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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a Aug 28. 2018

브리즈번에서 산다는 것

By myself



한국에서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숙소는 단 4일뿐이었고 4일 이내에 우린 집을 구해야 했다.

집을 구할 수 있는 거리는 시티를 중심으로 버스 1-2 정거장 정도는 1존, 조금 더 멀리는 2존 가장 멀리는 4존까지 였다.

당연하게도 시티는 가장 방 값이 비쌌고 멀리 갈수록 방값이 반값이나 차이가 날 정도로 싸졌다.

한국에서 가장 걱정했던 방 구하기. 생각만큼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일이었다.

'썬브리즈번'이라는 한인 커뮤니티를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방의 랜드로드와 연락하면 직접 방을 보러 갈 수 있다. 방 컨디션, 주변 시설, 방 값 등이 마음에 들고 랜드로드와 잘 이야기가 된다면 방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조건이 나의 마음에 드는 방은 쉽게 나타나지 않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방 값이 대체로 싼 3-4존에 살까 고민도 하고 어학원이 가깝고 한식당, 카페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시티에 살까 고민도 했지만 너무 먼 곳도 너무 번잡하고 시끄러운 시티도 싫었다.

그렇게 나는 시티에서 버스로는 한정거장, 걸어서는 20-30분 걸리는 싸우스 뱅크라는 동네에 살게 되었다.

이 결정은 정말 내가 브리즈번에 와서 제일 잘한 결정이 아닐까 싶다. 너무너무 예쁜 동네이다.



인공비치가 있는 사우스뱅크
밤에도 예쁜 곳







에어비앤비 숙소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우린 이사를 했다. 처음으로 브리즈번에서 나의 방을 얻게 되었다.

그 집에는 랜드로드, 칼로스(콜롬비아인), 아론과 나의 첫 룸메가 살고 있었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사는 집이라서 더 끌렸다. 나의 첫 룸메는 일본인 이였다.

한국인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과 산다는 것이 처음엔 마냥 신기하고 새롭게 설렜다.

내가 언제 또 이런 사람들과 살 수 있으며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정말 호주 온 지 1주일도 안된 상큼한 생각이었다.

내가 기대한 것과 달리 셰어 하우스에서 잘 모르는 사람들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인내과 배려가 필요한지 그땐 몰랐다.

처음으로 그 방에선 잔 날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새로운 나의 침대와 방에 있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토요일엔 이사를 하고 일요일인엔 썬샤인 코스트로 놀러까지 다녀오며 브리즈번에서의 첫 주말을 정신없이 보냈다. 그렇게 정신 차려 보니 어학원 갈 날이 성큼 다가왔다.

오랜만에 학교를 가는 거라 설레기도 설렜고 모든 걸 영어로만 해야 해서 가서 알아듣기나 할까 겁도 났다. 난 사실 참 겁이 많다.

이브닝 클래스를 등록해서 5시부터 9시까지 수업이지만 첫날은 테스트도 치고 학원에서 대해 설명도 듣는 오티였기 때문에 아침 9시까지 등교를 해야 했다.

길치에다가 브리즈번에 길이 익숙하지 않을 때 여서 구글맵을 켜고 시티까지 열심히 걸었다.

싸우스 뱅크에서 씨티까지 가려면 항상 빅토리아 브릿지를 건너야 했다.

브릿지를 건널 때면 맑은 날의 브리즈번 날씨와 브리즈번의 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등굣길이 이렇게나 예쁘고 기분 좋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지각할까 지하철역으로 뛰어가던 한국에서의 출근길과는 정말 다른 아침이었다.

여유롭게 걸어가던 길이, 아침 공기가 너무너무 상쾌했다.



다리를 건널 때 보이는 풍경










어학원에 도착하니 나처럼 처음 온 애들이 한가득 있었다. 한국 사람은 하나 없고 내가 보기엔 영어를 잘하게 생긴 외국인만 한가득 있었다.

커리큘럼, 학원 규칙, 테스트 등에 대한 설명 모두 영어였다. 그것도 호주 영어. 머리가 아팠다.

학원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점심시간을 잠깐 가지고 테스트를 마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브닝 클래스는 당일 오후부터 바로 시작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다시 난 30분을 걸어 어학원에 도착했다.

