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해 생각해야 할 것들
몇 달 전 할머니가 아드님의 부축을 받으며 내원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도 정말 힘겹게 원장실까지 걸어오셨습니다. 아드님은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서 갑자기 목과 어깨가 아프다고 하신다면서, 며칠 후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앞두고 있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몸 상태를 살피는데 일단 너무 야위셨고, 무릎은 물론이고 허리도 좋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 근육이 너무 빠지고 붓기도 심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요즘 생활을 물으니 수술이 걱정되시는지 최근 들어 부쩍 식사도 잘 못 하시고 잠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신다고 합니다. 체중도 3-4킬로그램 빠져서 영양제도 맞고 하는데 잘 회복이 안된다고 했습니다.
관절상태를 체크해보니 허리와 무릎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은 꽤 오래전부터라고 생각되어서 아드님께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습니다.
일상생활에 중대한 지장이 없고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닌 것 같으니, 3개월 정도만 기다렸다 수술을 하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관절을 지지해 줄 근육이 너무 없고, 환자가 극도로 쇠약해진 상태라 수술 후에 고생을 많이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 신체적 에너지를 채우고, 제대로 먹고 잘 수 있는 상태를 회복하고, 무리 없는 운동을 해서 몸을 좀 만든 후에 수술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환자의 몸을 살피다 보면 수술의 흔적을 가진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수술이라는 치료법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단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너무 쉽게 결정하기도 하거니와 수술을 준비하거나 수술 후에 시간을 갖고 충분히 쉬면서 몸을 회복시켰다고 하는 환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수술이 결정되면 그냥 하고, 통증과 같은 당장의 불편함이 해소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상으로 복귀합니다.
물론 갑작스런 사고나 응급수술이 필요한 상황도 있고, 수술 후 빠른 일상복귀가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난 환자 중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수술을 받으면 자신의 건강이 이전처럼 좋아졌다고 오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수술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병소를 제거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그만큼 몸에 주는 부담도 큽니다. 수술로 조직이 손상되면 우리 몸은 상당한 수준의 전신적인 염증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항생제와 같은 약물들을 투여하지만, 정상적인 구조와 기능의 회복에 많은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기존의 질병이 악화되거나 다른 질병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수술을 하면 병이 나기 전처럼 건강해졌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수술을 불 난 집에 불을 끈 것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불을 껐다고 해서 집이 새집이 되지는 않습니다. 불을 끈 후에 다시 살만한 집이 되려면 시간도 걸리고 이것저것 손봐야 할 것이 많습니다. 또한 불이 난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또 불이 날 수도 있습니다.
수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제거했다고 해도, 병이 나기전의 몸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의 이유를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재발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에 재발한 병은 처음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수술이 최선의 치료법이라는 결정이 났다면, 응급수술을 제외하고는 수술을 준비하고 수술 후 회복을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최악의 컨디션으로 수술대 위에 눕기보다는, 몸이 수술과정을 잘 버텨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 병 외에 다른 질환이 있다면 치료를 통해 낫게 하고, 충분히 쉬고, 좋은 영양을 섭취해서 체력을 쌓아야 합니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준비도 중요합니다. 저는 이 기간 동안 자신이 수술을 할 병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길 권하는 편입니다. 이런 준비를 하면 좋은 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병을 나게 한 자신의 생활방식을 바꿈으로써 재발을 방지하고 좋은 건강을 유지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수술 후에는 고통의 상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바로 일상으로 복귀하기보다는 조금씩 생활의 강도를 높여가면서 연착륙할 것을 권합니다. 이렇게 천천히 몸이 이전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현재의 좋은 회복은 물론이고, 훗날 나이가 더 들었을 때 건강의 상태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수술을 준비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저는 치매나 암을 진단 받은 환자에게도 권합니다. 암이나 치매와 같은 중한 병을 진단 받았을 때 환자가 받는 몸과 마음의 충격에 비해 병 자체는 촌각을 다투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병이 가진 힘이 워낙 크다 보니, 몸과 마음을 추스릴 새 없이 치료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료가 힘든 것은 물론이고 이 과정에서 인생이 무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요즘에는 과거보다 병과 내가 받을 치료법에 관한 정보를 얻기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어떤 부작용이나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관한 대책은 무엇이 있는지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습니다.
암의 경우 수술과 화학요법 그리고 방사선으로 대표되는 표준치료는 암세포의 제거에 초점을 둡니다. 표준치료를 끝까지 잘 받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만들고, 치료 이후 재발을 방지하는 것은 환자의 몫입니다. 따라서 본격적인 치료에 들어가기 앞서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들과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은 병의 치유는 물론 병에 내가 함몰되지 않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할 때 준비운동과 정리운동을 하듯, 건강한 아이를 위해 임신 전 부부가 몸을 준비하고 출산 후에 산후조리를 하듯, 병을 없애는 수술과 같은 치료법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치료 전과 후의 과정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병의 치료에도 워밍업과 쿨다운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