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있다 없으니까 오히려 좋아.
주근깨를 빼야겠다 생각한 건 최근 들어서다.
기미인지 주근깨인지 점인지 모를 갈색 동그라미들이 얼굴에 촘촘히 자리잡았다. 동그라미들은 주인을 닮아 워커홀릭일지도. 저기 넓은 대륙을 발견했다는 소문을 듣고 가장 먼저 차지하는 놈이 임자라는 말에 너도나도 뿌리내렸는지도 모른다. 빽빽해진 땅에는 발 디딜 틈이 없어졌고 동시에 어릴 때의 귀여움도 사라졌다. 3년 전만 해도 주근깨는 나의 개성이라 스스로 주장해왔다. 그럼 뭐하나, 항상 화장에 감춰 주위 사람들은 내가 주근깨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데 차라리 없는 것이 깔끔해보이고 화장할 때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변덕쟁이긴 하지만 한때 개성이라 여기던 것을 이젠 없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취급을 하는 내 모습에 새삼 놀랬다.
나는 바로 주근깨 레이저 시술을 하는 곳을 알아봤다. 잘하면서 값싼 곳으로다가.
병원에 들어서니 대부분 나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앉아계셨고 내 또래는 2-3명이 보였다. '나이가 많든 적든 이뻐지고 싶은 마음은 다들 똑같구나.' 사람 구경을 하고 있으니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다. 진료실 안에는 나이가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이 앉아계셨고 짧은 목례 후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마스크를 내렸다.
- 아...
의사 선생님이 작은 탄성을 내뱉는다. 최근 진료 본 사람 중에서 주근깨로 내가 탑 5에 드나보다. 내가 몇 순위일까 잠시 생각하다 이게 뭐가 중요한가 싶어 작게 웃으며 말했다.
- 주근깨가 좀 많죠? 어릴 때는 많지 않았는데 갈수록 점점 많아지네요.
의사 선생님은 "꽤 많네요."라고 답하곤 주근깨는 이쁜 사람에게만 나는 유전이라 했다. 뻔한 농담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럼 이쁘게 태어나기로 예정된 사람인 건가'하는 생각에 또 한 번 작게 웃었다. 의사 선생님과 간단한 상담을 마치고 나오자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간호사가 얼굴에 마취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40분이 흘렀을까. 아까 그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 이아름 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큰 수술을 앞둔 사람 마냥 엄청나게 긴장된다. 아무래도 원래 있던 것을 빼는 행위에서 나다움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작은 두려움이 섞였을지 모른다.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던 날, 그때가 초등학교 4-5학년쯤이었나? 4교시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오르막길을 올랐다. 집으로 갈 수 있는 코스는 여러 개지만 오르막길이 가장 빠르고 가까웠다. 나는 흐르는 땀을 닦지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유난히 학원에 가기 싫은 날이다. '이렇게 하면 열이 날까?'
강력한 태양 빛에 눈이 부셨지만 고개를 더 바짝 들고 묵묵히 오르막을 걸었다. 나는 태양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땐 조금의 열감을 있었지만 금세 가라앉았고 그렇게 <학원 땡땡이> 계획은 실패로 끝이 났다. 학원에 가기는 싫고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죄다 드러나니 정말 열을 나게 만들어야겠다는 어린아이다운 발상이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주근깨가 많아졌으려나?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주근깨 탄생의 시초다.
(다시 돌아와서)
'그래, 유난 떨 필요 없어. 알아서 잘해주시겠지.'심호흡을 하며 일어섰다.
아픔을 잘 참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아프다.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혹시라도 움찔거리다 레이저 조준이 잘못될까 싶어 있는 힘껏 참았다. '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돌이다.' 스스로 최면을 건지 3분 정도가 지났을까. 의사 선생님이 내 어깨를 툭 치더니 끝났다는 신호를 보낸다.
아픔을 꾹 참은 탓일까, 물을 많이 마신 까닭일까. 나는 얼른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보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세면대 앞 거울을 봤다. '세상에, 이렇게나 주근깨가 많았다고?'
한 달이 지나면 진하게 탄 레이저 자국도 사라져 있겠지. 몇 년 후 아니 그것도 못 참고 몇 달 뒤에 뒤엎어진 땅을 발견한 주근깨 유전자가 다시 뿌리내릴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지금은 그저 컨실러 덧칠을 줄일 수 있다는 생각에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