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깨아빠 Mar 18. 2024

고요를 향해 달리는 육아

23.09.15(금)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 모두 엄청 일찍부터 깨어 있었다. 5시 30분쯤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그때 이미 세 녀석 모두 마치 한낮처럼 깔깔거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자라고 말을 하기는 했지만 전혀 그럴 기색이 없어 보였다. 난 더 자려고 다시 눈을 감았지만 거의 못 잔 거나 다름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그래도 어젯밤의 후회를 떠올리며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서 잠결에도 애를 썼다. 잠이 채 달아나지 않았을 때, 조금만 부주의하면 바로 감정 제어 능력을 상실하게 되니까.


아내는 여느 날과 비슷하게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지내줘서 정신적 소모가 덜 하다고 했다. 시윤이도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애를 썼고, 종종 내는 시윤이의 짜증을 소윤이도 기꺼이 잘 받아줬고.


요즘 낮잠을 자지 않는 서윤이는 자진해서 낮잠도 잤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무렵에 누워 있는 아내 옆으로 슬그머니 왔다고 했다.


“서윤아. 졸려? 엄마랑 같이 좀 잘까?”

“아니여. 저 안 졸려여”


이렇게 대답한 지 몇 분 안 돼서, 아내 옆에 누워 잠들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엄청 피곤했을 텐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렇다고 낮잠을 자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야간 활동을 위한 낮잠이라는 조건을 걸면 모를까. 오늘은 철야예배에 가야 하는 날이니 그걸 얘기해 볼까 싶기도 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나 혼자 교회에 가고 아이들은 일찍 재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는 내가 퇴근하자마자 교회에 갈 것인지, 간다면 자기들도 함께 갈 것인지를 물어봤다. 사실 확실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상태는 아니었지만 훅 들어오는 소윤이의 물음에 순간적으로 대답했다.


“오늘은 아빠 혼자 가야 할 것 같아. 너희는 오늘 너무 일찍 일어나서 너무 늦게 자면 안 될 거 같아”


소윤이와 시윤이는 큰 반응이 없었다. 납득한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자기들이 느끼는 피로가 있기도 했고.


K의 아내가 준 나물 반찬을 활용해서, 저녁은 비빔밥을 먹었다. 아이들은 각각 덜어주고 아내와 나는 양푼 그릇에 재료를 모아 넣고 먹었다. 아내는 여전히 속이 불편하고 정상이 아니기는 했지만 밥은 어느 정도 먹기는 했다. 아내와 내가 각자의 분량을 따로 덜어서 먹는 게 아니고 오늘처럼 한 데 모아 놓고 함께 먹을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아내가 한 숟가락 먹을 때 나는 한 세 숟가락, 그것도 아내보다 1.5배는 많은 양을 한 번에 떠서 먹기 때문에 의식 없이 먹으면 아내의 섭취 부족 사태가 발생한다. 아내의 속도와 섭취량을 예의주시하며 나의 숟가락질 속도를 조절했다. 임신 기간에는 호르몬 수치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이에 따라 별 거 아닌 일에도 큰 서러움을 느낄지도 모르니까.


혼자 교회에 가기로 한 만큼, 교회에 가기 전에 육아 일과를 마무리 하는 게 급선무였다. 저녁을 먹고 서둘러서 아이들에게 세면 및 양치를 지시하고 (요즘 소윤이와 시윤이는 100번 중에 99번은 스스로 씻는다) 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아내에게 ‘최대한’이 아니라 ‘아예’ 할 일을 남기지 않는 게 나의 목표였다.


다행히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고 집에서 나왔다. 교회에서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오니 모두 자고 있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고요했다. 이제 한 2-3주 된 거 같은데, 짧은 시간에 익숙해진 풍경이다.


고요한 집에서 거실 식탁에 홀로 앉아 노트북을 펴는 내 모습. 그 전에 치열하게 주방과의 사투를 벌이고.

매거진의 이전글 공든 탑과 다짐의 공통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