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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Jul 21. 2024

콩잎

그 여름날의 콩잎

        

 나는 콩 종류는 무엇이든 좋아한다. 콩, 팥, 녹두, 서리태…. 할 것 없이 좋아하다 보니 콩 종류를 많이 넣어 밥을 짓는다. ‘콩밥’이 아니라 ‘밥콩’이라며 아들이 투정하기도 했다. 교실에는 콩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급식에 나온 콩을 몰래 집어 교실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휴지에 싸서 버리기도 하고 입에 물고 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뱉고 오는 아이도 있었다. 하여튼 콩을 좋아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어렸을 때, 콩이 자라는 동안 잎을 먹고 여린 꼬투리에 푸른 콩을 먹고 장 담글 때 삶은 것을 달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좋아하는 걸까.




 콩잎이 두세 장 더 나오면 아버지와 콩밭을 맨다. 막냇동생 병원 치료 때문에 서울에 가 있는 엄마 대신 어린 내가 조금이라도 손을 보탠다. 콩밭에는 유난히 돌멩이가 많다. 일하기 싫어서 호미로 돌을 쪼거나 개미구멍을 막으며 놀고 있는 어린 딸에게 저만치 앞서가던 아버지는 유턴하여 내 이랑을 매주며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신다. 밤마다 들었던 이야기지만 콩밭 매면서 듣는 이야기는 또 다르다. 이야기를 들으려고 열심히 아버지를 쫓아갔고 힘들지 않게 밭일을 마친다. 소달구지에 타고 집으로 올 때면 지친 어린 몸 위로 부드러운 저녁 햇살이 따뜻하게 덮어준다. 덜커덩거리는 달구지 안에서 아버지가 부르는 구성진 노래를 들으며 아슴아슴 졸면서 집으로 온다.


 콩 꽃이 지고 꼬투리가 볼록해지면 가지째 꺾어와 솥에 삶는다. 김이 펑펑 나는 가마솥에서 삶은 콩 가지를 꺼내 소쿠리에 내놓으면 우리는 나무 방석을 들고 모여 앉는다. 콩깍지를 비틀어 껍데기를 열면 알알이 드러난 푸른 콩. 얌전히 깍지에 붙어 있는 것을 손으로 털어 입에 놓으면 그렇게 고소하고 달다.


 별들이 쏟아지는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빨랫줄에 맨 모기장 안에서 콩 삶은 것을 먹으며 올려다본 하늘에는 은하수가 쏟아질 듯 가깝다. 키 큰 삼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달이 지나가는 빛이 그늘졌다 밝아지곤 한다. 가로등도 없는 밤. 온통 어둠에 둘러싸여 자연물들이 내는 빛의 농담만 남아 있는 밤. 바람에 흔들리는 삼나무 가지들이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잡으려 달려가는 거인의 팔 같은 밤.

 

 우리는 누워서 우주라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눈으로 좇으며 아버지가 해 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설문대할망이 옥황상제의 셋째 딸로 태어나 한라산은 베개 삼고 발 하나는 성산일출봉에, 다른 발은 산방산에 걸쳐서(아버지는 산방산이라고 했지만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이라는 설이 맞는다.) 누워 자기도 하고, 한라산이 뾰족하다고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거나, 우도를 빨래판 삼아 빨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을 반짝 뜬다. 진짜 설문대할망이 하늘을 가로질러 누워 있었을까. 자다가 벌떡 일어나 두 산에 다리를 걸치고 빨래를 했을까. 그렇게 우주에 살던 거대한 분이 우리 할망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 꿈속으로 빠진다.     



        

 이맘때면 콩잎이 부드러울 때다. 보송한 솜털이 돋아난 콩잎에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을 얹어 먹으면, 콩잎 냄새와 고기 기름기가 어우러져 입 안 가득 고소함이 퍼진다. 어느 여름날, 식구들이 콩잎을 먹고 싶다고 하여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이틀도 안 되어 소포가 왔다. 어서 씻어서 삼겹살에 싸 먹을 생각에 포장을 뜯는데도 벌써 군침이 돈다. 기대에 차서 상자를 풀자 더운 김이 훅 올라온다.


 아뿔싸, 나는 그만 손을 놓고 만다. 콩잎은 솥에 푹 찐 것처럼 뭉그러져한 한 장도 성한 것이 없다. 켜켜이 많이 넣은 데다 한여름 달아오른 날씨에 여린 이파리들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아침 일찍 콩밭에 나가 부드러운 것만 고르느라 무성한 콩잎을 헤쳤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잘 받아서 맛있게 먹었노라고 했지만 아버지 고생이 그 지경이 된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철철이 수확한 싱싱한 농산물을 상자 옆구리가 터지도록 담아 보내 주셨다. 택배에 이리저리 밀려 아래에 깔린 귤은 다 터지기 일쑤다. 엄마가 적당히 담으라고 아무리 말려도 아버지는 늘 상자의 배가 터질 듯 담는다. 아버지의 못 말리는 사랑의 크기일 것이다.  그때마다 <늦게 온 소포>라는 시가 떠오르곤 했다.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님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 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 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 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울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 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고두현 <늦게 온 소포> 전문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다. 콩밭을 지나며 너울거리는 콩잎을 볼 때마다 그 일이 떠오른다. 이제 아버지는 연로하셔 농사를 짓지 못하시니 농산물도 택배도 콩잎도 모두 오래된 이야기다.


 언젠가 형님네 집에 갔더니 신문지에 싸 냉장고에 보관해 둔 콩잎을 내놓으신다.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을 자리젓에 찍어 콩잎에 얹어 입이 미어지게 먹는다. 비릿한 콩잎 냄새, 자리젓의 구수하고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고기 맛이 입안에서 추억을 불러온다.


콩잎 사이에 매달린 코투리마다 알알이 익어가고

여름은 그 한가운데로 치닫고 있다.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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