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일기_ 2월 18일
언제든 일하고 언제든 쉬는 프리랜서에게 월차 따위는 없다. 장기간 휴가를 가야 한다면 미리 일정을 비워두고 협업하는 디자이너에게, 클라이언트에게 알려야 하지만, 단 하루 쉬는 날은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뭐 알리고 편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프리랜서도 있겠지만 난 뭐 굳이. 한국에 없는 것도 아니고, 전화, 메일 확인 못하는 거 아니니깐 적당히 받고 적당히 둘러대면 된다.
지난 화요일 정월대보름은 설 연휴에 못 간 시댁을 가는 날. 평일인 데다가 곧 마감인 프로젝트가 있어서 1박 2일 대신, 당일치기를 감행하게 되었다. 아침 7시 40분, 8시 40분 열차를 타기 위해 나가는 길, 노트북보다 가볍고 스마트폰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아이패드를 챙겼다.
기차에 앉아 아이패드를 열고 메일을 체크하고 파일을 체크하고 일정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7분이나 지연 도착한 기차 안의 시간은 짧고 빠르게 느껴졌다. 기차 안에서 오전에 온 메일들을 모두 처리했다. 다행히 오후엔 급한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사건을 벌어졌다. 다음 주에 있을 행사에 중요한 참석자가 참가하지 못하게 된 것. 일주일 전쯤 참석 여부를 챙기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바쁜 사람들의 스케줄을 챙기고 미리 일정을 빼주길 요청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스스로를 자책했다. 사전에 공지하지 못했던 점을 참석자에게 설명해야 했고, 진행상황을 담당자에게 알려야 했다. 그것도 시아버지의 차 안에… 일하는 걸로 뭐라 하실 분은 아니지만, 6개월만에 보는 며느리가 말도 없고 바쁜 척을 하고 있는 게 왠지 죄송했다. 오랜만에 왔으니 어디든 가자는 시아버지를 따라 바다도 보고, 전망대도 갔다. 손은 바쁘게 움직이면서 눈은 호강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건가. 왜 연락을 받고 있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원래 그렇게까지 일하는 사람이 아닌대, 그날은 유달리 처리해야 할게 많았던 것이다. 전날 담당자가 휴무라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 급하게 터진 일 등이 나의 머리를 괴롭혔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가왔고 불이 나던 스마트폰은 이미 저전력 모드였다. 어느새 배터리는 5%가 채 남지 않았고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핸드폰이 꺼졌다. 그제서야 내 마음도 안심 아닌 안심이 되었다. 감기 걸릴 날 위해 시아버지는 비싸고 기름진 소고기를 사주셨고 잔뜩 배부른 상태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날은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실수를 한 번하고 나니, 꼬리에 꼬리를 물듯 사건이 터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것도 아니긴 했지만, 그날은 집에 오는 기차 안에서 머리를 수십 번 뜯었다.
프리랜서라고 하면 친구들은 부러워한다.
“너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으니 좋겠다”고 하지만 그들도 프리랜서를 하면 알게 될 거다. 남들이 일할 때 일하고 남들이 일 안 할 때도 일하는 게 프리랜서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