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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Apr 04. 2024

응급실에 가기는 했는데

축구를 하고 왔다. 지난 주일에는 나도 부모님 댁에 있어서 참석을 못했겠지만, 애초에 모임도 없었다. 대신 오늘 모인다고 했다. 쉬는 날 아침 7시부터 공을 차야 하는 건, 달콤한 늦잠을 포기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육아를 회피한다는 죄책감에서 자유롭다는, 엄청나게 큰 장점이 있다.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축구를 하고 집에 왔을 때는 거의 10시가 다 됐다. 생소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 늦은 시간까지, 다들 자고 있었다. 시윤이만 빼고. 시윤이는 혼자 일어나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작은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까지 자고 있었던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그 뒤로도 한 시간을 넘게 잤다. 일단 시윤이만 아침을 먹였다. 아내가 11시 쯤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애들 아직도 자네”


소윤이와 서윤이는 아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아내도 배가 고프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내와 소윤이, 서윤이도 깨서 나왔는데 소윤이는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열은 없었지만 기운이 없어 보였다. 연휴 기간 내내 쉴 틈 없이 놀기도 했고, 어제도 늦은 시간까지 밖에 있었으니 피로누적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컸지만, 숨쉬기를 힘들어 한다는 게 다른 때와 다른 점이었다.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소윤이는 하루 종일 비슷했다. 힘겨웠다. 아내는 여전히 ‘입덧환자’였다. 일상의 소화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거기에 소윤이까지 더해지니 내 나름대로의 한계치를 넘어버린 느낌이었다. 육체적인 고단함은 견딜 만했는데 정신적인 피로도를 견디기 어려웠다. 새삼 나의 정신적 평안함의 역치가 낮다는 걸 느꼈다. 아내는 아내대로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대상이었는데, 소윤이의 기침소리와 흐느낌까지 추가되니 자칫 잘못하면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소윤이는 숨 쉬는 게 너무 힘든지 꽤 자주 흐느끼듯 울었다).


‘난 확실한 T인가 보다’


요즘 난리인 MBTI 가 떠올랐다. 고통스러워서 우는 소윤이를 보며 ‘얼마나 아프고 힘들까’하는 공감보다는 ‘아, 힘들다. 어떻게 하면 저 흐느낌을 잠재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다정하고 진심 어린 공감의 반응이 나가는 건 어려웠다. 나중에는 공감은커녕 오히려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석은 태도였다. 아내는 그런 나의 태도가 서운하고 못마땅했던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소윤이의 상황과 감정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나에게 푸념 비슷한 어조로 여러 차례 얘기했다.


“소윤이가 숨 쉬는 게 너무 힘든가 봐요”


아내는 소윤이의 기분과 느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기도 어린 시절에 ‘천식’을 앓았으니까. 성인이 되어서도 잊을 만하면 천식으로 고생을 했으니까. 소윤이는 밤 늦은 시간까지 호흡곤란으로 힘들어했다. 그저 낑낑대는 정도가 아니라 몇 번이나 흐느끼며 울었다.


“소윤아. 왜. 왜 울어”

“숨 쉬는 게 너무 힘들어여”


이론으로는 알고 있었다. 비염이 심해지면 콧물이 목을 통해 안쪽으로 확산되고, 그럼 기도가 좁아지면서 숨 쉬는 게 힘들어지는 거고, 소윤이는 천식 기운이 있으니 더 심할 거고. 다 아는데, 하루 종일 아니 이미 많은 날을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며 살았더니 소윤이의 아픔에 공감하는 게 잘 안 됐다. 아내는 소윤이를 데리고 응급실에라도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물론 당장 근원적인 치료는 안 되겠지만 당장 힘든 건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지 않겠냐고 했다. 소윤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다행히 병원이 멀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집에서 차를 타러 내려가는 그 잠깐의 걸음도 힘겨워했다. 병원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접수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바로 소윤이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로 들어갔지만, 허망하게 바로 나왔다.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이 안 계셔서 정밀한 진료나 처방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두 시간 쯤 뒤에는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이 나오실 텐데, 그때 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는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토 할 것 같다고 하면서. 먹은 게 없으니 나온 것도 없었지만 소윤이의 기도를 틀어막고 있었던 가래가 나온 듯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괜찮아졌다. 급격하게. 소윤이 스스로도 숨 쉬는 게 조금 편해졌다고 했다. 응급실에 가서 직접적인 도움은 받지 못했지만, 바깥바람을 쐰 것만으로도 혹시 뭔가 도움이 됐나 싶었다. 신기할 정도로, 소윤이는 갑자기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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