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현 Jan 12. 2019

3. 일본에 가기 전

갈림길에서

2010년 7월 16일


#길위의집은없다

새벽 3시.

졸린 눈을 비빈다. 자전거에 실을 짐을 다시 체크하였다. 자전거 위에서 한참을 고민했던, 무게 줄이기를 다시 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봐도, 놓고 가야 할 짐이 없다. 자주 쓰진 않아도 한두 번은 필요할 물건들이 많다. 옷도 최소한으로 준비했다. 자전거를 타는 동안 입을 두 벌. 그리고 도시에서 다닐 옷 한 벌. DSLR은 무거웠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버너도 길에서 간단히 먹으려면 필요하다. 나머진 자잘한 것들이라 놓고 가도 티가 나지 않을 것 같다.


“흐음…. 결국 텐트 밖에 없나. “


고민에 고민을 하다 텐트를 놓고 가기로 한다.


“너 텐트 안 가져가면 백 퍼센트 후회한다. 텐트는 무조건 가져가.”

“아무리 생각해도 뺄만한 게 텐트 밖에 없다. 텐트 하나만 빼도 부피랑 무게가 확 줄거든.”

“그럼 너 밤엔 어디서 자려고? 길바닥에 자게?”

“하아… 그거 쭉 생각해봤는데, 길 위에서 노숙해보려고. 침낭은 가져가니 이걸로 어떻게든 안 되겠나.”

“야 너도 참. 난 분명히 말했다. 후회할 거라고. “

“후회할 것 같긴 한데, 텐트를 지고 가느니 조금 더 가볍게 다니며 후회할래.”


내 결정을 듣던 수민이는 정말 후회할 거라 장담했다. 나도 수민이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짐 무게를 줄이려면 텐트가 가장 효과적이다. 부피도 가장 크고, 무게도 가장 무겁다.


일본에서는 숙소를 잡지 않고 다닐 계획이었다. 텐트에서 숙식을 할 요량으로 숙소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텐트가 없다면 정말 길 위에서 침낭 하나에 의지한 채 노숙을 해야 한다. 겁이 나지만, 해보자. 잘 때만 고생하면, 자전거 위에서는 편하니까.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한다.


텐트를 놓고 짐을 실으니 훨씬 가벼워졌다. 페달 밟기도 한 결 수월하다.



#Take006
- 2010년 7월 16일 새벽 4시 전. 영덕에서 국내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영해 터미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 엄청 피곤하지만, 예정대로 차를 타야 되고, 거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위치가 애매하기 때문에, 미리 출발하긴 하는데, 마지막까지 깔끔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지금 4시인데 7시 반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 그리고 니가 일본에서 이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지만, 텐트 안 가져 간 건 후회할 것 같다. (하하)
- 아냐 텐트는.. 빼야 될 것 같아. 자 하여튼..
- 마지막까지 파이팅!
- 파이팅! 이상.



영해터미널로 가는길. 잠시 쉬는 중.



#영해고속버스터미널

예상대로 길을 헤맸다. 길 위에 이정표가 많지 않아 갔던 길을 되돌아가길 반복했다. 그래도 다행히 버스 시간 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수민이의 자전거도 별 탈 없었다.


터미널 입구에 자전거를 주차한 후 짐을 단단히 묶었다. 대합실에 들어가 한편에 있는 매표소에서 버스표를 샀다. 수민이는 서울행 버스를, 나는 부산행 버스를.


버스를 타기 전에 시간이 남아 아침을 먹기로 하였다. 아침 일찍 문을 연 국밥집으로 향했다. 밥을 먹으면서 2박 4일 동안 왔던 여행과 앞으로 가게 될 일본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집으로 간다는 것이 미안했는지 수민이가 계산한다.



영해터미널



#Take007
- 2010년 7월 16일 7시 7분. 이제 국내에서 자전거 라이딩은 일단…
- 끝났다.
- 끝? 아직 부산과 서울에서 좀 더 남아있지 않았나?
- 그건 각자의 길이긴 하지만, 같이 하는 공식적인 여행은 이미 끝났다. 우리 똥스가 이제 혼자서 일본을 가야 되는데, 아무리 봐도 텐트 안 가져간 것이 후회될 것 같고… 그냥 자전거랑 패니어, 그때까지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고. 타이어 펑크 날 일 없이 갔음 좋겠다.
- 하여튼, 일단 국내에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이제 남은 건 진짜.
- 진짜.
- 진짜 목적지는 일본이지. 일본 가야지 이제. 여기 영해 터미널에서 서울 가는 버스, 부산 가는 버스를 각자 기다리고 있는데. 오늘 목적지까지는 잘 도착한 후에, 정리를 한 다음에 일본 가야겠다.
- 삼척에서 영덕 경정 갔다가, 다시 영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오는데 대략 165km 이상 걸렸다.
- 어제만 100km
- 어제 하루 동안 100km만. 와 하루에 100km를 달렸는데, 이거는 어느 자전거 여행을 하시는 분들을 봐도 그런 기록을 깼다는 것을 나는 아직 못 봤다. 우린 대단한 것 같다. 똥스가 그걸 이어가길.
- 여행은 계속된다.



