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와 부캐사이] "직장인 겸 작가입니다…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
"김부장은 모 대기업에 25년째 근무 중이다. 서울에 자가로 살고 있으며 아이들도 제법 컸다. 연봉은 1억 정도 되며 실수령액은 650~700 정도 된다. 가끔 보너스가 나오기도 한다. 주식도 1천만원 정도 하고 있다. 10년째 하고 있지만 크게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퇴근해서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는데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 김부장도 본인 집 시세를 확인한다. 호가를 보니 작년보다 무려 3억이나 올랐다. 10년 전 산 집이 두 배가 되었다. 그 순간 가방을 사려고 고민했던 순간들이 웃겼다. 몇 억 올랐는데 이까짓 3백만원짜리 가방을 고민했다는게 웃겼다. 순간 김부장은 스스로 본인 타이틀을 더 길게 만들었다. 부동산 투자도 잘하는 대기업 부장이라고"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중)
누굴 만나든 '부동산'은 빠지지 않는 화두가 됐다. 4년간 서울의 아파트 값은 두 배가 되고 전세가 평균 2억원 가량 올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송희구 작가는 자신과 주변을 섬세하게 관찰해 소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을 연재했다. 작품 속 회사원들은 집값에 일희일비하며 부동산 투자로 그들의 불안정한 미래를 해결하고자 힘쓴다.
작가의 삶도 드라마틱해졌다. 응용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해외영업을 하는 11년 차 대기업 직장인으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해 1시간 동안 써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첫 소설이 출근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공유되면서 한 달 만에 200만 조회수를 올렸다. 22편으로 지난 4월 일단락된 작품은 조만간 책과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이쯤 되면 주변 동료들도 알텐데, 그가 소설 '김부장'의 작가임을 모르는 점 역시 흥미롭다. <컴퍼니 타임스>가 본업과 대본 작업으로 한창 바쁜 송 작가를 만나봤다. '김부장' 작품을 '나의 아저씨'와 같은 인생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생각을 들어보자.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부장' 이야기를 쓴 평범한 직장인 송희구입니다. 영업 직군에서 일하는 11년차 대기업 과장입니다.
-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작품의 성공 축하드립니다. 직장인이 처음 쓴 소설을 블로그에 올렸는데 200만 조회수를 올린데다 드라마까지 제작된다고 하니, 말 그대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아요. 어떻게 소설을 쓰게 된거죠?
솔직히 지금도 믿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신기한 일이에요. 드라마 제작이나 책 출판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글을 썼어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묘사하면서 손 가는 대로 썼어요. 사실 뭐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이 전부였어요. 그런데 글이 계속 진행되면서 공유가 이어지고 이를 통해 많은 분들이 읽고 공감을 얻는 모습에 '동시대를 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들 비슷하게 느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공감의 힘을 새삼 새롭게 느꼈어요.
- 아침 6시30분에 출근해 업무 시작 전 글을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고 하셨어요. 직장인들은 다 알잖아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떤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나요?
직장인은 새벽 아니면 저녁 밖에 '자기 시간'이 없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저녁에는 육아를 하다 보니 자기 시간이 줄었어요. 출퇴근 시간이나 새벽에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그래서 일찍 출근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지하철에 앉아 편하게 책을 보며 출근하기 위해 첫 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온전한 내 시간'으로 하루를 여는 점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어요.
- 글을 시작하는 것도 그렇지만, 끝내는 일도 어려운 일이죠.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같은 경우에는 결말을 미리 정해두고 썼나요?
김부장 이야기는 그날그날 손이 가는대로 썼어요. 지난 4월에 22편으로 연재를 멈췄는데요. 여기가 중간까지 쓴 거예요. 1달 동안 매일 쓰다 보니 굉장히 힘들어서 연재를 중단했고요. 회사원들이 출근길에 많이 본다는 것을 알고 블로그에 7시 반 쯤 글을 올리는 일에 집중하면서 에너지가 꽤 많이 소진되더라고요. 어색하지 않은 열린 결말로 김부장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끝난 상태예요. 무모한 신도시 상가 투자로 퇴사 후 위기를 맞은 김부장의 다음 이야기와 작품 속 다른 등장인물인 사원, 대리 등의 이야기도 책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 '김부장' 작품을 연재한 블로그는 작가님이 원래 투자 관련 고민 글을 올리던 곳인데요. 작가님의 전공과 직업, 투자 공부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응용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개인적으로 수학은 졸업하고 나니 제 안에 남은 것이 없어요. 경제학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수요공급 그래프 뿐이고요. 지금 하는 일도 전공과 크게 관계 없어요. 제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드라마 미생 속 상사맨들의 일과 거의 같아요. 다른 점은 미생 속 회사가 공장이 없는 상사라면, 저희는 공장이 있는 것이죠.
