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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Feb 02. 2019

5. 후쿠오카 외곽으로

한적하고 고요한 마을

2010년 7월 20일


#하카타항

배가 하카타항에 도착했다. 객실 안에 있는 TV에선 일본 아침방송이 나오고 있다. 일본 아저씨들과 같이 TV를 보며 잠을 깬다. 배가 하카타항에 정박한지는 꽤 시간이 흘렀다. 옆에 형들이 아직 항구의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아 내보내 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갑판 위로 올라가 하카타항을 바라본다. 느낌이 묘하다. 어제까지 갖고 있던 설렘은 약간의 두려움으로 변하고 있었다. 


#Take011
2010년 7월 20일 오전 6시 
일본 하카타항에 배가 정박되어 있네요 지금. 뭔가 냄새부터 다른 것 같은데… 이제 여행이 시작되었어요. 

자전거 찾으러 가야겠네요. 


#하카타역

하카타 여객터미널에서 자전거와 짐을 수령받은 후 최종 정비를 하였다. 몇 번이고 살펴봤지만, 큰 이상은 없다. 터미널을 나서니 습하고 더운 공기가 훅 들어온다. 여객터미널 주변엔 아무것도 없다. 텅 빈 넓은 주차장이 눈 앞에 펼쳐진다. 


우선 배 안에서 만난 자전거 여행 온 형과 하카타역에서 같이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형을 뒤따라 페달을 밟는다. 


후쿠오카는 부산보다는 한적한 느낌의 도시이다. 사람들도, 차도 조금은 더 여유 있는 모습이다. 자전거 도로가 인도 위에 나 있는데, 상당히 편하다. 아스팔트로 포장이 잘 되어 있다. 인도 위 사람들도 자전거 도로에 침범하지 않고, 자전거도 인도로 침범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낯선 도시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하카타 역에 도착했다. 여객터미널에서 하카타역까지는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 


역 안으로 자전거를 끌고 들어갔다. 모든 짐이 자전거에 묶여있었기에 밖에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역 안 상점에서 파는 도시락을 사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형은 오늘 후쿠오카를 둘러보겠다고 한다. 서로 가는 방향이 조금 달랐기에, 역 앞에서 서로 힘내라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하카타 역 안에서


#Take012, Take013
(매장 안에서 울려 퍼지는 ‘카라’의 ‘미스터’ 음악소리)


#Take014
2010년 7월 20일 
여기는 오노조 시티구요. 하카타 역에서 계속 직진. 쭉 타고 내려와서 여기까지 왔네요. 지금 내가 가는 곳은 다자이쿠 고쿠분. 지금 날씨가 햇빛 때문에 피부도 벗겨지고. 

오는 길에 돈키호테랑 다이소를 갔는데, 우리나라에서의 다이소는 그냥 골목에 있는 구멍가게 분위기지만, 여기 있는 다이소는 거의 할인마트 수준? 대형 할인마트 수준이고, 돈키호테 같은 경우에는, 와 진짜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정도로 정말 많은 물건과 많은 볼거리. 들어가서는 안 살 수가 없는, 뭐라도 안 살 수가 없는 그런 분위기의 가게입니다. 

어쨌든, 지금 가는 길에 잠시 쉬고 있는데, 생각보다 막막하네 지금. (하하)

어찌 되었든, 여기서 이상.


후쿠오카의 도로 풍경


#지도를들고다니는사람들

일본 사람들은 지도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길을 헤매다, 근처에 있던 일본인에게 길을 물었었다. 나의 짧은 일본어로 인해 목적지를 간신히 알아들으셨다. 그러곤 위치를 알려주시려 하시는데, 가방에서 두꺼운 손 지도책을 꺼내 살펴보셨다.  길을 찾아 친절히 알려주셔서 다행이지만, 자신의 동네(또는 도시)의 지도책을 들고 다니는 모습은 낯설었다. 보통은 차 안에다 두고 다니는데 말이다. 


그러다 또 길을 헤매어 길을 묻게 되었는데, 그분도 지도책을 가방에서 꺼내어 살펴보신 후 알려주셨다. 


우연의 일치로 지도책을 들고 다니는 두 분을 연달아 만난 건지. 아니면 일본 사람들이 지도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일상인지. 알 수 없었다. 


길을 헤매다 들어온 골목길. 자전거를 타는 학생들이 보인다. 
후쿠오카 도로 풍경 2


#사촌누나네마을

사촌누나가 후쿠오카 외곽 근처에 산다. 초등학생 때인가? 중학생 때인가? 누나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이 정말 가물가물하다. 가끔씩 부모님을 통해 들어오는 소식으로는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일본으로 여행 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께선 누나가 일본에 있으니 한 번 연락해보라 했다. 여행 전 누나와의 오랜만의 연락을 통해 놀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래서 지금 그때 받아 적은 주소 하나 들고 누나 집으로 가고 있다. 


문이 잠겨있다. 

그러고 보니 누나가 일하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와버렸다. 내심 당황했지만, 일하는 곳을 모르기에 마을 주변을 다녀보기로 한다. 


여기는 후쿠오카 외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2층 높이의 주택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상점이랄 것도 많이 없다. 라멘집 두어 개 정도와, 자전거 상점, 그리고 마트가 보인다. 마트는 마을 입구에 있는데, 무언가 살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한 것 같다. 마트 앞을 가보니 몇몇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보인다.  사람들이 물병에다가 물을 담고 있다. 살펴보니 식수대라고 적혀있는 것 같은데, 돈을 내고 마실 물을 각자 가져온 물병에 담아 가는 방식이다. 각자 가져온 물병도 제각각이다. 정수기용 물통같이 큰 병을 가져온 사람이 있는가 반면, 냉장고에 넣어 먹는 물병 여러 개를 들고 온 사람도 있다. 