비가오는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갈림길에서

정류장 앞 의자에 앉았다. 먹구름이 서서히 몰려든다. 조금씩 어둑해지더니 금세 비가 쏟아진다. 자전거가 비에 맞지 않게 처마 아래로 들인다.


군인 시절 계획했던 여행을 끝까지 하지 못한다는 점이 수민이에게는 못내 아쉬운 듯하다. 오랫동안 같이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수민이와의 여행은 이렇게 짧게 끝나게 되니 아쉽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애초 계획에서 국내 일정은 그렇게 큰 비중이 아니었다. 일본 횡단이 주 목표였고, 국내 일정은 일본에 가기 전  자전거 여행에 적응하기 위한 코스로 계획했다. 하지만 수민이의 몸 상태와 일정으로 인해 부산까지 완주하지 못하고, 영덕에서 끝낸다는 게 아쉬웠다. 나 혼자서라도 부산까지 가려한다면 갈 수 있었겠지만, 수민이가 중도에 올라간다니 맥이 빠졌다. 국내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일본으로 바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서울행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버스 아래칸에 자전거와 짐 싣는 것을 도왔다. 우리는 가볍게 끌어안았다. 수민이가 버스에 오르기 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한다.


“힘내라. 돌아오게 되면 여행 이야기 꼭 들려줘.”

“알았으니, 올라가서 몸 잘 챙겨.”


그렇게 수민이가 탄 버스가 정류장을 떠났다. 이제 혼자 남았다. 멍하니 비가 오는 하늘을 바라본다.

잠시 뒤 부산행 버스가 도착했다.


부산에도 비가 내린다. 준비해둔 비옷을 입고 자전거에 올랐다. 일본에 가기 전 해운대에 계시는 고모댁으로 향했다. 어릴 때 방학이면 며칠간 머물며 사촌과 놀았던 곳이다. 오랜만에 인사도 드릴 겸, 실례를 무릅쓰고 일본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머물기로 하였다.



길위에서 만나는 지도를 가이드 삼아 고모댁으로. 지도 안내판은 자전거 여행의 가장 큰 길잡이다.
부산 앞바다에서 본 풍경
부산 앞 바다에서 본 풍경 2



#정산0716
버스 : 14,200원
#자전거일지0716
달린거리 : 42.08 km
누적거리 : 202.99 km
일본누적거리 : 0 km
평균속도 : 12.10 km/h
최고속도 : 43.80 km/h
달린시간 : 3:28:33




2010년 7월 19일


#여행준비는끝났다

일어나서 짐을 확인하였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었다. 이 정도면 일본 자전거 여행에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문 앞에서 배웅 나온 사촌과 인사를 하였다. 고모댁을 뒤로하고 부산 국제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3일간 쉬었다고, 페달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금세 익숙해졌다.


 부산은 잦은 언덕과 터널이 많아 자전거 타기 힘들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해안가를 따라가니 훨씬 수월하다. 날씨는 더웠지만, 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해안가를 따라 2시간 정도를 달리니, 화물선이 모여있는 항구가 보인다. 수많은 컨테이너를 지나치며 조금 더 가니 여객터미널 간판이 모인다.


터미널 옆에 ‘카멜리아’라 적혀있는 여객선이 정박해 있다. 후쿠오카로 향하는 배다. 일본까지 자전거를 싣고 가려면 이 여객선을 타야 한다. 여객선이 눈 앞에 있으니, 벌써 일본에 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설레는 마음이 올라온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게 된다는 걱정도 들기는 했지만, 접어둔다.


‘그래도 여행이지 않은가.’


설레는 기분을 만끽한다.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가는 길


#Take009
-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5시 50분.
지금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서 표 끊고, 자전거 화물칸에 수속 밟고, 지금 몸만 따로 나와서 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뉴 카멜리아호.
지금 멀리서 보이는데, 생각보다 엄청 큰 배네요.

이제 드디어 군 시절, 일병 때 계획했던 여행을 이제서야 떠나게 되어서 뭔가 모르게 뿌듯함과 기대감과… 많이 설레네요.

아까 여기 도착하자마자 스위스에서 온 남녀 커플 라이더를 만났는데, 보니까 대단합니다. 짐은 앞뒤로 패니어 네 개 각각. 인천에서 속초 건너서 부산까지 왔다는데. 속초부터면 나랑 라인이 비슷하긴 한데? 그 길을 어떻게 왔는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제 7시 반이면 배를 타고, 10시 반이면 배가 출발하는데. 왠지 모를…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그 혼자 넘어가고… 뭐 이상 긴 말은 말고 일단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후쿠오카로 가는 뉴 카멜리아호에서 바라본 부산




#정산0719
- 후쿠오카행 배 : 101,200원
- 자전거 화물료 : 10,000원
- 물, 간식 : 7,300원
- 소주 : 2,500원
#자전거일지0719
달린거리 : 26.27 km
누적거리 : 229.26 km
일본누적거리 : 0 km
평균속도 : 12.90 km/h
최고속도 : (미기록)
달린시간 : 2:01:29


매거진의 이전글 2. 영덕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