이브닝이 클래스여서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주디,기쟘,데이빗 이렇게 셋 뿐이었다. 나중에 4명 정도 더 늘어나긴 했지만.

이국적으로 생긴 아이들 중에 낯익은 동양인이 한 명 있었다. 누가 봐도 한국인 같았는데 역시나 한국인이었다.

첫날이라 얼른 저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수업도 열심히 들어야지 하는 의욕에 불탔다.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고 수업 들을 준비를 하니 아담(선생님)이 너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 말했다.

"우린 월요일마다 테스트를 치는데 넌 테스트할 게 없으니 오늘은 돌아가도 좋아"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다. 응 ㅇ.ㅇ? 이런 표정을 지으니 친절하게 한 번 더 말해주셨다. 돌아가도 좋다고.

그렇게 난 첫날엔 허탕을 치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내 계획과는 달리 갑작스레 생긴 텅 빈 시간에 뻥 졌다.

한국이었다면 갑작스레 생긴 텅 빈 시간이 너무 좋아서 친구들을 만나서 맛있는 걸 먹던, 다니엘(나의 강아지)과 산책을 하던, 운동을 가던 내가 좋아하는 일 무언가는 꼭 했을 텐데.

브리즈번엔 가족도, 친구도, 다니엘도 없다는 사실에 쓸쓸해졌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우울했다.

땅만 보고 걷던 도중 하늘과, 주변 풍경에 눈에 들어왔는데 그 와중에 너무 예뻤다. 때마침 노을 지던 시간이라 브리즈번이 너무 예뻤다. 속도 없이. 걸음 멈추고 카메라를 들었다.

'아 내가 정말 예쁜 도시에 와있군 하구나!' 하는 순간이었다.


그 날 봤던 브리즈번 모습


그날 봤던 하늘








해외에서 혼자 산다는 건 모든 걸 나 스스로 해야 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독립한 상태여서 모든 걸 다 내가 스스로 해왔지만 한국과는 크게 달랐다.

집에는 당장의 먹을 것도 생필품 조차 제대로 갖춰진 게 없었다.

마트에서 샴푸, 린스, 바디워시, 치약 등 필요한 것들을 사야 했으며 무거운 걸 들고 가는 것도 일이었다.

쿠팡에서 손가락 몇 개로 구입한 뒤 집 앞까지 배달해주는 쿠팡맨따윈 없었다.

호주에서 참 많이 느꼈다. 한국은 한국인이 살기 정말 최적화된 나라인걸.

또 끼니를 챙기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침은 먹지 않는 날이 더 많았고 점심은 회사에서 사 먹었기 때문에 내가 챙겨하는 건 저녁뿐이었다. 저녁마저도 친구들과 약속 있는 날엔 외식하고 동생과 매일같이 배달음식을 이용했기에 내가 요리하는 날은 한 달에 한번 정도가 다 였다.

하지만 브리즈번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챙겨 먹여야 했다.

정말 뭘 먹어야 하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요리에 미숙한 내가 호주에서 먹은 건 빵, 딸기잼과 요거트였다.

한국에서는 일 년에 한두 번 쓰는 토스트기를 밥솥 대신 매일 같이 사용했다. 간단하게 배 채우기 딱이었다.

그러다 질리면 한번 해놓으면 두 세끼 정도는 해결되는 김치볶음밥과 카레를 번갈아가면서 해 먹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른 건 엄마였다.

매일 같이 메뉴를 바꿔 저녁상을 차려주시던 엄마가 너무 존경스러웠다.

난 1인분 하기도 이렇게 쩔쩔매는 능숙하게 5인분 아니 그 이상을 뚝딱뚝딱 20년도 넘게 매일 같이 해왔다는 게 너무 대단했다.

가끔씩 엄마가 "오늘은 또 뭐 해 먹지? 먹고 싶은 거 있음 말해줘!"라고 했을 때 정말 메뉴 결정하기가 힘들어서 물은 건데, 항상 "아무거나 해줘"라고 건성으로 대답한 게 미안했다.

호주 살면서 사소한 거에 엄마의 부재를 느끼고 감사함을 느끼게 되는 계기가 정말 많았던 것 같다.

밥 하나 하면서 오만 생각이 다 들게 하는 호주 살이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첫 브리즈번 근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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