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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도 Mar 03. 2024

지쳤을 때만 잠을 청해볼까 한다

여기 잠에 집착했던 삶을 반성한다

"지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잠이 오지?"


그래. 또 <나의 아저씨>다. 이 대사를 했던 아이유의 상대역 배우 이선균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이 드라마가 주는 울림은 여전하다.


몹시 피곤해 보인다며 잠은 잤는지 묻는 친구에게 이지안은 답한다. 세상의 모든 피곤함을 짊어진 것 같은 표정으로 진정으로 신기하다는 듯이.


잠들 때가 되면, 적당히 피곤하면, 내일의 일정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으면 등등의 이유로 잠을 청하는 모든 이들이 지치지 않고 잠드는 일에 놀라워한다.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에 더 놀랐다. 내게 잠은 행복이자 안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꽤 오랜 세월 잠에 집착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할 때면 학교의 휴게실이나 찜질방 등을 찾았고, 낮에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집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쓰러질 것처럼 피곤했거나 오랜 시간 제대로 잠들지 못한 상태로 공부나 일을 해서 그랬던 적은 거의 없다.


그저 노곤노곤했을 뿐이다. 내 방, 내 침대는 나의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머리만 쏙 내밀고 발까지 이불을 덮으면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습관은 나를 오랜 세월 파고들면서 좀 먹어왔다. 버텨내거나 이길 내성은 점차 사라졌고, 낮잠 같은 것이 허용 안 되는 상황에서도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이제 그만 자야지 하면서도 이 다짐은 며칠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얼마 전 잠에서 깬 내 모습이 세상 한심해 보였다. 틀림없이 만족스럽게 자고 일어난 상태라서 얼굴이 괜찮아야 하는데, 묘하게 찌들고 지쳐 보였다.


그때부터 진짜 지쳤을 때만, 가능하면 감정적으로만이 아니라, 체력적으로 소진되었을 때만 잠을 청해 보기로 했다.


얼마 전 개운한 마음으로 갔던 선운각 가는 길.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할 일이 마구 보이기 시작했다. 빨래, 청소, 걸레질, 재활용 버리기, 설거지, 쓰레기 비우기, 화분 정리 등등 집 안에도 세상 할 일이 많았다.


매일 퇴근 후에 집안일을 해봤다. 주짓수 스파링과는 또 다른 체력 소진이다. 그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지쳤을 때만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마음을 먹자 밖에도 할 일이 많다. 달리는 골목에 따라 약간씩 다른 풍경을 보며 뛰기 시작했다. 살이 많이 찐 상태로 뛰는 만큼 살살, 무리 가지 않게 느리게 뛴다.


오늘은 4km가량을 달렸다. 재활용을 버렸고 쓰레기를 비웠다. 이렇게 마음의 빚이 없는 상태로 지쳤을 때만 잠드는 날을 늘려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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