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의 제목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아쉽지만 내 책일 리 없다. 브런치에서 작가로도 활동하고 계시는 유명한 분의 책이다. 브런치 작가로 유명하기 전부터 카피라이터로 입지를 다진 분으로 보인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출판기획자 분이 추천해 줬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났다고 한다. 나한테 요구하는 글 쓰기 주제나 방식이라고도 했다. 뭐지? 궁금하면 읽어볼 수밖에.
세금을 활용할 때
이 동네로 이사 오기 전이라면 당연히 직접 서점에 찾아가거나 인터넷으로 주문했을 거다. 이 동네로 이사 온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나를 위한 이유는 딱히 떠 오르지 않았던 선택지. 이곳을 택한 것이 내게도 잘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찾아낸 이유 중 하나가 도서관이다. 동네 도서관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경이로움.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몰아서 써야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서관에 책이 많았다. 책 컬렉션이 훌륭하다는 평가를 메길 때, 내 저서 중 한 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부는 아니지만 당연히 1~2점의 가점 요인으로 작용했다.
서울시민카드 앱을 열었다. 서울시 구내 도서관에서 ID카드를 만들면 이 앱으로 통합 관리가 가능하다. 체육시설도 통합관리가 된다. 이 앱은 내가 세금낭비라고 욕하지 않은 소수 앱 중의 하나다. 플라스틱 카드 대신 스마트폰 하나 들고 다니면 이용이 가능하다. 컬렉션이 좋다며 칭찬했던 도서관에는 이 책이 없다. 아쉽지만 좌절하지 않는다. '책가방 서비스'가 있으니까. 내가 살고 있는 구의 다른 도서관에 책이 있고, 누가 빌려가지 않았다면 '책가방 서비스'신청을 하면 된다. 그럼 친절하게도 그 책을 우리 동네 도서관까지 배달해준다. 카톡으로 '책이 도착했어요'라는 알람을 받으면 나는 동네 아재 룩으로 도서관에 방문해 '서울시민카드 앱'을 들이밀면 내 손에 책이 쥐어진다. 책 검색과 서비스 신청, 대출, 나중에 반납까지 하나의 앱으로 가능하다. 이렇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데 쓰이는 세금이라면 조금은 덜 아까워하기로 했다. 덤으로 이 동네에서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카피라이터. 포장에 능한 직업이다. 진짜 포장이 아닌 다른 일을 포장이라 말할 땐 존경과 부러움과 시기를 더한 비하가 섞여 있는 단어로 쓴다.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을 대단하게 보여주는 능력.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키는 능력.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능력. 카피라이터의 능력이다. 카피라이터의 글은 그래서 재밌다. 최근에 만난 사람 중 이들과 가장 비슷하게 느껴지는 직업은 '작가'다. 책 쓰는 작가 말고 방송작가. 방송작가는 현란한 문장과 순식간에 입맛을 돋우는 조미료 같이 단어를 사용한다. 비슷한 직업으로 기자와 PD가 있다. 모든 기자와 PD를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둘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뛰어난 기자는 '명료하게 정리'하고, 뛰어난 PD는 '확실하게 주의를 끌'줄 안다. 말이 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유증이다. 옛날 내 글쓰기 방식이 스멀스멀 새 나오게 만들었으니까.
노는 것은 Play와 休
요약부터 해보면 저자는 부부가 논다고 제목을 달아 '빈둥빈둥거리면서 생계를 해결하는' 능력자를 연상하게 만들어놓고서는 사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맘 편하게 사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풀어내는 이야기는 자신의 어벙한 모습을 섞고, 부인의 통 큰 이야기를 섞고, 유난하지 않지만 흔하지도 않은 주위의 재미난 사람들을 버무렸다. 책의 분량도 다양해 '이것도 재밌네'. '저것도 괜찮네'라며 어느새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든다.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부는 여전히 생계를 걱정하고 여전히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단지 회사 소속이 아닌 것일 뿐. 이 부부는 마음껏 놀고 있을지 몰라도 돈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대출받아 한옥집을 짓는 이야기도 철없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를 사서 주택담보대출을 갚고 있는 나와 거기서 거기다.
거짓말이 아니지만 감칠맛 나는 MSG
얼마나 궁금했는지 작가의 사진까지 찾아봤다. 얼굴을 보니 더 확신이 든다. 적어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낸 사진 속 저자를 보면 사기꾼의 얼굴은 아니다. 일에 몰두할 때 표정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책 속의 부인이 자주 겪는 이야기처럼 당황스러운 말과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는 있을 것처럼 보인다. 책 제목은 잘 지었다. 부부가 놀고 있는 것은 맞다. 부럽게 잘 놀고 있다. 그렇지만 열심히 놀고 있다. 땀 흘리며 치열하게 놀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 궁극의 빈둥거림을 얻을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작가가 나보다 더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임을 인정해야겠다.
옛날 글쓰기, 옛날 글쟁이
이 책은 출간된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옛날의 나로 시간 여행을 보내줬다. 옛날엔 글쓴이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어디서 뭐하지? 옛날엔 글쓴이 같은 형식의 글을 많이 쓰기도 했는데 난 요즘 뭘 쓰지? 옛날엔 글쓴이처럼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지? 여러 가지 이야기와 사건들이 책 속의 에피소드와 등장인물과 섞여 기억을 일으키고, 추억을 불러내고, 묘한 감정이 만들어진다. 나한테 꽂힌 단락은 어이없게도 아주 짧은 단편이다.
소
일요일 침대에 누워 휴대폰 게임을 하다가 남편이 끓여다 바친 짜왕을 먹자마자 젓가락을 내던지고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히는 아내, 아내가 소가 되면 어쩌나 걱정이다
내가 첫 책을 냈던 것은 3년 전이 아니라 20년 전인 2003년이다. 여러 가지 우연과 행운이 겹쳐 책을 냈고, 그래도 3쇄를 찍었으니 첫 출발치곤 매우 양호했다. 책을 내기 전 원고료 형식으로 뭐라도 받고 쓴 첫 글의 대가는 현금도 아닌 5천 원 문화상품권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렇게 시작해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뭔가 쓰고 있다. 질기다. 다시 옛날 5천 원 문화상품권을 받을 때의 글 쓰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거칠고 누가 보면 정제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생생함과 삐딱한 젊은 직장인의 철없는 시니컬함이 드러나는 글. 그때는 가릴 줄 몰랐다면, 지금은 보일 줄 모른다.
그래서, 글쓴이가 대단해 보인다. 그 나이에 자기의 삶을 드러내 보이는 글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고루하거나 꼰대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트렌디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자기만의 삶이 있고, 그 삶이 투명하게 보여서 부럽다.
돈 버는 방법이 아닌 사는 방법
먹고사는 법을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먹고사는 것을 보여주는 책. 다시 한번 글쓴이의 직업 내공이 대단케 보인다. 왼쪽인 줄 알았는데, 아니야! 오른쪽이야!라고 뒤통수를 때린다. 나는 뒤통수를 맞았는데. 작가와 같이 낄낄대며 웃고 있다. 포장의 달인 카피라이터의 힘이다.
글쓴이의 브런치
요즘 자기 색이 담긴 글을 쓰는 카피보이님.
주위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말을 걸고, 벌어지는 일들이 뉴스에는 나오지 않겠지만 내가 겪은 것 같은 일들과 함께 실려 흐르는 책. 그래서, 카피보이님이 소개하는 책은 무겁지 않고, 무섭지 않고, 진열대에 놓인 과일이나 채소처럼 오늘 골라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