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30(토)
아침을 먹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갔다. 장모님은 집에서 반찬을 만드셨고 아내는 쉬었다. 나와 장인어른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소윤이는 지난번에 왔을 때 함께 놀았던 00에게 연락을 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라고 했더니, 장인어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00야. 나 기억 나? 소윤이?”
“(기억남)”
“너 지금 어디야?”
“(집)”
“지금 뭐 하고 있어?”
“(뭔가 얘기했을 거다)”
“나 지금 0000공원 가는데 같이 놀래?”
00 입장에서는 소윤이가 굉장히 ‘아날로그’한 친구일 거다. 휴대폰이 없어서 자기 엄마 번호를 쪽지에 적어서 줬던. 00이는 소윤이의 부름에 흔쾌히 응했다. 통화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00 혼자 킥보드를 타고 나왔다. 엄마는 집에서 정리를 하고, 아빠는 동생과 함께 산책을 나갔다고 했다.
소윤이와 00는 막상 만나서는 데면데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공유한 시간이 많지 않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나마 조금 더 자주 만났지만, 그건 아마 기억에 없을 거다. 자기들의 기억이 존재하는 시점 이후에는 두어 번 만난 게 전부였으니까. 게다가 둘 다 성격이 엄청 외향적인 것도 아닌 듯했다. 그래도 아예 따로 노는 건 아니었다.
‘쟤네 서로 반갑고 좋은 거 맞긴 맞겠지?’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나라도 반갑다고 꼭 살갑고 친밀하게 구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오래 놀지는 못했다. 점심에 소윤이가 좋아하는 월남쌈 가게에 예약을 해 놔서 시간에 맞춰서 가야 했다.
장모님은 우리가 나가 있는 동안 잡채를 만드셨다. 아내는 음식 냄새에 힘겨워 하며 침대에 내내 누워 있었다고 했다. 사실 아내가 미리 주문한 음식이었다. 미역줄기볶음, 야채참치전, 잡채 등등. 아내에게는 나름의 ‘소울푸드’, ‘엄마의 요리’였지만, 입덧이 더 강력했다. 물론 만들 때만 그렇고, 먹는 건 전혀 문제없다. 참 다행이다.
장모님이
“맛있을 때 맛만 봐”
라고 하시면서 주신, 맛만 보는 것치고는 꽤 많은 양의 잡채를 우선 먹고 집에서 출발했다.
소윤이가 정말 좋아하는, 아니 좋아했던(이제는 좋아해도 가지 못하는 곳이니) 식당이다. 소윤이는 변함없이 잘 먹었다. 사실 소윤이는 야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는 음식도 곧잘 먹는 훈련이 되어서 그렇지, 야채를 꽤나 선호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남쌈은 좋아한다. 맛도 맛이겠지만, 자기가 원하는 재료를 자기 취향대로 넣어서 쌈을 싸먹는 그 과정이, 아마도 소윤이를 저격했을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다. 월남쌈을 만들어 먹는 과정 자체가, 소윤이의 평소 성향에 너무 딱 들어맞는다. 난 너무 귀찮은데.
시윤이와 서윤이도 잘 먹기는 하지만 소윤이만큼은 아니었다. 웬만하면 시윤이가 소윤이보다 많이 먹는다. 소윤이가 시윤이보다 많이, 그리고 늦게까지 앉아서 먹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게 가지밥과 월남쌈이다. 소윤이는 오늘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쌀국수도 먹고 일어섰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더 일찍 식사를 마치고 장인어른과 함께 가게 마당에 나가서 놀고 있었다.
오전에는 아주 적은 양이기는 했지만, 이따금씩 비가 내리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도 하늘은 흐릿했지만, 빗방울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야외에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에 가고 싶어 하셨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를 생각한 결과였다. 아내와 아이들이 몇 번 갔던, 마당이 아주 넓은 카페로 갔다. 사람이 무척 많았지만 다행히 앉을 자리는 있었다.
카페 마당 한 편에 트램폴린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바로 가서 뛰어들었는데 서윤이는 자리를 지켰다.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언니와 오빠들이 무섭게 뛰고 있는 걸 보니, 아예 들어갈 엄두를 못 냈다. 사실 소윤이보다도 훨씬 크고 격렬한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예의주시했다.
