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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Jan 02. 2023

외로움을 자처하는 아빠들

아빠를 좋아한다.

아빠를 좋아한다.

7세 아들도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그래서 셋이 한 번씩 시간을 보내곤 한다. 시간을 보내다 보니 좋아진 것인지, 좋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결국 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그런 질문에 불과할 뿐.


크게 무엇을 하지는 않는다. 본가 근처의 낮은 산에 오르고 정상에 있는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내려와서 식사를 하고 카페에 간다.


시간 여유가 더 있으면 파주로 가서 여러 컨셉의 대형 카페에 가고 거대한 식물 매장에 가서 소소하게 키울 식물 한, 두 개를 사 온다.


그리고 가끔 지방에 내려가서 친척 어른들, 사촌 형제들과 함께 가서 삼겹살을 굽고 술을 마시며 노래하고 논다. 낮에는 인근 관광명소나 이쁜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산책을 하거나 여름에는 물놀이를 한다. 가을에는 텃밭에서 농사를 하고...


언젠가 아빠와 아들과 먹은 갈비


친척들과 함께 김장하고 수육을 먹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면 괜히 힐링된 것 같고 여러 일정으로 인해 피곤하더라도 그 피곤함이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운하게 만든다.


내가 이렇게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종종 묻는다.


"어릴 때부터 아빠와 시간을 많이 보냈는지"를 주로 물어본다.


아니다. 전혀.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아빠는 늘 바빴고 거의 '부재중'이었다.


무도 특채로 경찰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곧 형사가 되었고 내가 제법 클 때까지 꽤 오랜 세월을 형사로 일했기에 전국을 누비느라 바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며칠에 한 번 보는 때도 있었고 때로는 잠시 집에 들러 씻고 양말, 팬티를 비롯한 속옷과 옷만 챙겨 나가는 아빠를 안타깝게 배웅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쉴 때는 가족에게 진심이었다.


기념일이면 등 뒤로 꽃다발을 숨기고 현관 들어오는 그를 3층 베란다에서 몰래 내려다봤고 내가 뭘 좋아할지 몰라 집에 올 때마다 종류별로 다양한 인형을 사 오던 그 생생하게 기억다.


덕분에 어린 시절의 내 사진을 보면 뒤로 각종 인형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의 취향은 꽤 오래가는 법인지라 지금도 나는 귀여운 캐릭터 굿즈와 인형을 꽤 좋아한다.


그리고 아빠는 때로 특기를 살려 나와 동네 친구들을 모아 공을 차면서 같이 찐하게 땀을 흘리기도 했고, 더 커서 직업 체험의 날 같은 행사 때는 경찰서로 친구들을 불러 내 어깨에 힘이 가득 차게 해 줬다.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 아버지와는 다른 듯 비슷한 방식으로 아들에게 관심을 쏟는다.


운동한, 강한 아버지로의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는 없고 아들의 친구들을 끌고 간이 체육 수업을 할 능력도 없지만 가능한 많은 대화를 나눈다.


'좋아하는 친구' '좋아하는 여자친구' '즐겨하는 놀이' '오늘 한 놀이'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 '싫었던 일' 등을 주제로 여러 질문을 던진다.


물론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는 극히 드물다. 아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거나 그냥 다른 말로 화제를 돌릴 때가 많다.


그래도 꾸준히 한다. 궁금하니까, 친해지고 싶으니까!


퇴근 무렵에 보면 산책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공원에 잠시 앉아있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동년배나 형님들이 더러 보인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조금 더 미루고 싶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럴 때가 자주 있기 때문에 공감한다.


그런데 이런 혼자만의 시간을 계속 늘리다가 말년에, 어느 시점에 집에서 크게 외로움을 맞이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누가 나한테 말 거는 것 자체가 극도로 싫을지라도


한 번씩 아이에게 아이의 삶과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좋겠다.


적어도 외로움을 자처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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