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은 없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칡에 빗대어 살 것을 권한다.
정몽주는 신의를 버리고 칡처럼 살 수 없었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 여름, 어디든 돌담이 있는 곳에는 칡이 자라나 너울거린다. 교통표지판에까지 넘어와 온통 가려놓기도 하고 식물을 덮어 고사하게 만들기도 한다. 국도변에 칡뿌리를 늘어놓고 “칡즙 팝니다”라는 팻말을 붙여 놓고 파는 어마어마한 칡뿌리를 볼 때마다 과수원 만들 때 생각이 난다.
아버지 손에는 늘 칡이 들려 있었다. 과수원 만들 때 밭을 둘러싸고 있던 구부러진 돌담을 바로 하고 새로 쌓는 작업을 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이 돌담에 얽어진 칡을 걷어내는 일이다. 어디든 기어올라가 뻗어가는 무시무시한 풀이다. 수십 년 돌담에 얽히고 삼나무에 기어 올라가 팔을 뻗어가던 칡은 날벼락이 난 것이다.
그해 겨울, 농한기 동안 과수원 작지(돌이 무더기로 쌓인 곳)를 무너뜨리고 돌담 정리를 하면서 얽힌 덤불을 걷어내고 작업을 했다. 낫으로 자르고 뿌리를 파낸다. 아버지는 날마다 칡뿌리, 마뿌리를 가지고 왔다. 마는 삶으면 고구마 맛이 나는데 많이 먹으면 목이 아프다.
왕상하게 자란 칡은 밭으로 넘어와 낫으로 쳐내지 않으면 작지 틈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가 계절이 바뀌면 또 너울너울 세력을 넓혀 나간다. 삽시간에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엄청난 힘을 가진 칡.
여기저기 얽어진 칡을 걷어와 마당에서 말린다. 통통한 줄기가 수분이 빠지고 꼬들해지면 그것으로 삼태기를 짠다. 잘 휘어지는 나무를 U자로 구부리고 그것에 긴 칡으로 날실을 만들어 매듭을 묶는다. 거기에 씨실을 가로로 요철로 짜면서 아래쪽을 우묵하게 바탕을 짜나가면 앞이 터진 삼태기가 된다. 그것으로 흙을 나르고 고구마도 담아 옮기고 거름도 퍼냈다. 우리가 쓰도록 작은 삼태기도 만들어주셔서 옆구리에 끼고 밭에서 고구마를 주워 담고 옮기기도 했다.
싱싱한 칡잎은 송아지 먹이가 된다. 잎을 뜯어낸 굵은 칡 끝을 세로로 흠을 내 쪼개면 초록의 속살을 내보이며 반으로 길게 갈라진다. 한 겹으로 쓰기도 하고 여러 겹으로 쓰면 웬만한 동아줄만큼 질겨 노끈으로 사용했다. 들판 어디나 천지에 자라는 칡을 걷어 썼으니 나일론이나 플라스틱 끈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칡으로 만든 삼태기는 오래 쓰면 눈비 맞아 닳아지고 저절로 썩어 퇴비가 된다. 삼태기도 멍석도 바구니 같은 생활도구들이 자기 생을 다하면 저절로 흙으로 갔다. 자연적으로 분해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으니, 썩지 않는 쓰레기로 몸살 앓을 일이 많지 않았다. 다시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그 시절 시골의 삶은 버릴 것이 없었다. 자연에서 빌려와 쓰고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는 삶이었다.
농사가 삶이던 곳에서는 칡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 칡꽃 향기가 그토록 은은하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잎 사이에 숨어 있는 보랏빛 작은 꽃이 먼데까지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다. 들에 작지에 곶자왈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칡이 그렇게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있던 것이다.
쓸모없는 것은 세상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