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6(토)
“아빠. 오늘은 뭐 할 거예여?”
“아빠. 오늘은 어디 갈 거예여?”
아이들은 내가 축구를 하고 오자마자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게. 뭐 하지? 어디 가지?”
나도 딱히 계획이 있지는 않았다. 게다가 일기예보에서는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다. 비가 온다고 하니 실내에 갈 만한 곳을 생각해 봤지만, 당연히 딱 떠오르는 곳은 없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검색의 힘을 빌려볼까 했지만, 비슷했다. ‘고래생태체험관’, ‘과학관’ 같은 곳이 나오기는 했는데 왠지 내키지 않았다.
“일단 생각해 보자. 아빠도 잘 모르겠다”
오후부터 온다던 비는 오후가 되기도 전부터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주말만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던 아이들도, 그런 아이들의 요구를 해소하기 위해 기꺼이 한 몸 불사를 준비가 되었던 나도 김이 샜다. 나도 아이들도 갈 길을 잃었다.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소윤이가 몸이 안 좋았다. 여전히 속이 안 좋아서 누워 있는 아내 옆으로 슬쩍 가더니 그대로 잠들었다. 대낮에. 소윤이가 자기 스스로 낮잠을 자는 일은 정말 정말 드문 일이다. 꽤 오랫동안 잤다. 잠에서 깬 소윤이에게 혹시 몸이 안 좋냐고 물었더니
“쪼끔?”
이라고 대답했다. 목이 아프다고 했다. 당연히 입 안쪽을 말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른들이 담에 걸린 것처럼 목이 아프다는 거였다. 가만히 보니 왼쪽 목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부어 있기도 했다. 아내는 부은 소윤이의 목을 보더니 단박에 진단을 내렸다.
“임파선염인가?”
이유가 있었다. 아내도 얼마 전에 똑같은 증상을 겪었다. 열이 나거나 기운이 확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목을 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목이 아프다고 했다. 덕분에 갈피를 못 잡던 외출 계획이 전면 백지화됐다.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도 상황을 이해하고 수긍했다. 그렇다고 천사처럼 서로 이해와 양보가 넘치도록 보냈다는 건 아니지만.
집에 쌀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한 톨도 없이 똑 떨어졌다. 쌀을 사러 가야 했다. 아이들에게 마트에 함께 갈 것인지 물어봤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따라 나서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집에 있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또 시윤이가 자기도 집에 있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다시 고민했다. 시윤이도 누나를 따라 고민했다. 시윤이에게 한 소리를 했다. 자꾸 다른 사람 의견에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결정하라고. 시윤이는 따라가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따라 가고 싶기도 하면서 몸이 좀 안 좋으니 그냥 집에 있고 싶기도 하고 그런 듯했다. 결국은 함께 가겠다고 했다. 세 명 모두 데리고 나와야 아주 잠시나마 아내에게 혼자 있는 시간도 줄 수 있다.
쌀 말고는 살 게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쌀을 사면 쇼핑은 끝이었다는 거다. 그저 쌀만 사러 나온 게 아니라 외출 없이 토요일을 보낸 아이들의 욕구 해소,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붙어 지냈던 아내에게 선사하는 자유시간도 목적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머물러야 했다.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해 줄 간식을 고르라고 했다. 소박하게도 ‘비요뜨’를 하나씩 골랐다. 핫도그도 먹고 싶다고 했다.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을 냉동 핫도그도 샀다. 가래떡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마트 안의 떡집에는 가래떡이 없었다.
“아, 치토스 맛있겠다”
소윤이가 매대에 진열된 치토스를 보면서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다. 사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혼잣말에 가까웠는데, 그냥 사 주고 싶었다. 성분표를 보면 차마 사 주기 어려웠을 거라, 그냥 아무것도 안 보고 감성적으로(?) 사 줬다.
“소윤아. 아빠가 어렸을 때는 치토스에 따조라는 게 들어 있어서 그걸 모으려고 샀어”
일부러 시식도 좀 하면서 시간을 더 보냈다. 소윤이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멀미인지 몸이 안 좋아진 건지 아무튼 상태가 조금 안 좋아졌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을 때도 몸이 안 좋아서 밥을 얼마 못 먹었다.
“아빠. 비요뜨 먹어도 돼여?”
이럴 때 보면 소윤이가 의외로 불량식품을 향한 욕구가 강하다. 비요뜨는 주기로 했으니까, 또 소윤이가 밥을 안 먹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비요뜨를 오늘의 마지막 섭취이자 일정으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