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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Feb 06. 2023

설에 이모부에게 배운 대로 했다

- 알면서 당하는 인형 뽑기도 제법 즐겁다

"이모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산도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뭐 하고 있니?" 

"처가 와서 애랑 조카들 데리고 놀고 있어요. 놀다 보니 이모부 생각도 많이 나고 보고 싶네요. 이모부는 뭐 하셔요?"


이모부는 나의 '보고 싶다'는 말에 약간은 쑥스럽지만 호탕하게 웃으며 '놀러 오라'며 곧 보자고 답했고, 우리는 성묘 등의 화제로 명절다운 근황 토크를 이어간 뒤 대화를 마쳤다. 


언젠가 들었던 아내의 말처럼 환갑을 앞둔 이모부와 30대 조카의 대화치고는 지나치게 달달하다. 


헌데 생각해 보면 나는 이모부에게 배운 대로, 그가 나와 동생, 사촌들에게 베풀어준 대로 할 뿐이다. 

언젠가 이모부와 놀러가다가 들린 가성비와 맛으로 유명한 청주 우리마트 초코 케이크 

이모부는 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부터 내 삶에 깊숙하게 들어왔다. 


외가의 막내인 이모와의 결혼을 앞둔 뒤부터 주말이면 우리 집으로 놀러 왔다. 주말이면 주로 우리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이모와 데이트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와 놀아주기 위해 집으로 놀러 왔다. 


결혼 직후부터 서울과 지방을 자주 오가며 처형네와 친하게 지내던 아빠도 이모부의 그런 노력에 초반부터 반한 듯했다. 그렇게 아빠와 큰 이모부, 막내 이모부는 자연스럽게 절친 같은 사이가 되었다. 


나는 그 절친 사이의 모임에 따라다니며 여름이면 계곡에서 함께 수영을 했고 겨울이면 스케이트를 하고 눈싸움을 했다. 때로는 이모부의 기름차에 타고 배달을 따라다니며 목장갑을 끼고 도움 안 되는 손놀림으로 호스를 잡으면서 어른이 된 척했다. 


그리고 명절이면 이모부는 애들을 따로 모아서 나와 인형 뽑기를 하거나 오락실에 가는 등으로 아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줬다. 


목포에서 다트로 풍선 터트려서 인형 받기를 아련하게 보고 있는 아들. 내 노력으로 제법 괜찮은 러버덕을 받았다. 

신의 손 같은 솜씨로 원하는 인형을 뽑아주는 이모부는 나와 우리의 영웅이었고, 

못 뽑는다고 해도 같이 보내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이건 지금도 같다. 


아빠와 이모부들 그리고 나, 아들까지 추가된 만남의 자리에서 우리는 이제 같이 술을 마시고 제법 사는 이야기를 하며 어른 같은 수다를 떨고 농담하며 이쁜 카페나 맛집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나도 이번 설에 처가에 가서 똑같이 해봤다. 

신기하게도 아들과 조카 둘의 나이가 같다. 동갑인 아이 셋과 그보다 몇 살 많은 누나 하나, 이렇게 넷이 모인 설날에 나는 세뱃돈을 받은 아이들을 데리고 오락실에 갔다. 

농구 게임을 하고, 인형 뽑기를 하고, 비비탄 사격 게임을 하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처가로 돌아갔다. 

 

인형뽑기하고 있는 조카들

아쉽게도 인형 뽑기의 난이도는 극악이었다. 


동네 단골이 아니라, 뜨내기를 노린 것인지 지나칠 정도로 힘이 없고 어느 시점에 약해지는 것이 거의 다 잡은 인형도 건지기 어렵게 만든 티가 강하게 났다. 


인형 뽑기를 가끔 즐기는 편이고 지난번에 아들과 다른 조카와 놀러 갔다가 제법 많은 인형을 뽑아서 선물로 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기대도 컸지만...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벌써 '가성비' '성과' 등을 이야기하는 큰 조카는 "사기당했다"며 울분을 토로했지만, 나는 이런 것은 "가끔 알면서도 속고 기분 좋게 즐기면 그만"이라며 적당한 돈을 지불하고 우리가 즐겁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산 것으로 생각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헤어질 때, 다음에는 더 인형 뽑기와 사격, 공 던지기 등의 오락을 연습해서 보자고 인사했다. 


아이들은 모두 웃었고, 나도 웃었다. 


다음이 기대된다. 


앞으로도 이모부에게 배운 대로 해야겠다. 그러다 이 조카들이 더 크고, 성인이 되면 내가 그렇듯 술 한 잔 같이 즐길 수 있는 사이가 되길 바란다. 


같이 계곡을 가고 눈싸움 하던 이모부의 아들, 사촌동생은 이제 나의 카페 투어 친구다. 둘이 갔던 레스토랑의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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