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곰출판
며칠 전에 사무실 동료가 뜬금없이 물었다.
"요새는 무슨 책을 읽으세요?"
요즈음 같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독서하는 나 자신이 별종으로 보이지 않을지, 회사일은 뒷전으로 미루는 한량으로 비치지는 않을지 하는 걱정에 사무실에서는 책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으나, 가끔 포스팅하는 인스타그램 덕분에 나의 지루한 취미가 들키고 말았다.
"음... 물고기는 없다?"
평소에도 읽은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제목이나 저자를 기억하는 게 매우 힘들다는 불치병은 말도 안 되는 핑계라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고기는 없다요? 그런 책이 있어요?"
그 친구는 자신의 폰으로 열심히 검색하고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당연하지 그런 책은 없으니까...
순간 당황한 나는 바로 정정했으나, 이미 늦었다.
"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깜박했네. 하하하"
그 친구는 이미 나의 독서 "내공"이 실제로는 "빌공"임을 눈치채고 말았다.
그러나 그 친구는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나에게 한번 더 만회할 기회를 주었다.
"무슨 내용이에요? 소설이에요? 표지가 특이하네요."
책의 내용을 명쾌하게 요약하고, 책의 의미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멋지게 말함으로써 내 독서력이 결코 허당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마치 알 수 없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의 공항에 홀로 낙오된 여행자처럼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핑계가 아니었다. 금붕어와 견줄만한 나의 기억력(사실 금붕어의 기억력은 알려진 것보다 좋다고 한다. 금붕어가 이겼다.)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은 실제로 간단히 정의 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화제다.
과학책으로 분류되어 있음에도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와 있고, 온라인 서점의 리뷰도 100여 개가 달려있고, 많은 SNS 포스트에서도 이 책을 언급하고 있다. 유튜버 '겨울서점'님이 극찬한 영향력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좋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또한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스포 하지 않는 리뷰' 라며 마치 소설을 다루듯 하는 재미있는 현상도 있다. 과학을 다룬 논픽션인데 스포를 걱정하다니, 특이하다.
이 책은 사실 특이하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 룰루 밀러의 논픽션 데뷔작이며, 룰루 밀러가 사랑의 상실과 인생의 혼란으로 처해진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고자 19세기 활동한 생물학자이자 분류학자이자 스탠퍼드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을 좇아가면서 삶의 질서에 대해 의문과 답을 찾고자 한 여정이 담겨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긴 시간을 통해 이룬 물고기에 대한 분류 작업이 지진을 통해 파괴되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생각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난관을 헤쳐 앞으로 전진했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한다.
저자는 마치 구도자가 되어 인생의 답을 찾고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행적을 쫓아간다.
그러나, 그 추적 끝에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인생의 진실과 인간에 대한 해답이 없었다.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예상치 못한 사실에서 저자는 이제껏 품어온 생각과는 다른 삶의 질서와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러한 구조가 일반적인 과학책의 서사 구조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스포 방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변적인 사건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어느 특정 인물의 전기로 진행되다가 실체적인 진실을 통해 존재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을 과학책이면서 철학책이면서 인문 에세이로 읽히게 하는 힘이다.
이러한 장르적 변주는 매우 영리한 선택이었다. 저자가 만들어 놓은 변주 속에서 독자들은 존재의 의의에 대해 품은 의문이 확장되고 본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그 길은 누군가에 의해 범주화되거나 분류되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길이기에...
이 책은 장르의 복합성뿐만 아니라 메시지도 복합적이다. 읽는 사람에 따라 읽히는 메시지가 다를 수 있다.
내가 읽은 메시지는 이거다.
인간이라는 종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각각의 개인은 소중하다.
민들레가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이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가 되듯이 모든 생물에게는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 그 복잡한 우주 안에 복잡한 우리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