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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보이 Mar 25. 2022

대체,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

[책] 『커리어 그리고 가정』, 클라우디아 골딘, 생각의힘

오래간만에 챙겨보는 드라마가 생겼다.

JTBC에서 방영하고 있는 <기상청 사람들> - 거칠게 요약하면 기상청에서 연애하는 이야기이지만, 꼼꼼한 취재와 인물들의 디테일한 감정선, 그리고 <동백꽃 필 무렵>의 차영훈 PD의 잔잔하지만 긴장감 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기상청이라는 직장에서 일과 사랑, 회사와 가정 사이의 갈등하는 이 시대 직장인들의 고민을 '국지성 호우', '열섬현상', '마른장마' 등 다양한 기상정보로 비유하여 그려내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에피소드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한 때 기상청 최연소 과장 후보였던 오주임(윤사봉)은 결혼과 육아로 인해 진급에서 탈락돼 만년 주임에 머무르고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기술고시 공부하는 남편과 아이 두 명(그것도 둘 다 아들...) 뒷바라지로 피곤하다. 피곤함이 쌓인 탓일까? 평소와 다른 오주임의 실수로 잘못된 기상 정보가 공개되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기상청이 시끄러워진다. 그녀는 책임자인 진하경(박민영) 과장이 예보국장에게 깨지고 있을 때,  밖에서 초초하게 시계를 지켜보다 아이를 데리러 퇴근한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상황의 마무리도 보지 못한 채, 육아라는 가정에서의 또 다른 책임을 지기 위해 떠나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다.

또 다른 장면. 팀이 꾸려지고 첫 회식이 있는 날. 오주임은 아이를 봐주던 시어머니에게 몸이 안 좋으니 빨리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녀는 회식이 있다며, 아이들을 아빠에게 부탁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자,

시어머니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그녀를 황당하게 한다.

"너는 공부하는 남편에게 어떻게 애를 보라고 하니?"

과연 이런 오주임이 경쟁과 협업을 요하는 조직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오주임의 커리어는 '안개주의보'이다.




이 책 <커리어 그리고 가정>은 해마다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하버드 경제학과 여성 최초의 종신 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든의 신작이다. "대체, 왜, 여전히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버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본질적인 원인을 지난 100여 년 동안 미국 대졸 여성의 가정과 일의 균형, 그리고 그들의 커리어에 대한 욕망이 축적된 다양한 데이터(정말 별의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5개의 집단으로 나눠 불균형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파헤친다.


골딘 교수가 인용한 데이터에 의하면 졸업 직후에 여성과 남성의 임금 수준은 놀랄 만큼 비슷하다. 대학을 막 졸업했거나 MBA 학위를 취득하고 직장에서 1, 2년 차 정도 된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별 소득 격차가 적은 편이었고, 그 격차는 여성과 남성이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이나 취업 분야의 차이로 설명이 가능했다. 즉, 여성과 남성은 거의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임금 격차가 발생하기 시작하고, 졸업 후 10년 정도가 흐르고 나면 남녀 사이에 상당한 임금 격차가 드러난다. 벌어진 임금 격차 사이에는 여성들의 출산과 육아의 시간들이 있다. 육아를 위해 직장을 잠시 쉬거나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 틈을 더욱 벌어지게 한다. 어느 정도 가정과 육아의 책임에서 벗어나 직장으로 복귀를 한들, 이미 남성들과 같은 트랙에서 달리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다. 1차 양육자로서의 책임은 여성들만의 허들 경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 책을 다 읽어도 복잡한 문제의 해결책이 명쾌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일자리에서의 성평등은 결국 가정 내의 성역할과 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해결을 위한 방향지시등을 켜준다. 성공적인 커리어와 행복한 가정의 균형을 위해서 직면하는 문제는 결국 시간 충돌의 문제다. 남성과 여성들에게 동일한 양으로 부여된 시간을 커리어와 가정에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평등한 시간 배분 문제는 국가 정책이 뒷받침해줘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권하고 싶은 책이다.


좋은 소식은, 문제가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 
나쁜 소식은, 문제가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전제 하에 (동의하지 않지만...) 남녀 개별 능력을 판단하기 이전에 그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조차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 시스템을 돌아보게 한다. 같은 배기량만 갖추고 있다고 레이스가 공정할 수 있을까? 한쪽은 짐을 가득 실은 상태이고, 직진 코스에 액셀러레이터를 밟을 수 없는 상황인데...

법과 제도의 지속적인 개선과 더불어, 무엇보다 우리 시대 성역할에 대한 의식과 탐욕스러운 일의 속성이 변화되어야 근원적인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와이프가 문화센터에서 유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젊은 그녀의 시간은 미술 커리어를 갖는 대신 어머니 병간호, 나와의 결혼 그리고 딸아이 육아로 지워지고 덧칠되고 말았다. 중년 그녀의 시간은 캔버스에 사과를 그리며 덧칠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런 그녀를 바라보는 나는 그녀의 시간 빼앗은 공범자로서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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