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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Sep 22. 2024

양하

알싸한 향기에 실은


 천지에 돋아나며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내어주는 자연은 참 친절하다. 집 안팎에 자라는 풀도 먹을거리다. 초가집 뒤뜰은 그늘이 짙었다. 유자나무가 지붕을 덮고 있어서 처마 아래는 햇빛 들 날이 거의 없었다. 빗물이 떨어지는 처마 흙벽 아래 그늘진 곳에 양하가 자란다.


 양하는 열대 아시아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풀로 타원형 잎이 큰 식물이다. 더위가 시작되고 입 안이 깔깔하고 입맛이 없어지는 계절에 보랏빛으로 자라난 다육질 어린 줄기 양하죽을 꽃 피기 전에 먹는다. 독특한 향이 있는 양하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뱀을 막아주기도 한다.

 

 제주에서는 양애라고 한다. 밭에 가져가는 점심 구덕(바구니)에는 양애 반찬이 꼭 들어 있었다. 탄환 모양 보랏빛 어린 순이 꽃봉오리처럼 봉긋이 올라오면 그것을 뽑아 데쳐 잘게 찢어 간장,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무친다. 쌉쌀하고 향긋한 맛이 입맛을 돋우는 딱 좋은 반찬이다.


 양애가 자라나는 그때쯤 나는 마루 뒷문을 열고 앉아 유자나무 잎이 비바람에 뒤집히는 것을 보며 먼데로 떠가는 마음을 붙들고 있었다. 아득히 닿을 수 없는 곳에 시선을 모으고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알 수 없는 그 막막한 시간을 보내며 사춘기를 아슬아슬 넘겼으려나.  


 엄마는 양애순 날것을 썰어 간장에 식초와 풋고추, 고춧가루 깨소금으로 양념한 걸 좋아하셨다. 삶지 않은 양애는 향이 강해서 화들짝 정신이 나게 알싸한 맛이 난다. 나는 독한 향이 싫어서 어릴 때 양애를 잘 먹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음식은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가 다시 찾게 되는 것인지 언제부턴가 그 맛이 자꾸 나를 잡아당긴다. 그리움은 맛으로 오는 것인지.


 육지에 오니 양애가 없다. 온라인 쇼핑 사이트에 주문하면 바로 오긴 하겠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다. 양애순을 쪼개 풋고추를 쏨쏨 썰어 넣은 양념장에 생양애를 자작하게 담은 것과 갓 지은 밥은 참 잘 어울린다.



우영팟 담벼락 아래 양애를 뽑아 만든 양애반찬. 오빠가 보내온 사진


 알싸한 맛에 실은 이런 허기짐은 어디에서 올까. 이미 지나온 세월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일까. 양애 반찬 하나로도 부족하지 않았던 가족들이 모인 순간을 돌이킬 수 없어서일까. 아니면 엄마가 양애를 뜯어 향기 나는 그 반찬을 해 주던 시간들이 이제는 아득하게 멀어져서 그럴까. 괜한 생각에 기운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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