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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루와 으름

멀리와 졸겡이를 기다리는 달콤한 저녁

by 오설자

가을바람에 곡식이 익어가는 냄새가 묻어난다

달콤하고 꽉 찬 냄새. 깊어가는 가을.


가을이 되어도 농사일은 끊임없다.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고 파낸 고구마를 기계에 썰어 밭에 하얗게 널어 말린다. 그렇게 말린 고구마 절편을 제주에서는 빼떼기라고 한다. 며칠 동안 꾸덕꾸덕 마르면 일일이 손으로 주워낸다. 달무리 낀 밤이면 근심으로 지새운다. 공판으로 1 등품을 만들기 위해 빗방울 하나도 맞지 않게 거두느라 새벽부터 밭으로 가 빼때기를 주워야 한다. 수매된 고구마는 주정공장으로 보내진다.


원래 제주도에 고구마가 대량으로 재배된 데는 아픈 사연이 있다. 일제 때 제주도에 주정공장을 지었는데 그 원료가 되는 고구마를 제주 전역에 걸쳐 생산하게 했다. 고구마에서 나오는 주정(酒精)은 알코올인데 순도를 99%까지 높이면 무수(無水) 주정이 된다. 이것은 석유와 섞어 자동차나 항공기 연료로 쓰이는 산업용 알코올이 된다. 일제 말기, 일본은 전쟁 말기 석유 부족에 대비하여 무수주정을 생산하였다. 결국 조상들이 농사지은 고구마는 강제로 전쟁 물자를 공급한 셈이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전쟁을 도운 셈이었다. 농사지은 곡식은 일본군 말먹이 등 공출로 모두 빼앗기고 춘궁기를 넘기기 위해 물릇(무릇)을 캐다 삶아 먹었다.

"그거 삶아 먹으민 독해서 목이 아파."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목구멍이 아려온다.


일 년 내내 이어지는 농사가 얼추 마무리될 늦가을 무렵에는 겨우내 소들이 먹을 양식인 촐(꼴,솔새)을 베어야 한다. 늦은 가을 씨앗이 여무는 이때 베어 말린 촐이 영양이 풍부하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촐밭 사이로 걸어가면 씨앗 품은 부드러운 촐이 뺨을 스치고 촐밭 어디선가 숨어 사랑을 나누던 꿩들이 놀라 푸드덕 날아간다. 촐을 벨 때는 온 들판에 향긋하고 진한 풀냄새가 가득하다. 그들의 씨가 익어가는 냄새, 가을이 익는 냄새다.

베어낸 촐은 길게 늘어놓아 건초를 만든다. 그 시기에는 비에 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비 맞은 건초는 썩어서 소들에게 맛있는 겨울 식량이 되지 못한다. 적당히 마른 새솔은 한 아름씩 묶어 둥글게 쌓아 올려 눌을 만든다. 잔뜩 쌓아 놓은 눌(낟가리)에서 나오지 못한 열이 한 묶음을 뽑을 때 후끈 올라온다. 촐에 함유된 미생물이 만든 열인데 촐눌에서 간혹 불이 나기도 한다. 어른들은 개구쟁이들의 불장난인 줄 알았지만 자연발화로 생긴 일이다.


아버지가 촐눌에서 우리 키가 닿을 부분에 한 묶음을 빼놓으면 틈이 생겨 우리도 쉽게 빼낼 수 있다. 오빠가 작두에 썬 촐에 보릿가루를 버무려 쇠물통(구유)에 놓아준다. 배를 깔고 누웠던 소들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들이대 두꺼운 입술을 씰룩이며 우물거리는 모습은 내 입맛도 다시게 만든다.


늦가을 하루 종일 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손에는 우리들을 위한 간식이 가득 들려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덤불 속에 검게 익은 멀리(머루)와 졸겡이(으름)를 딴다. 가시덤불에 얽혀 자라는 졸겡이는 바나나와 비슷하여 코리언 바나나라고 불린다. 덤불 높은 곳에 하나라도 더 따다가 가시에 긁히기도 한다. 멀리도 딴다. 포도과의 덩굴식물인 멀리는 포도와 비슷하나 알갱이는 블루베리보다 작다. 검게 잘 익은 멀리와 까만 씨에 둘러싸인 하얀 과육 졸겡이는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낭간(툇마루)에 앉아 그걸 먹느라 저녁밥을 넘긴다.



촐 벨 즈음에 익는 멀리(머루) ⓒ김차선



촐 베는 그 시기 동안, 나는 날마다 어스름이 내리는 올레에서 졸갱이와 멀리 줄기째 어깨에 메고 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린다. 멀리서 움직이는 익숙한 몸체. 땀 냄새와 풀 냄새가 어우러진 아버지 냄새가 난다. 다가올수록 하늘만큼 커진 아버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그 달콤한 것들을 받는다. 마루에 펼쳐 놓고 입 안이 까맣게 따먹는 우리를 아버지는 흐뭇하게 바라보신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음식을 만들고, 우리는 아버지가 따 온 멀리와 졸겡이를 먹는 평온한 저녁들.


세월이 흘러도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특별한 것들. 미슐렝 별빛이 반짝이는 곳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부딪치며 두툼한 고기를 써는 것과는 거리가 먼 시골의 삶이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달콤한 시간들. 그런 가을날들이 흘러갔다.

고향에서 저녁을 보내던 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니 어릴 때 코신(꽃고무신) 신고 학교 다녔거든.”

“학교 가야는디, 코 채여졌어. 장날 돌아와야 신을 살 건디. 급허게 바농으로 꼬매언 보냈지.”


촐 베러 가려던 어느 날 아침, 오래 신어 찢어진 코고무신 앞에 울고 서 있는 어린 딸. 모슬포에 가야 신발을 사다 줄 텐데. 야단이 났다. 아버지는 앉아 바느질로 코신을 꿰맨다.


“장에 가서 사다 주커매 며칠만 신거라.”


새 신을 사준다고 달랜다. 터덜터덜 올레를 나서는 풀 죽은 딸의 뒷모습을 보는 아버지.

그 모습이 아직도 아픈 아버지.


지금 나는 그 아버지의 등을 본다.

없는 살림에 자식을 키우는데 최선을 다 하신 부모님.

그렇게 키운 자식들 덕은 보셨다고 하지만 자식들은 부모님의 지난한 고단함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나는 무엇으로 머루와 으름과 새 신을 대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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