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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찬 May 07. 2024

진료실 빅 히스토리

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한의원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찾아온다. 유치원 아이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나이도 다양하다. 학교만 가려면 배가 아프던 아이가 자라 직장에 취직해서 찾아오고, 불임 때문에 왔다가 산후조리약을 복용하고 몇 년 후에는 아이의 약을 지으러 오기도 한다. 늘 오시던 할머니가 계절이 지나도 안 오셔서 궁금해 하면, 친구분이 오셔서 부고를 전하기도 한다.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는 병 뿐만 아니라 태어남과 나이 듦. 그리고 죽음까지 함께 한다.      


병의 종류도 다양하고 병드는 이유는 사람마다 각자 사정이 있다. 하지만 가만히 나를 포함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공부하면서, 현대인의 몸과 마음은 퇴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많이 아는 것 같고 못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지만, 정작 생물 종으로서의 사피엔스는 점점 무능해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인류에 이르기까지 총 3번의 중요한 혁명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산소혁명이다. 고세균으로부터 진화한 진핵세포가 미토콘드리아와 공생관계를 맺은 것이 산소혁명의 본질이다. 이때부터 세포는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자본이 넉넉해야 연구도 하고 개발도 할 수 있듯, 세포 또한 뭐 남는 게 있어야 변화할 수 있다. 산소호흡은 세포의 금고를 넉넉하게 채워주었고, 이 에너지 시스템이 더 복잡한 생물로 진화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도 이때 획득한 발전시스템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래서 몇 분만 숨을 쉬지 못해도, 장기의 기능은 멈추고 죽는다. 하지만 복잡한 생명체가 더 나은 생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지 못해서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대멸종이 5번 정도 있었다고 하고, 학자들은 지금이 6번째 대멸종의 시기라고 말한다. 다만 이제까지와 다른 점은 지구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한 생물 종이 자초한 멸종이라는 점이다. 기후 위기와 AI는 어쩌면 스스로 지구상의 최상위 종이라고 여기는 생물 종의 멸종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직립혁명이다. 아프리카의 어느 숲에서 시작된 이 혁명으로 인해 지금의 문명사회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로워진 두 손과 장거리 이동이 가능해진 신체 구조 그리고 뇌용량의 증가는 생존능력을 극대화하고 학문과 예술과 같은 다른 생물 종이 하지 못하는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지구환경이 굳이 두 발로 서는 모험이 필요없을 정도로 풍요로웠다면, 어쩌면 지금 우리는 다른 유인원처럼 주로 네발로 걷고 뛰고, 가끔 두 발로 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중에서 


세 번째는 의식혁명이다. 전에는 인간의 의식혁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전쟁과 환경파괴와 같은 철 없고 어이없는 일이 반복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의식혁명도 이미 과거에 완료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의식혁명의 완성은 독일의 철학가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다.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의 시기로, 석가모니, 공자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런 대표적인 인물들 외에도 다양한 사상가들이 등장했는데, 개인적으로 인간 의식에 관한 모든 것은 이때 끝을 봤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이후로도 다양한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등장했지만, 저 시기에 등장한 사상들이 인간 의식이 다다를 수 있는 정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금과 같아진 것은 배움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더 나은 철학과 사상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럼 인간의 본격적인 퇴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개인적으로 산업혁명이 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때를 여섯 번째 대멸종 시대의 시작으로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물질과학의 발달이 환경파괴를 가져 온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퇴화의 징조는 인간이 자신이 만들어 낸 것에 본격적으로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더 편리한 것들이 나올수록 사람들은 더 바빠지고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된 듯 하다. 시간을 절약시켜주는 것이 더 많아지는데, 우리는 왜 더 자꾸 바빠지는 것일까?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본격화된 물질문명의 발달은 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면서 정점을 찍는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기억을 외부에 저장하기 시작했고, 생각하는 법을 외주화하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생각하고 관찰하고 책을 펼치거나 누군가에게 묻지 않고, 검색엔진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질문한다.    

