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속에 숨은 약초
살다보면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분명히 아는 것인데, 유독 저만 헛갈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머위와 아욱을 잘 헛갈렸습니다. 둘 다 밭에 있고 나물로도 무쳐 먹고, 국으로도 먹는 까닭에 분간이 되지 않았지요. 그래서 머위를 보고 아욱이라고도 하고, 아욱국을 먹으면서도 머윗국이냐 물었습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맛도 달라서 구분이 어렵지 않지만, 입력 단계부터 머리에 혼선이 생긴 것인지 아무리 해도 헛갈리기 일쑤입니다. 게다가 가끔은 뜬금없이 우엉하고도 혼동되어 연상이 되니, 이 세 가지에 대한 제 머리 구조를 한 번 의심해볼만 합니다.
오늘 아침 된장에 들깨를 갈아서 풀어 넣은 아욱국을 먹으면서, 식구들 몰래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생김새는 머위와는 딴판입니다. 그런데도 헛갈리는 걸 보면, 머릿속에 한 번 각인된 것을 바꾸기란 좀처럼 쉽지 않구나 싶습니다.
아욱은 주로 나물이나 국거리로 쓰는데, 씨앗은 한약재로 쓰기도 합니다. 아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욱씨(동규자)
성질이 차갑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 임질을 다스리고, 소변을 잘 나오게 하며, 부인의 젖몸살이 난 것을 치료한다.
가을에 아욱을 심고 덮어두어 겨울이 지나 봄에 씨앗을 맺은 것을 동규라 하고 약으로 많이 쓰는데, 성질이 매끄러워 결석을 잘 내리게 한다. 춘규자(봄에 심은 아욱의 씨앗)도 성질이 매끄럽지만 약으로는 쓰지 못한다. 서리가 내린 뒤의 아욱은 먹지 못한다. 먹으면 토하게 한다. 씨는 약간 볶아 부스러뜨려서 쓴다.
아욱뿌리(동규근)
악창과 임질을 치료하고 소변을 잘 나가게 한다.
아욱잎(동규엽)
다른 채소처럼 나물을 만들어 먹으면 매우 달고 맛이 있다. 적취(몸 안에 쌓인 기로 인하여 덩어리가 생겨서 아픈 병. 적積은 오장에 생겨서 일정한 부위에 있는 덩어리이고, 취聚는 육부에 생겨서 일정한 형태가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덩어리를 이른다.)와 기운이 몰린 것을 잘 헤친다.
동규자의 규(葵)는 헤아린다는 뜻으로, 잎이 태양 쪽으로 기울어져서 그 뿌리에 볕이 닿지 않게 하기 때문에 지혜롭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옛 사람들이 반드시 이슬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거두었기 때문에 노규(露葵)라고도 하고, 약의 성질 때문에 활채(滑菜)라고도 했습니다.
아욱의 잎은 채소로 먹는데, 그 성질이 잘 통하게 하기 때문에 체액이 순환이 잘 되지 않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사람이 먹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아욱의 씨앗인 동규자는 성질이 차갑고 매끄럽기 때문에, 소변을 잘 통하게 하여 임질과 같은 비뇨기계 질환에 효과가 있습니다. 또한 염증을 다스리고 통하게 하는 성질로 젖몸살과 같은 유방염에도 도움이 됩니다.
매끄러운 성질로 변비에도 쓰이는데, 실제로 장이 부드럽게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욱씨는 성질이 차갑기 때문에 몸이 차가운 사람이나 여성, 허약한 사람이 오래 먹으면 좋지 않습니다. 아욱씨로 변비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평소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고, 열이 많은 사람일 것입니다.
서리가 내리면 시들어 버려 먹을 수 없다고 하니, 앞으로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는 한두 번 더 구수한 아욱국을 먹을 수 있겠지요.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하고도 머위와 아욱이 헛갈린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