의 앞으로 이어지는 인생도 댓잎처럼 변함없이 사랑하며 청청하라는 염원이었을까.


 고향집 얼마 남지 않은 대나무에는 언제나 초록비가 내리지만 예전처럼 푸르지 않아 보인다.

연로하신 부모님 따라 같이 나이 들어가는 걸까.


어디든 대나무가 무성한 곳은 어김없이 사람이 살았던 곳이다.

조상들은 대나무가 없으면 속되어진다고 집 주변에는 반드시 대나무를 심었다는데. 그래서 우리 집에도 대나무가 있던 것일 텐데.


나는 얼마나 속되지 않고 살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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