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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Mar 09. 2022

다음 생에도 또 하고 싶다는 직업 '성우'

[인터뷰] 게임 더빙부터 오디오북, 유튜브까지 바쁜 박요한 성우

* 인터뷰는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콘텐츠가 만들어질 때마다 브런치에 올리고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점도 글로 써야겠따고 생각하면서 계속 미뤘습니다. 게으른 탓이겠죠. 이제라도 다시 브런치에 인터뷰 결과물들을 꾸준히 올리려고 합니다. 관심 있게 봐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예전에 성우가 한 조사에서 직업만족도 2위에 랭크된 적이 있어요. 1위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요. 업계의 많은 이들이 이 조사 결과에 동의했고 저도 그래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어요" 

단언컨대 기자가 지금까지 인터뷰를 위해 만난 사람 중 가장 높은 직업만족도와 자부심을 보여준 인터뷰이다. 급여 및 복지, 워라밸, 성장가능성 등의 잡플래닛의 평가 지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일하기 좋은' 기업의 직장인, 임원들을 인터뷰했을 때도 이 정도 만족도는 본 적이 없다. 

성우는 보통 방송국 공채로 입사해 2년의 직장 생활을 거친 뒤 협회 소속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누가 더빙으로 영화를 보냐'며 성우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게임 더빙과 오디오북, 비대면 주문 및 결제 시스템 등으로 성우의 영역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컴퍼니 타임스>가 게임 '쿠키런'과 '로드 오브 히어로즈' 속 목소리의 주인공, 박요한 성우를 만나 성우로 일한다는 것에 대해 들어봤다.  


오디오북을 녹음 중인 박요한 성우의 모습 / 사진=윌라

   

- 먼저 자기소개 해주세요. 

9년차 신인 성우 박요한입니다. (웃음) 대원방송 공채 성우로 데뷔한 뒤에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주로 게임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이외에 더빙, 광고, 나레이션 등의 일을 하고 있어요. 

- 흔히 성우라고 하면 드라마나 영화 속 목소리가 떠오르잖아요. 박요한 성우는 게임사 데브시스터즈, 클로버게임즈 등의 대표작에서 활약하셨어요. 이 경험이 박요한 성우님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지난해 출시된 데브시스터즈의 '쿠키런: 킹덤'에서 에스프레소맛 쿠키 역할을 했어요. 같은 해 나온 도서관 배틀 시뮬레이션 게임인 'Library of Ruina'에서도 늘 커피와 함께 하는 캐릭터 헤세드를 연기했고 2020년 작인 '아이러브커피N'에서도 일했기 때문에 '커피 전문 성우'라는 마음에 드는 별명도 얻게 됐죠. 

이 경험 중에 특히 '쿠키런'과 클로버게임즈의 '로드 오브 히어로즈'의 연기를 제가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계기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두 게임이 상당히 큰 인기를 모았거든요. 그리고 두 게임사가 유저 대상으로 진행한 여러 행사에 참여하면서 연기 외에 진행 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성장했습니다. 

- 인지도가 높아진 것을 언제 느끼나요? 

길 가다가 알아보시는 분들이 늘고 있어요. (웃음) 또 유튜브 구독자 수 증가요. 2만5000명을 넘었거든요. 작년 3월까지 2000여명이던 구독자가 제가 연기한 게임 캐릭터들이 큰 사랑을 받고 게임 관련 이벤트에 초대되면서 빠르게 증가했거든요. 저 스스로 매일 놀랄 정도로 5000명, 7000명, 1만명, 2만명으로 채널이 크는 것을 봤어요. 제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경험이더라고요. 

-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제작도 계속 이어갈 계획인가요? 

제가 본격적으로 유튜버, 크리에이터 활동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이벤트성으로 팬서비스 느낌의 연기 영상을 많이 올렸었는데요. 고민해봤을 때 라디오 드라마나 ASMR 같은 콘텐츠가 제게 가장 특화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런 생각들이 기획과 콘텐츠로 정리되면, 정기적인 콘텐츠 업로드도 가능할 것 같아요. 