  

이런 변화는 조만간 어쩌면 이미 인간이 인간보다 인공지능을 신뢰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의 기억과 생각을 의심하고, 그것을 인공지능에게 묻고 확인받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요즘 대두되고 있는 문해력의 문제는, 단순히 책을 읽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너무 많은 단편적인 정보들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잃어가는 지금의 삶이 문해력 저하의 더 근원적인 원인이란 생각이 든다.     

 

<공각기동대>의 인형사의 대사처럼 인간은 자신의 기억을 망에 저장할 때, 더욱 신중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많은 문명의 이기들 속에서 인간의 신체도 점점 퇴화하는 것 같다. 물론 운동과 신체활동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비만과 다이어트 시장이 성황을 이루고, 거북목과 허리디스크로 대표되는 척추질환을 대상으로 한 병원들을 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서 짐에 가면 1 : 1 지도를 받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몸 자체 그리고 움직임에 관한 감각이 점점 떨어지고, 무엇보다 신체적 움직임이 절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코어근육이라고 불리는 직립을 위한 자세유지근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위한 기능들이 약해진 사람들이 많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직립동물로서 가장 기본능력인 걷고 달리는 능력을 빠르게 잃어가는 것 같다.      


움직임을 위한 구조와 기능의 약화는 결국 뇌와 내부 장기의 문제로 이어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좋은 움직임은 곧 좋은 건강이다.      


영화 <월 E>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떤 식으로 퇴화할지를 잘 보여준다. 환경오염으로 이상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나 인류는 700년 동안 우주선에서 생활한다. 우주선의 로봇이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바람에 인간은 안락한 호버 의자에 앉아 놀고 먹기만 한다. 당연히 모든 인류는 초고도 비만이 된다. 눈 앞의 모니터만 바라보면 대화하고 사이버 연애를 하며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이 애니메이션은 로봇 월-E가 감동이 주제지만, 나는 우주선 속 인류의 모습에 더 관심이 갔다. 우주선에 타지 않더라도 문명의 이기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모습은 영화 속 사람들과 아주 조금 다르고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누워서 그리고 앉아서 피로를 풀고 척추를 치료하라는 광고를 혐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문가의 분석이나 빅데이터와 양자컴퓨터의 자료를 몰라도 진료를 구석에서도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진료실에 앉아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환자가 전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의료의 트렌드가 변하는 것을 보면 충분히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변하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어서, PT 받을 비용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맨몸 운동이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언제부터 우리가 운동기구가 없어서 운동을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서 못 움직이게 된 것일까. 또한 그 어떤 다이어트약보다 일상의 음식과 생각의 변화가 체중조절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 마음이 무너져서 생긴 비만의 문제를 약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잠깐은 그럴 수 있겠지만, 누구나 다 알듯이 결국은 무너진 마음과 일상의 음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일반인은 절대 광고 속 모델처럼 몸매를 가꾸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쓸 수 없다. 환상에서 깨어날 때 건강과 지갑 모두 채울 수 있다.       

나의 선생님께서는 환자의 병이 중하고 복잡할수록 특별한 처방을 찾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길에서 마주친 ‘본립도생本立道生’ 이란 글귀도 떠오른다. 기본이 바로 서면 방법이 보인다.     

 

숨을 잘 쉬고, 바로 서고 걷고 달리고, 그리고 고요하게 생각을 하는 일. 나는 이 세 가지가 우리 건강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힘을 회복할 때 인류의 퇴화를 막고 어쩌면 파국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미래도 회복할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유행하는 수 많은 건강에 관한 정보들은 퍼즐의 한 조각과 같다. 그 조각이 아무리 빛나고 멋있어도 내가 무슨 그림을 맞추고 있는지 모르면 소용이 없거나 때론 전체 그림을 망칠수도 있다. 내 건강을 위해서도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좀 더 큰 그림을 그려보면 좋겠다. 그럼 내게 진짜 뭐가 필요한지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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