제조업의 영업팀에서 일하면서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해외 영업을 하고 있어요. 1년에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일을 해요. 학생 때는 마트, 식당, 과일 가게, 옷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당시에는 그저 월급 받는 것이 상당히 좋았는데요. 커가면서 결국 내 '자산'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만의 재산이 곧 저를 지탱하는 회사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부동산 투자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 많은 이들은 김부장 작품 속에서 부동산 투자 고수인 송과장처럼 되기를 꿈꿉니다. 송과장이 되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드릴 팁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먼저 제 글은 투자를 권장하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부동산 투자의 승패에 따라서 김부장이 실패한 인생이고 송과장이 성공한 인생이라고 표현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겪은 상사를 몇 명 합쳐서 김부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을 뿐이에요. 저도 사지 말아야 하는 부동산을 사고, 제가 "쳐다보지도 마라"고 조언한 상가를 계약해서 삶이 힘들어진 상사들을 더러 봤거든요.
이들의 안타까운 점은 자신과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거예요. '소중한 것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필요한데 오히려 무시하는 거죠. 송과장이 되고 싶다면 주변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세요. 저도 2017년에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시그널이 보일 때, 상사들 중에 전세금 인상, 이사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집을 사라고 조언했지만 누구도 사지 않았어요. 오히려 후배 중에 한 명만 사고 지금도 고마워 하고 있죠.
- 김부장 이야기에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국산 중형차를 모는 김부장과 달리 당당하게 외제차로 출퇴근하는 정대리가 젊은 직장인의 상징처럼 나옵니다. 이들에게 전하는 투자 조언이 있을까요?
각자 선택의 문제예요. 셀 수 없이 많은 책과 미디어에서 투자에 대한 조언이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직장인이면 이미 성인인데, 투자나 삶의 방식에 대해서 강요할 이유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식하는 이들에게 수익을 물으면 대답을 잘 안하는데, 한 채라도 집을 가지고 있는 친구는 물어보면 산 뒤에 얼마가 올랐다고 대답하는 상황이 어떤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집을 살 때는 교통과 학군, 직주근접 등을 고민하고 팔 때는 더 많이 고민해요. 그런 것과 비교하면 주식은 너무 쉽게 사고 파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모든 투자에서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직감에 따라 사거나 남의 말만 듣고 산 뒤에 후회하는 것은 모두 본인 책임이죠.
- 소설 주인공인 김부장에 대해 실제로 회사에서 마주치기 싫었던 부장 같아 불편하다는 의견이 더러 보입니다. 이 시대의 ‘김부장’들이 불편한 사람이 안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명품 브랜드와 특정 카페의 커피 같은 것에 집착하는 김부장의 외면보다는 내면에 집중해야 합니다. 회사 안에서 본인이 최고인줄 알다가 밖에서는 아무 것도 못하고 부동산 꾼들의 언변에 흔들려 아쉬운 계약을 하는 그의 상태를 봐야 해요. 나이와 상관 없이 젊은 이들 중에도 김부장과 같은 실수를 해서 퇴사 후에 사업이나 다른 일로 경제적 손실을 크게 보는 이들이 굉장히 많아요.
어리다고 무시하고 늙었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눈과 귀를 닫고 회사나 내가 발을 딛고 있는 곳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살피고 주변을 봐야해요.
- '김부장' 이야기는 현재 어떻게 진화되고 있나요?
지금은 드라마 대본 작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회사에서는 일에 집중하고요.(웃음) 새벽이랑 퇴근 후, 주말에 계속 대본을 쓰고 있어요. 소설과 대본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더라고요. 집에 TV가 없어서 드라마를 안 본 지 오래예요. 그래서 최근에 유명 작가들의 드라마를 몰아보고 대본집을 읽으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영화나 웹드라마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이 많았지만, 드라마 '나의 아저씨' 같이 인생 드라마로 꼽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모두 거절하고 드라마화 계약을 했어요.
- 끝으로 작가님의 10년 후는 어떨까요?
처음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2년만 하고 그만둬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녔어요. 그런데 회사원들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오래 다녀요. 오히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오래 다닐 것 같은 이들이 빨리 떠나고요. 그러다보니 저도 지금까지 11년째 다니게 되었고 앞으로 또 언제까지 다닐지 몰라요. 일단 회사 다니는 동안은 회사와 저를 철저히 분리해서 정말 좋은 선배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 동시에, 업무에서는 어느 정도 대체 불가능한 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