- 여러 활동 영역이 있지만, 성우라고 하면 뭔가 '주말의 명화' 우리말 더빙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성우의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성우라고 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던 분야가 더빙에서 최근 몇 년 사이에 게임으로 확대된 느낌이에요. 이외에 광고 속 나레이션 목소리도 성우들의 일이죠. 더빙 시장에서는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의 성장에 따라 IP도 꾸준히 생기고 아동 콘텐츠도 상당히 많아졌기 때문에 더빙 뿐 아니라 행사 MC까지 맡기는 경우도 늘고 있어요. 

각종 OTT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대중들이 자막으로 영화, 해외 드라마를 즐기는 경우가 일반화되면서 성우들의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코로나19 이후에 키오스크를 통한 비대면 주문, 결제와 고객 응대가 늘어나면서 많은 분들이 매일 일상적으로 성우의 목소리를 듣고 계세요.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이후에 오디오북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윌라, 오디언, 네이버 오디오, 밀리의 서재 등에서 꾸준히 오디오북 제작 관련 의뢰가 늘고 있어요. 처음에는 오디오북만 시도했던 제작사들이 오디오 드라마로 영역을 넓히고 웹툰의 더빙 작업도 늘고 있고요. 제 일은 계속 늘고 있습니다. 

- 잡플래닛의 리뷰를 보면 본인의 진로와 새로운 일에 대해 고민하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언제 성우라는 직업을 목표로 삼았나요? 

대학교 3학년 때에요. 원래 연기를 전공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 시기에 세부 전공을 정했다고 할 수 있죠. 스스로 가장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분야를 밀고 나갔어요. 어릴 때는 연기가 좋아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어요. 고등학교 연극반에 우연히 가입하면서, 연기라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갔죠. 

연기로 어떻게 밥을 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과연 내 일이 앞으로도 재미있을까 생각했을 때 고민해서 정한 것이 성우였습니다. 

- 성우는 어떻게 될 수 있나요? 

성우는 쉽게 이야기하자면, '공채 제도'가 끝이에요. 다른 직업군의 공개 채용 과정과 비슷합니다. 공채 성우를 선발하는 방송국에 입사해서 2년의 직장 생활을 거치고 나면 한국성우협회 소속 프리랜서 성우가 됩니다. 

방송국마다 채용 과정은 다르지만, 제가 입사했던 대원방송 같은 경우에는 1차에서 자기소개서와 함께 지정된 캐릭터들의 연기를 녹음한 파일을 함께 제출해요. 이후에 더빙을 시연하거나 일반 연기자 오디션과 비슷하게 연기 실기 시험을 보는 방식으로 현장에서 2차 음성 실기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3차에서는 보통 조금 더 긴 문장으로 시험을 진행하고요. 이후에 임원진 면접까지 통과하면 최종 합격입니다. 다른 방송국들의 공채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고요. 

- 경쟁률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경쟁률은 보통 200~300대 1이에요. 한 해에 선발하는 성우가 성별에 관계 없이 20명 정도에요. 지망생이 5000명인 것에 비하면 정말 좁은 시장이죠. 아나운서, 캐스터가 보통 아카데미를 수료하는 것처럼 성우들도 대부분 학원을 수료합니다. 

- 어렵게 성우가 되었는데 2년의 계약 기간을 마치면 무조건 프리랜서로 가야 하는 시스템이 뭔가 불안할 것 같기도 한데요. 

네. 계약 연장은 없고 무조건 프리로 나가야 하는 시스템이에요. 간혹 방송국 측에서 성우에게 연장 여부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보지 못했어요. 공채 데뷔 후 2년의 계약 기간을 마치고 프리랜서가 되는 시스템 자체가 성우라는 직업의 특수성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봐요. 

성우는 예체능 계열 종사자와 회사원의 특징이 섞인 직업이죠. 회사원을 경험하고 프리로 나가기 때문에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의 이점이 있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됩니다. 방송국에 속해있던 때와는 달리 제약 없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거든요. 

