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수록 극의 매력은 살아난다
이성민 배우를 좋아한다. 그리고 극에서 그의 담배에 불이 붙지 않을수록 극의 맛은 깊어진다.
영화 <고고70>에서 밴드 닐바나를 아주 맛있는 발음으로 소화하며 알려주던 그 팝 칼럼니스트 연기를 할 때부터 강한 인상이 박혔다.
그 계기로 그가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는 거의 다 봤다. 지금보다도 영화와 드라마 등의 콘텐츠에 빠져서 살던 때였고 20대 몇 년 동안은 극장에 걸리는 개봉작은 모두 보던 시기를 보낸 덕분에 그는 내 안에서 꽤나 친숙해졌다.
그리고 삶에서 어떤 루틴을 만드는 것처럼 이직을 반복하고 고민할 때마다 드라마 <미생>을 틀어두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심사숙고와 결정을 반복했다.
그 작품 속에서 그의 담배에는 불이 붙지 않는다. 극 중에서 그가 말한 것처럼 접대용으로라도 라이터를 들고 다니면서 내가 불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그는 담배를 갑에서 꺼내거나 입에 물고 고민만 할 뿐 연기를 시원하게 뿜고 들이마시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극 중 그의 연기가 더 맛있다. 담배 연기 없는 연기에서도 보이지 않는 연기가 느껴질 정도로 간절함이 보여서 극이 더 풍부해졌다.
회식으로, 접대로 각종 술을 시원하게 마시던 그가 정작 술은 거의 못하고, 평소에 흡연은 한다는 사실에 피식 웃으면서 그의 연기력에 다시 감탄할 정도로 담배는 맛있어진다.
이어 그가 박정희 대통령으로 분했던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그는 몇 차례 담배를 피우지 않고 망설인다.
박정희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기에 귀를 분장하고 교정기를 끼며 그의 양복을 제작했던 재단사가 만든 의상을 입고 연기한 그는 이병헌이 "각하,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라고 일갈할 때와 "혹시 이아고(사설 정보기관)라고 아십니까?"라는 불편한 질문을 할 때 흡연을 주저한다.
어른과 맞담배를 피는 것은 예절이 아니고, 같이 핀다고 해도 아랫사람은 고개를 돌려 불을 붙이거나 연기를 내뿜는 흡연 예절이 서슬 퍼렇게 살아있던 당시를 생각하면 모두의 윗사람으로 절대 권력을 누리던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고 멈칫한 것만으로도 극의 분위기는 자연스레 변화된다.
그리고 최근 티빙에 공개된 웹툰 원작의 드라마 <운수 오진 날>에서도 세상 물정 없이 선하고 순한 택시기사인 그의 담배에 불이 또 붙지 않는다.
연쇄살인마를 손님으로 태우고 서울에서 그가 밀항하려고 하는 묵포까지 한참을 가야 하는 여정에서 잠시 들린 휴게소, 이곳에서 또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르는 그를 피해 잠시 담배 한 대 태우려고 하는데 또 담배에 불이 붙지 않는다.
이어지는 다른 작품에서도 가끔 그의 담배에 불이 붙지 않고 극이 더 깊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좋아하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건강 관리 잘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 라는 동화 속 결말 같은 끝을 맞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