“여보. 쟤네 너무 심한데? 막 서로 밀치고 당기고 그러네?”
“그래?”
나는 그제야 봤는데, 다분히 ‘폭력적’인 소통이 오가고 있었다. 물론 거기에 악의가 있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폭력적’인 성격이 담긴 말과 행동이라면 어떠한 것이라도 금지하는 게 우리 집의 대원칙이었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지배적인 분위기인지 유심히 관찰하다가 아이들에게 가서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나오는 게 좋겠다. 자리로 가자”
자리에 왔을 때, 차분히 설명했다.
'잘못한 건 전혀 없지만, 그런 상황에 계속 노출이 되면 너희도 모르게 부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라고. 그러고 나서 아이들에 달리기를 제안했다. 소윤이는 몰라도 시윤이는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창구를 마련해 주는 게 필요해 보였다. 오전에 공원에 갔을 때도 모르는 분에게 가서 공을 빌렸다.
“아 저기 혹시 이 공 잠깐만 써도 될까요?”
흔쾌히 허락해 주셨고, 시윤이와 축구를 했다. 카페에서도 시윤이의 활동 욕구를 해소시켜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달리기였다. 다른 사람(물론 가족도 포함한다)과의 경쟁은 지양하니까 ‘자신과의 경쟁’을 유도했다.
“소윤아, 시윤아. 달리기 해 보자. 계속 뛰면서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정말 열심히 뛰었다.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지칠 줄 모르고 뛰었다. 때로는 시작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못해 시간 측정이 안 됐지만, 그냥 얼버무렸다(거짓말에 가까웠다).
“오. 아까보다 조금 짧아졌는데?”
그렇게 한참을 뛰었다. 시윤이의 해소 욕구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니 또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아내가 장인어른에게 김치찌개를 끓여 달라고 했다. 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밤에 약속을 잡았는데, 저녁은 먹고 나갈 계획이었다. 갑자기 새로운 약속이 하나 더 생겼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형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마찬가지로 함께 일했던 또 다른 형(소윤이가 오늘 아침에 만났던 00의 아빠)도 함께.
“여보. 나 그럼 저녁 먹으러 나갔다가 바로 애들 만나러 갈게”
아내만 혼자 두고 가는 게 아니라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계셨기 때문에 마음에 큰 부담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완전히 편하지도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크고 난 뒤에는 그저 아이들 곁에서 챙겨주고 돌봐주는 게 힘들지 않다. 그보다는 고차원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순종과 반항, 공감과 외면, 갈등과 봉합 뭐 이런 차원의 상황을 헤쳐나가는 게 주요 의제가 될 때가 많다. 내가 없고 아내만 있는 상황에서는 이 모든 상황들이 극대화 될 때가 많다는 게 문지였다. 그러니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있어도 아내만 ‘혼자’ 두고 가는 게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편한 마음을 따라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별다른 말을 남기지 않았다. 예를 들어 ‘너무 늦지 않게 자’, ‘자기 전에 영상 보지 말고’, ‘군것질 그만하고’ 이런 말들. 그런 얘기 한다고 아이들이 마음에 새길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함께 머물며 ‘마음에 새기도록’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주는 게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엄마 말씀 잘 듣고,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도 잘 들어”
라는 ‘차 조심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들어’와 같은 어린 시절 엄마의 외침 같은 당부 정도만 남겼다.
친구들하고는 9시가 다 돼서 만났다. 한강에서. 40을 바라보는 아저씨 4명이 모여서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치킨과 과자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 심각한 주제는 없었다. 그야말로 ‘스몰토크’의 연속이었다. 끝인사는 역시나
“이제 언제 보냐”
였다.
집에 오니 1시가 넘었다. 장모님은 거실에서 주무시다가 깨셨다. 아내와 아이들은 물론 자고 있었다. 사실 중간에 아내에게 메시지가 왔다. 몇 개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건 이거였다.
“여전히 여보의 빈자리가 매우 큰 이 곳이지만…”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나의 빈자리는 매우 컸을지 몰라도 잠든 뒤 내 빈 자리는 크지 않았다. 내 몸 한 곳 뉠 곳이 마땅치 않아서 겨우겨우 공간을 만들어서 누웠다.
서윤이의 손이나 발을 잡을 수 있는 사정거리 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