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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18. 2024

바다를 봐도 그다지

23.09.17(주일)

소윤이는 목이 눈에 띄게 부어 있었다. 가동범위도 매우 작아졌다. 왼쪽으로는 고개를 조금 트는 것도 버거워했다. 목의 통증만큼 몸 상태도 나쁜 건 아니었지만 정상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교회에 가는 건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조금 힘든 정도면 가는 게 어떻겠냐고 얘기했는데, 앉아 있는 게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소윤이는 아내와 함께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덕분에 오랜만에 새로운 조합(나, 시윤이, 서윤이)으로 교회에 갔다.


새로운 조합이면서도 나로서는 믿을 만한 구석이 사라진 셈이었다. 시윤이가 소윤이의 빈 자리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또 유일한 오빠이자 임시 보호자가 되면 든든한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시윤아. 오늘 예배 드릴 때 혹시나 서윤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거나 아빠한테 가고 싶다고 하면 시윤이가 화장실 데리고 가고, 아빠한테 데려다 줘. 알았지?”

“네”

“서윤이가 부탁하면 짜증 내지 말고 귀찮아 하지 말고. 응?”

“네”


사실 다른 건 어려운 게 없을 거다. 시윤이한테 붙어서 치대거나 짜증을 내는 건 그저 ‘귀찮음’의 영역일 테지만, 소변이나 대변의 요구가 있을 때는 시윤이가 ‘실질적인 역할’을 맡아야만 했다. 물론 많은 선생님들(이자 집사님, 권사님)이 계시지만 그래도 시윤이도 불시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야 했다. 일단 서윤이의 소변 주기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도 데리고 갔다. 대변 주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서윤이가 예배 시간 중간에 올라오고 그러지는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시윤이에게 서윤이의 점심식사 지도(?)까지 부탁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서 예배가 끝나면 나에게 데려다 달라고 했는데 아예 소식이 없었다. 예배가 끝나고 식당으로 내려가 보니 서윤이는 그저 잘 놀고 있었다. 잘 놀다가 나를 발견하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언제나 좋다. 저 사람은 나를 피하지도 않을 거고, 나를 튕겨내지도 않을 거고, 무조건 안전하게 나를 안아줄 거라는 100%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달음질이다.


오후 예배 때도 반주였다. 원래 반주만 마치고 바로 집으로 갈까 했다. 소윤이의 부은 목을 보니 걱정이 돼서 주일에도 진료를 하는 병원에 가 볼까 했다. 설교를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당장 시급한 문제가 드러난 것도 아니고, 추정에 의한 걱정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게 영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예배도 다 드리고 그때도 진료가 가능하다면 가 보기로 했다. 오후 예배 중간에 소윤이가 열이 39도까지 올랐다는 아내의 메시지를 받았지만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깨찰빵을 먹는다고 했다. 일단 뭐라도 먹는다는 건 좋은 신호였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서 본 소윤이는 의외로 괜찮아 보였다. 열이 한 번 올랐다가 떨어지면서 몸이 괜찮아졌는지 전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여전히 목은 돌리지 못했다. 아내는 비슷했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정상적인 일상의 소화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남은 오후 시간을 보낼 수단으로 영화를 생각했다. 아이들이 먼저 제안을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주 어렸을 때 보다가 무서워서 끈 ‘니모를 찾아서’였다. 상어에게 쫓기는 장면은 무섭고, 엄마를 잃고 아빠와 헤어지는 장면은 슬퍼서 더 보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시윤이는 이번에도 조금 무서웠는지 겁 먹은 표정을 머금고 봤다. 그래도 끝까지 다 봤다. 서윤이는 팝콘을 찾았다.


“아빠. 팝콘은 없어여?”

“응. 오늘은 팝콘이 없어”

“뭐라도 먹고 싶은데”


영화로 오후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육아일과를 마치고 나니 진이 빠지긴 했다. 아이들을 모두 눕히고 밤이 되자 아내는 그제야 침대를 벗어나 조금 움직였다.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는 요즘, 아내가 갑자기 자몽에이드가 먹고 싶다고 했다. 제법 늦은 시간이라 마땅히 살 만한 곳이 없었는데, 맛집 검색과 발굴의 장인인 아내가 새로운 곳을 찾아냈다. 배달을 시키려고 하길래 내가 가지러 간다고 했다. 나간 김에 바닷가에 가서 바람도 좀 쐬다 올 생각이었다.


주차를 하고 잠시 바닷가를 거닐었다. 기분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가 막 쌓인 건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뻥 뚫린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간 거였는데 생각보다 가슴이 시원해지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저 그랬다. 바다야 언제나 좋으니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졌지만, 엄청난 해소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서 자몽에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는 거의 다 죽어가는 사람이었는데 밤에는 조금 생기를 되찾아서 반가웠다. 그렇다고 엄청난 무언가를 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그저 평소에 비해 조금 더 오래 소파에 머물며 대화를 나눈 거다. 그게 어디인가. 대화는커녕 얼굴을 보는 것도 힘든 게, 요즘 아내와의 육아퇴근 후 일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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