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8(월)
소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 즈음 갔다. 그동안 갔던 소아과는 다 별로여서 그냥 일반 내과를 갔다. 여기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소아과보다는 나았다. 예상했던 대로 의사 선생님은 ‘임파선이 부었다’라고 말씀하셨다. 항생제를 비롯한 약을 처방받고 왔다.
점심도 집에서 먹었다. 아내가 ‘팟타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배달을 시켰다. 아이들이 먹을 음식으로 볶음밥과 쌀국수를 시켰는데 볶음밥이 생각보다 매워서 아이들이 먹지 못했다. 쌀국수로는 양이 턱없이 부족했고. 아내와 내가 먹는 팟타이와 쌀국수도 아이들이 먹기 어려운 정도로 매웠다. 결국 소면을 삶았다. 그걸 쌀국수 국물에 넣어서 아이들의 남은 배를 채웠다.
즐겁게 점심을 먹고 아침처럼 다시 한 번 아이들에게 ‘좋은 하루’를 위한 각자의 지켜야 할 선을 당부하고 떠났다. 떠난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시윤이 좀 그냥 여보 옆에 데려다주고 싶네 진심”
순간 짜증인지 뭔지 모를, 하지만 불쾌한 것만은 확실한 감정이 확 올라왔다. 그게 시윤이를 향한 건지 아내를 향한 건지도 불분명했다. 짜증과 지긋지긋함 같은 감정들이 뒤섞인 매우 불쾌한 감정이었다.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또 무엇 때문에 그러냐’고 물었는데, 아마도 거기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됐을 거다. 아내는 자기를 향한 날 선 반응이라고 느꼈는지, 역시나 짜증을 잔뜩 묻힌 대답을 해 왔다. 아내는 얄밉다고 했다. 나와 함께 있을 때는 그렇게 천사처럼 굴더니 내가 가고 나자 바로 태도를 바꾸는 시윤이의 모습이 얄밉다고 했다. 난 아내의 그런 뉘앙스에 기분이 안 좋았던 것 같다. 시윤이를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감정 다툼의 대상으로 놓고 나에게 고발하는 느낌이었달까. 당연히 아내의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 그 순간에 그렇게 느꼈다는 말이다. 나도 자녀들과 함께 있을 때면, 여전히 감정의 화신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데. 다만 이건 모든 상황이 다 끝나고 이성적인 사고회로 가 작동할 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그 순간에는 아내의 그런 반응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아내와 한참을 통화했지만 오고 간 말은 별로 없었다. 아내와 통화를 하고 나서는 시윤이와도 통화를 했다. 즉시 ‘불손한 태도’를 멈추라고 얘기했다.
물론 시윤이는 오후 시간을 보내며 엄마와 누나에게 사과도 하고, 감정도 잘 추슬렀다. 잘 지냈고. 시윤이도 순간이다. 그 순간의 짜증을 참지 못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순간의 인내가 부족하니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퇴근했을 때는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었다. 시윤이를 방으로 불렀다. 오히려 이럴 때 훈육을 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새로운 시도였다. 그동안은 낮 시간에 일어난 일은 ‘퇴근한 아빠’가 직접 개입할 수 없는 걸로 생각을 했는데, 그 구조를 좀 바꿔보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윤이의 ‘선 넘는’ 말과 행동에 관해서는 아빠인 내가 직접 훈육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평화롭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겠지만 인격적인 훈육의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내 생각에는 시윤이도 잘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날씨가 너무 좋았다. 주말 내내 우중충해서 더 좋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기 전에 산책을 하러 나왔다. 물론 아내는 집에 있고 아이들만 데리고. 아내도 함께 나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건강하게 향유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간접 체험을 하고 있다. 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음료수도 하나씩 먹었다.
너네도 힘들지. 이제 몇 주 안 남았을 거야. 조금만 더 잘 버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