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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Sep 18. 2024

팽나무

말없이 돌보는 그늘


 동네에 있는 오래된 팽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나무로 대접받는다.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울룩불룩 괭이가 지면서 키가 오그라든다. 마치 나이 들어 허리가 굽고 피부가 거칠어지는 사람의 일생처럼. 팽나무는 느티나무처럼 천 년 이상을 살지는 않지만 오륙백 년은 거뜬히 살아내는 장수하는 나무다. 바람에 잘 견디고 무성한 잎으로 넓은 그늘을 만들어준다. 팽나무 아래는 평상을 만들어 놓아 어른들이 앉아 한담을 나누고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는 오픈 카페가 된다.


고향에도 오래된 팽나무가 있다. 제주에서는 폭낭이라고 부른다. 그늘 좋은 나무 아래는 언제나 어른들이 앉아 있곤 했다. 마을의 소식들은 폭낭 아래서 들어오고 퍼지곤 했다. 더위가 한창인 계절, 그늘 아래 잠시 쉬며 농사일로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다독이곤 했다.

 

시댁 올레에 있는 폭낭

 

 폭낭 열매가 익기 전, 대나무 구멍에 넣고 피스톤처럼 밀면 팽- 퐁 -하고 날아가는 딱총 놀이를 했다. 누가 더 큰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가는지 놀던 시절이 폭낭아래 머물러 있다.


 아이들이 지나면 곡식이나 열매 품평회를 하듯이 말씀들을 나눈다. 누구네 자식이니, 그 집은 어떻다느니, 부모를 닮아 부지런할 거라느니, 집안 내력을 닮아 똑똑하다느니, 등 뒤에서 들리는 그런 이야기들은 아이들에게 바른 행동을 하게 하는 지침이 되기도 했다. 서로 집안 사정이 훤한 터이니 내 행동이 부모님에게 시시콜콜 전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러니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되었다. 폭낭 아래 어른들은 바쁜 부모님 대신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도록 돌봐주는 또 다른 그늘이 되었다. 아이들은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처럼.



시댁 동네에 있는 오래된 폭낭


  

 고향집 건너에는 오래된 동백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당산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 옹색한 그저 나무들과 숲 덤불에 지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당산 근처에 장례를 치르고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까지 있어 기이한 기운을 내뿜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당산에 있는 오래된 폭낭 가지에는 오색 천 조각을 매단 줄이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영혼이 휘날리는 것처럼 나부낄 때면 금방이라도 한 맺힌 영혼이 실체를 가진 무엇이 - 뱀이라든가- 스르륵 나타날 것만 같아 오싹해지곤 했다. 나무 아래는 누군가 애니미즘을 숭배한 흔적이 있었고 빛깔 좋은 떡이나 과일을 먹고 다쳤다거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했다는 출처가 분명치 않은 소문이 우리들 사이에 퍼지곤 했다. 그곳은 신이 사는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당산이나 곳집의 존재는 어린 우리들에게 경외심을 갖게 하여 잘못을 응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


 그늘 아래서 삼베 적삼 입고 부채질 하며 이야기를 나누며 한 때를 보내던 어르신들은 이제 먼 곳으로 가셨다. 먼지 하나 없이 마당을 쓸어 놓곤 하던 폭낭 옆 박사 아저씨네 집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들고 나는 사람이 없다.  


 마을의 든든한 지킴이로 세월을 견디며 이제는 나이 들어 기괴하게 몸이 비틀어지고 허리가 굽어진 나무. 마을의 역사를 지켜보고 기억하는 오래된 폭낭은 노거수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대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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