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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r 25. 2024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또 먹고

23.09.28(목)

서윤이 덕분에 새벽부터 잠에서 깼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사촌 동생(내 조카), 고모(내 동생)와 함께 다른 방에서 잤고, 서윤이는 아내와 나와 함께 잤다. 서윤이는 바닥에서 잤는데 밝은 기운이 스미는 새벽에 서윤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흑. 흑흑. 흑”


안 좋은 꿈을 꾸는 건가 싶어서 내려가 봤는데 그게 아니었다. 서윤이의 옷과 이불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자기도 불편하니까 깨긴 깼는데 잠에 너무 깊게 취해서 움직이지는 못하고 울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혼날까 봐 그랬던 건지 아무튼 울고 있었다. 어제 누우면서 서윤이를 아내와 나의 사이로 데려오려고 하다가 말았는데 큰일이 날 뻔했다. 그저 이불과 옷을 빠는 것과 매트리스에 침투한 오줌을 처리하는 건 큰 차이가 난다. 서윤이 옷을 갈아입혀서 다시 눕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찍 깼다. 가장 먼저 일어난 건 아니었다. 조카가 가장 먼저 깨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깨웠다. 그게 한 6시 30분쯤이었다. 먼저 아이들 소리가 들렸고, (내)동생과 엄마의 소리도 잇달아 들렸다. 아이들이 아침 먹는 소리도 들렸고. 더 잠을 자려고 억지로 눈을 감아도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보면서 누워 있었다. 아이들은 한 번씩 아내와 내가 깼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열어봤다.


소윤이는 오늘도 ‘베토벤 바이러스’를 수시로 쳤다. ‘떴다 떴다 비행기’도 마찬가지였고. 소윤이가 안 치면 시윤이와 서윤이가 마구잡이로 쳤고. 제대로 된 음정을 치는 소윤이의 피아노 소리도 반복해서 들으니 견디기 어려웠는데, 시윤이와 서윤이의 피아노 소리는 그야말로 고문이었다. 그렇게 막 치다가 뜻하지 않은 재능을 발견하는 거 아닌가 싶기는커녕 그저 소음이었다.


낮에는 시장에 가기로 했다. 꽤 규모가 있는 시장이고 사람도 엄청 많이 오는 곳이라 차를 가지고 갈 만한 곳은 아니라고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로 했다. 아내는 집에서 쉬기로 했고. 엄마와 아빠, 동생과 나, 그리고 내 아이들 세 명과 조카까지. 총 8명이었다. 서윤이의 유모차가 없는 게 변수였지만, 요즘은 워낙 잘 걸으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지하철과 버스에 사람이 꽉 차지도 않았고 아이들도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아서 수월했다. 시장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토요일에 홍대입구역 7번 출구에 가면 느껴지는 그 정도의 혼잡함이었다(요즘은 어디가 상징성이 있는 곳인지 모르겠지만, 내 때는 홍대입구역이었다). 어른이 많은 게 오히려 불안요소였다. 내 눈에 안 보여도 ‘누군가 데리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다가 막상 보면 없는 경우가 생길까 봐(마치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수시로 아이들을 확인했다.


서윤이는 졸릴 만한 시간이었다. 힘들어서 못 걷겠다고 하길래 안아줬는데 그대로 잠들었다. 유모차는 없었다. 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서윤이를 안고 한참을 걸었다. 시장 전체를 다 돌지는 않았지만 입구에서 끝까지 가기는 했다. 중간에 빵도 사고 송편도 샀다. 동생은 자기가 좀 안겠다고 했지만 그냥 계속 내가 안고 있었다. 시장 안에 있는 중국음식점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 안고 있었다. 의자 두 개를 이어붙여서 간이침대를 만들고 눕혔는데, 계속 잤다.


날이 조금 서늘해 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웠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겉옷을 챙겨서 나오려고 하다가 말았는데 가지고 왔으면 짐이었을 뻔했다. 특히나 나에게는 더욱 더. 점심을 먹고 잠시 카페에 갔는데 그 전에도 이미 땀을 많이 흘렸고, 그때도 추가로 더 많이 흘렸다. 카페에서도 의자 두 개를 이어붙여서 눕혔는데, 이번에는 막 뒤척이다가 눈을 떴다.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대로 다시 잠들었다.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조카도 자고 있었다. 서윤이와 조카가 깰 때까지 카페에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시장에서 산 송편을, 점심을 굶은 아이들처럼 맛있게, 많이 먹었다. 서윤이와 조카는 푹 자고 일어났다. 둘 다 점심을 못 먹어서, 송편으로 허기를 달래줬다.


집으로 돌아와서 곧장 침대로 갔다. 엄청 피곤하고 나른했다. 장거리 운전의 피로와 서윤이를 안고 걸어 다닌 피로가 복합된 결과였다. 엄청 달콤하게 잤다. 아빠가 언제 일어나나 오매불망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이, 아주 떳떳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자고 일어나니 또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명절은 곧 밥인가. 밥 먹기 위해 명절을 지내는 것처럼 밥 때가 금방 돌아왔다. 저녁은 쭈꾸미를 먹었다. 이 또한 아내의 상황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내는 의외로 날 것은 잘 못 먹는다. 대신 맛있게 양념이 된 익힘 음식은 꽤 좋아한다. 쭈꾸미, 낙지, 오징어 같은 것들. 가게에 사람이 많아서 두 자리로 나눠 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와 동생, 서윤이는 아내와 나와 함께 앉았다(아빠는 늦게 퇴근하는 매제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안 드셨다). 서윤이에게는 주먹밥을 줬는데 엄청 잘 먹지는 않았다. 아마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랬을 거다. 송편도 많이 먹었고, 내가 자는 사이에 과일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먹다 보니 하루가 끝난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어제처럼 너무 늦지 않게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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