성우 협회라는 큰 틀이 있고 프리랜서가 되면 녹음실과 프로덕션에서 이미 정보를 알고 다양한 기회를 계속 주시는 편이고요. 협회 차원에서 각종 교육과 연수로 프리랜서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래서 퇴사를 한다고 해서 막연하게 세상 밖으로 던져지는 느낌은 아닌 것이죠. 


녹음 중인 박요한 성우의 모습 / 사진=본인 제공


- 면접 때 받았던 질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과 당시의 답변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지금 다시 받는다면 어떻게 답할지도 들려주세요. 


성우 실기를 준비한 기간이 짧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같이 일하기 좋은 모습'을 어필하자는 생각으로 면접을 준비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교양 과목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듣고 기본적인 면접 예절에 충실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 경험이 상당히 많아요. 각종 식당에서 홀서빙을 하고 고깃집에서도 꽤 오래 일해봤거든요. 이런 경력들 때문인지 '주량'과 관련된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소주 1병을 깔끔하게 마시고, 같이 술마신 이들을 모두 택시 태워서 집에 보낸다며 '나는 인싸'임을 강조하는 답변을 했습니다. 방송국에서 싫어할 이유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전략적으로 답한 셈이죠. 

그리고 국내 애니메이션 방송사와 디즈니, 픽사 등의 글로벌 대기업의 신작, 주가, 전망 등을 답변에 자연스럽게 녹이면서 업계에 대한 관심과 애사심을 자연스럽게 어필했어요. 지금 주량에 대한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안주에 대한 이야기까지 곁들이면서 더 여유있게 답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면접을 앞둔 분들에게 팁을 드리자면, 흔히 화술이라고 말하는 화려한 말솜씨보다 말을 마친 직후의 표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려운 질문을 받아도 '답변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말로 답을 시작하면서 내게 기회를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편하게 이야기한다는 느낌으로 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 2016년 말부터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있는 성우님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저는 일단 오전에 스케쥴을 잡는 일은 최대한 피합니다. 사람 없는 한가한 시간을 활용해서 병원, 관공서, 은행 등의 업무를 하는 것이 프리랜서가 누릴 수 있는 큰 장점이거든요. 그리고 일을 잡을 때도 최대한 여가 시간은 확보한 상태에서 움직입니다. 

이렇게 본인의 개인 시간을 가지기 좋은 직업이다 보니 선배들 중에 학원 등 다양한 사업장을 운영하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투잡, 쓰리잡을 하는 분들이 더러 계신데요. 이것은 철저히 본인의 선택입니다. 저는 아직 사업 생각은 없고 운동에 꾸준히 집중하고 있어요. 

다양한 직업인들의 운동 모습을 소개하는 주제로 '맨즈 헬스'에 나간 적이 있는데 이후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고 나서 가장 좋아진 것은 '자신감'이에요. 잡지 촬영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한 헬스는 현재 트레이너가 '더 이상 해드릴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전문적으로 하고 있고요.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로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직장인 모임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러닝 크루 등의 활동을 하면서 다른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운동하는 것이 흥미롭더라고요. 


- 직업 만족도가 높아보이는데요. 나이에 관계 없이 성우 지원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분들에게 할 조언이 있나요? 

실제로 몇 년 전의 조사에서 성우의 직업 만족도가 2위로 나왔어요. 1위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었고요. 많은 성우들이 이 결과에 동의할 정도로 만족도가 실제로 높습니다. 저도 다시 태어나도 성우를 하겠다는 생각이 있을 정도로 만족하고요. (웃음) 

하지만, 본업을 그만 두고 연기에 도전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마세요.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움직여야 합니다. 무조건 시험에 지원하고 현장에 부딪히기 보다는 학원을 이용해서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는 것을 제일 먼저 추천드립니다. 실제로 실무를 하는 전문가를 만나면 다른 답변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 끝으로 여러 대사를 녹음한 성우님의 '인생 명대사'가 궁금합니다. 

'죽고 싶도록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을 하는 용기'
, 학교 선배가 해줬던 한 마디인데 이 말이 제 인생을 가장 크게 움직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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