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리꼿
고향집을 고치기 전에는 부엌과 마루, 방과 광이 있는 제주의 전형적인 초가집이었다. 부엌에 난 쪽문으로 나가면 장독대가 있고, 장독대 뒤로는 높은 담이 둘러쳐 목욕을 하는 곳이 있었다. 그 옆으로 크고 작은 간장 된장 항아리들이 줄지어 있고 담벼락 아래 부추가 자랐다. 특별히 가꾸지 않아도 언제나 봄이 되면 푸르게 자랐다. 잘라내도 며칠 후면 다시 수북해졌다.
제주에서는 부추를 세우리라 부른다. 육지의 부추보다 키가 작고 덜 납작하며 약간 다르다. 가늘어서 세우리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부추’라고 발음할 때보다 ‘세우리’라고 발음할 때 그 모습이 더 자세히 그려지고 연한 부추의 속성이 다가온다. 언어란 그렇게 사람의 의식을 고착화하고 상상의 테두리를 만든다.
달걀조차 귀했던 어려운 시절. 아프거나 손님이 오거나 소풍날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게 달걀이었다. 집에서 키우는 닭이 알을 낳을 때마다 모았다가 미술 시간이 있는 날은 달걀 한 알을 가게에 가져가 도화지와 바꿀 수 있었다.
양재기에 달걀을 풀고 쏨쏨 썬 부추를 넣어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려 휘저은 후, 뜸 들이는 솥 안에 눌러 두면 탱글탱글한 계란찜이 된다. 계란찜은 어린 동생이 먹을 것이다. 세우리가 얹힌 계란찜에서 나는 냄새는 온 침샘을 자극적이지만 아픈 동생이 먹을 거라 참아야만 했다. 촌구석 엄마가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막내를 입원시키고 밥 먹듯 육지에 오르내리며 병구완한, 그렇게 ‘죽다 살아난’ 동생이 먹을 음식이니 나는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시어머님이 사시던 집 뒤뜰에도 세우리가 자란다. 하귤 나무 아래 눈이 녹으면 가느다란 줄기를 밀어 올리다가 여린 줄기가 돋아나 이른 봄바람에 흔들린다. 연한 때 잘라 세우리 김치도 하셨다. 세어지기 전에 잘라 일일이 다듬고 썰어서 봉지마다 묶어 냉동해 두었다가 쓰셨다. 어머님이 안 계신 지금은 세우리가 냉동실에서 사라졌다.
어느 날, 형님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세우리꼿이 그리 예쁜 줄 몰랐다면서 세우리꼿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 거실에 꽂아 놓은 사진이었다. 하얀 세우리꼿 한 다발이 안개꽃처럼 풍성했다.
세우리꼿을 베어낸 자리에 어린 세우리가 수북하게 돋아났다. 세우리를 키운 분은 이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세우리는 담 아래 초록초록 돋아나 어우러졌다. 바람에 살랑이는 어린 세우리를 다듬어 잘게 썰어 동그랑땡에도 놓고 새우전에도 넣었다. 명절 상에 올린 향긋한 그것을 어머님 아버님도 틀림없이 맛나게 드셨을 것이다.
이번에도 형님이 세우리꽃을 꽃병에 꽂아놓으셨다. 세우리꼿을 볼 때마다 생전에 어머님을 보는 듯하다. 박완서 선생님이 어머니를 추억할 때 ‘감자꽃 같은 분’이라고 했듯, 우리 어머님은 세우리꼿을 닮으셨다. 담 아래 하얗게 피어 있는 소박한 세우리꼿.
‘그래, 이번 추석에도 아들 며느리랑 모두 오느라 애썼다, 물 아껴 써라, 음식 쓰레기는 고넹이(고양이)에게 줘라…’ 하면서 잔소리를 하시는 것만 같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
세우리꼿은 다시 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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