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9(금)
아침을 먹고 나서 갑자기 출장미용의 현장이 됐다. 어젯밤까지 일을 하고 온 매제가 (내)엄마 머리를 잘라주려고 미용도구를 챙겨왔는데 갑자기 아이들도 자르게 됐다. 소윤이와 서윤이는 앞머리를 조금 잘랐고, 시윤이는 아예 펌을 했다. 아이롱펌이라는 걸 들어보기만 했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오늘 처음 알았다. 시윤이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말았다. 원래 자연스러운 펌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자연스러웠다. 학창시절에 방학이 되면 노란색으로 염색을 했다가 개학할 때가 되면 괜히 검은색 대신 선택했던 ‘블루블랙’처럼.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느낌. 잘 어울렸다.
나도 잘랐다. 자를 생각은 없었는데 아내와 동생이 시작한 김에 나도 자르라고 했다. 안 그래도 연휴가 끝나면 미용실에 가려던 참이긴 했다. 지금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어서 딱히 원하는 모양이 있지도 않았다. 그냥 알아서 해 달라고 했다. 만족스럽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예약이 없는 날과 시간을 찾아서 예약을 하고 미용실에 가야 하는 귀찮음을 한 번 덜 할 수 있어서 그게 좋았다. 나도 점점 ‘파격’과 ‘시도’보다는 ‘단정’과 ’유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오늘도 낮잠을 잤다. 오늘은 일부러 잤다(다른 날은 일부러 잔 게 아닌가?). 나에게는 가장 위험한 시간인 ‘오후 한복판’에 운전을 해야 했다. 졸음운전을 방지하려면 조금이라도 자야 했다. 엄청 길게 자지는 않았지만 아주 깊게 잤다.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한참 동안 하며 몽롱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제 언제 보냐. 애 낳기 전에는 볼 수 있으려나”
아내의 임신 덕분에 이런 인사를 나누게 됐다. 출산 전에 명절이 한 번 더 있기는 했지만 그때도 올라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대로 출산을 하게 되면 또 한동안은 먼 거리의 이동이 힘들고. 물론 부모님들이 오시는 건 가능하겠지만.
바로 처가로 가지 않고, 아내의 작은아버님 댁으로 갔다. 함께 살고 계시는 아내의 할머니에게 인사도 드릴 겸. 가는 차 안에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저 서울에 살고 싶어여. 다시 서울로 이사 오자여”
“진짜? 할머니, 할아버지랑 가까운 게 좋아서?”
“네. 바닷가 없어도 괜찮아여”
진심이었다. 당장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테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가까이 살며 자주 본다는 건, 아이들에게 꽤 소중한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먼 거리라 꽤 한참 갔다. 서윤이는 물론이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모두 잠들었다. 아, 아내도. 아내는 호르몬과 입덧약의 영향으로 아무리 자고 또 자도 계속 피곤해 한다. 아이들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밀도 있게 노는 일상의 결과로 쌓인 피로가 가득했을 테고.
작은아버님 댁에는 할머니와 작은아버님과 작은어머님, 아내의 사촌 동생 두 명이 살았다. 그리고 ‘아리’라고 불리는 강아지도. 이 ‘아리’ 덕분에 서윤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 집 안에서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에게 급하게 ‘집에 강아지가 있으니 놀라지 말라’라고 얘기를 했는데, 정말 너무 급하게 직전에 말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교회 마당에 있는 강아지와 놀면서 강아지를 향한 두려움이 거의 다 사라졌지만, 서윤이는 아니었다. 아주 작은 크기의 강아지였지만 시끄럽게 짖고 다가온 덕분에 서윤이에게 큰 공포심을 선사했다. 서윤이는 한참을 울고 나서도 내 품을 떠나지도 않았다.
“서윤아. 엄마가 안아줄까?”
“아니여”
“아빠한테 안겨 있을 거야?”
“네”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랬다. 웬만한 상황이면 거의 엄마를 택하는데 이런 상황, 위험을 감지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꼭 나를 붙잡았다. 서윤이는 나올 때까지 내 자리를 떠나지도 않은 건 물론이고 입도 제대로 떼지 않았다. 잠깐 아내에게 가서 앉았을 때도 발은 내 몸에 닿아 있어야 한다면서 발을 쭉 뻗고 내 팔에 대고 있었다. 말수가 적어지기는 소윤이와 시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른들이 묻는 물음에만 겨우겨우 대답을 하다가 나중에는 ‘아리’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서 놀았다.
저녁은 식당에 가서 먹었다. 칼국수를 먹었는데 시윤이가 엄청 잘 먹었다. 팥칼국수 한 그릇을 거의 혼자 먹었다. 어른들은 신기해했다. 일곱 살이 어쩜 그리 팥을 잘 먹냐고 하시면서. 식당 앞에 커다란 광장이 있었는데 어른들은 거기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고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달리기 시합을 했다. 사실 내가 약간 유도하기도 했다. 안 그러면 나도 같이 뛰어야 하니까. 아이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소윤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스윽 옆에 섰다. 자기도 함께 놀고 싶다는 게 딱 보였다. 그 남자아이도 같이 뛰었다. 자기 이름은 000이고, 초등학교 3학년이며, 학교에서 계주 대표고, 어느 지역 어느 아파트 몇 동 몇 호에 산다는 걸 다 얘기했다. 귀여웠다. 그 또래 남자아이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넉살이 있다. 그리고 예의가 발랐다. 난 예의 바른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빠. 제발 술래잡기 한 번만 하면 안 돼여?”
시윤이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뛰기 좋아하는 녀석이 요즘에는 자주 나가서 뛰지도 못하는데. 기꺼이 응했다. 윤성이도 함께했다. 열심히 했다. 아무리 도망가도 언니와 오빠가 잡지 않아서
“언니이. 오빠아. 나 여기 있는데 왜 안 잡아?”
를 외치며 소외되는 서윤이는 내가 안고 뛰었다. 땀이 뻘뻘 흐를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덕분에 아이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소윤이는 금방 숨이 차고 기침이 나와서 끝까지 하지는 않았다. 시윤이와 윤성이가 끝까지 열심히 뛰었다. 계주 대표 선수인 윤성이는 시윤이를 당해내지 못했다. 윤성이 입장에서는 시윤이의 심장이 두 개처럼 느껴졌을 거다. 시윤이는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세 살 많은 ‘단거리 선수’ 윤성이 형을 집요하게 쫓았다.
거기서 처가까지도 거의 한 시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하루가 끝이었다. 아이들은 바로 씻고 자리에 누웠다. 오늘은 아내가 바로 눕지 않았다. 이게 친정과 시댁의 차이라면 차이였다. 아무리 편하다고 해도 시댁에서는 거실 한복판에 드러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직도 쉽지는 않을 거다. 친정은 다르다. 소파를 차지하고 누워도 전혀 거리낌이 없으니까. 아무튼 이번 명절에 처음으로, 아니 최근 들어 매우 오랜만에 아내가 늦은 시간까지 눕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