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2(금)
아내는 어젯밤부터 머리도 아프다고 했다. 임신을 인지한 이후로는 입덧이 워낙 강력해서 다른 통증을 느낄 틈이 없었는데 이 놈의 두통은 그 와중에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안 그래도 충분히 힘든데 두통까지 겹치니 아내는 무척 기운이 없었다. 서윤이는 계속 짜증을 내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자비가 없고.
“팬티에 똥을 싸서 너무 너무 화를 냈음”
자비가 없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팬티에 실수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라는 건, 애들 다 재우고 하루를 곱씹을 때는 너무 공감이 되고 저항감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 말이다. 현실에서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한숨과 짜증을 내뱉을 때도 많은 게 문제다. 아내처럼 몸과 마음이 지쳐서 더 이상 뭘 할 힘이 없을 때는 더더욱. 짜증 내고 화를 낼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아내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나도 그렇다는 거다). 아내는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괜찮아. 잘 위로해 주면 되지”
조금 뒤에 아내가 서윤이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냈다. 서윤이도 요즘 나름대로 편지를 쓴다. 커다란 스케치북에 휙휙 줄을 긋거나 무질서하게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편지라고 하면서 준다. 아직 쓸 줄 모르니 표현을 그렇게 하는 거고, 나름대로 내용은 다 있다. 오늘 서윤이가 쓴 편지의 내용은 ‘엄마. 팬티에 똥 싸서 미안해여’였다.
퇴근 무렵에는 아내가 시윤이와 서윤이의 만행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소윤이 혼자만 집 치우고 있어요. 시윤이는 정말 얄밉게 굴고. 강서윤도 입으로만 떠들고 있고”
오늘만 특별히 그런 게 아니라 이게 일반적인 모습일 거다. 언제나 소윤이가 가장 고생하고 가장 수고한다. 그러다 보니 가장 억울할 때도 많겠지?
저녁에는 교회에 가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모두 데리고 갔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드럼을 치느라 멀리 있는 상황에서 서윤이는 엄청나게 까분다. 언니와 오빠에게 짓궂은 장난도 치고 떼도 쓰고. 소윤이는 마치 엄마처럼, 막내 동생의 여러 말과 행동을 넓게 품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멀리서 봐도 소윤이의 수고와 애씀이 느껴진다.
요즘은 소윤이와 시윤이도 기도하는 시간에 함께 기도를 한다. 무슨 기도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윤이와 엄마의 기도를 많이 하지 않을까 싶다. 시윤이는 지난주에도 이번 주에도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자꾸 잠이 들어여. 기도하다가 잠들고, 기도하다가 잠들고”
누굴 닮았겠니 아들아.
아내는 여전히 두통이 심했다. 입덧약은 먹어도 두통약(타이레놀)은 안 먹고 버텼다. 침대 옆 화장대 위에 물과 약을 가져다 놓기만 하고 먹지 않고 있었다. 아마 윤이를 생각해서 그랬을 거다. 최대한 버텨보려고. 입덧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두통이라도 얼른 사라졌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