골목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골목에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각 주택의 담장이 낮아 마당이 보인다. 화단을 많이 꾸며놓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골목을 꺾어 돌다 보니, 공사 중인 집이 보인다. 그런데, 공사하는 사람이 한 명이다. 그것도 백발의 할아버지 혼자. 간단한 수리를 하는 건가 했는데, 조립된 벽을 올리고 계신다. 순간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다. 


‘할아버지 혼자서 집을 짓고 계신다고?’


뭔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고요한마을

아직 누나가 퇴근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조금 더 멀리 가보기로 한다. 누나 집 문 앞에다 짐을 내려놓고, 자전거만 끌고 나왔다. 도로로 나오니 갈색의 이정표가 보인다. 왠지 유적지나 주요 관광지를 나타내는 것 같다. 무작정 이정표를 따라 가본다. 


오르막길을 따라가다 보니, 유적지 하나가 보인다. 평평히 넓은 들판에 잔디가 무성한 곳이다. 한가운데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을 살펴보니 '다자이후 정청 유적’이라는 곳이다. 단순히 넓은 들판에 세운 비석인 줄 알았지만, 원래는 궁전 같은 건물이 있던 곳이다. 주변을 보니 이전에 있던 건물의 초석이 줄지어 이어져있다. 10~11세기에 지어진 건물은 전란으로 전체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초석이 놓인 기초의 너비가 상당하여, 얼마나 큰 건물이 이 곳에 있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금 이 곳에 건물은 없지만, 산을 배경으로 세 개의 비석과 나무 한 그루가 빈 터를 채우고 있다. 


유적지 옆에 가보니 절하나 가 세워져 있다. 한옥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이다. 절 앞에는 마당이 있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모여 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운동장이나 놀이터도 아닌데 절 앞에서 노는 모습이 신선하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 숲에서 나는 새소리 외에는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다자이후 정청 유적
나무에 파묻힌 돌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유적지 옆에 위치한 절
절 앞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Take015
2010년 7월 20일 오후 4시 5분.

지금 후쿠오카 고쿠분에 있는 간제온지에 와 있는데요. 간제온지 절 뒤에 히에신사라는 절을 올라갔는데. 미국인은 모르겠고, 서양인 한 명이 검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가도 본채도 안 하고, 정말 집중하는 것으로 봐서는, 어떤 신념이 있기에 여기 찾아온 것 같은데… 아무도 없는 작은 신사에서 혼자 묵묵히. 땅바닥이 앞뒤로 패일 정도로 왔다 갔다 거리면서 하는데, 정말 모든 걸 다 바쳐서 저렇게 한다는 게,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 


사원 옆에서 죽도를 들고 집중하고 있는 서양인의 모습. 바닥에 패인 흔적이  그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오랜만에만난사촌누나

다시 누나 집에 도착했다. 퇴근한 누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오랜만이라 마지막 기억 속의 누나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아니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거야? 힘들었겠는데.”

“조금 헤매긴 했는데, 올 만 했어. 누나 진짜 오랜만에 본다.”

“그러게, 언제 마지막으로 봤는지 기억도 안 나네. 일단 짐 풀고, 샤워하고 나와. 밥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만나 그런지 정말 반가웠다. 

어릴 때 우리 집에 놀러 와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상당히 흐른 지금,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누나를 만나니, 뭔가 달라진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오랜 해외생활이 누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봐서 기억 속 누나와의 차이가 생겼던 걸까? 누나도 나도 서로의 소식이 궁금해 물어볼 것이 많았지만, 일단 짐 정리부터 하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너무 더워 어서 씻고 싶었다. 내가 너무 더워 보였는지, 누나는 에어컨 전원을 켰다. 시원한 바람에 습한 더위가 가신다.


누나 집은 2층 주택의 2층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집의 모습이지만, 일본식 주택의 특징이 눈에 띈다. 특히 베란다와 화장실이 그렇다. 베란다는 창이 없고, 개방되어 있다. 빨랫줄이 위에 쭉 이어져있다. 화장실은, 욕실과 세면대,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다. 제각각 정말 작고 좁은 공간이지만, 건식과 습식의 공간이 분리되어 각 역할에 충실하다.



#주점과가라오케

씻고 나오니 처음 보는 사람이 방안에 들어와 있어 놀랬다. 그런 나에게 웃으며 악수를 건네고는 누나의 남자 친구라 소개한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인데, 누나와는 일본에서 만났다. 누나와 결혼을 생각하는 사이라고 한다(훗날 실제로 누나와 결혼하여 매형이 되었다.). 


그 형에게 예비매형(?)이란 임시 칭호를 드렸다. 아무튼 형은 꽤나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국에서 처남이 왔는데,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며, 집에서 먼 거리에 있는 주점으로 데려갔다. 


일본에 들어오고 난 뒤 제대로 먹지를 못했는데, 예비매형 덕에 다양한 일본 음식과 술을 마셔볼 수 있었다. 고등어회, 전갱이 회, 일본식 족발, 일본식 소주 등등.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는데, 조금 짰지만 그래도 입에 맞아 맛있었다. 


누나와 예비매형, 그리고 나 이렇게 세 명이서 그간 서로 나누지 못했던 서로의 소식을 말하며 시간을 보냈다. 


술기운이 살짝 올라오고 있을 때, 예비매형이 자신이 자주 가는 다른 술집으로 가자 한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일본 아주머니께서 운영하는 바 형식의 작은 주점이었다. 


여기는 근방에 어느 남편분이 부인의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라고 만들어준 술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술만 매장에 있고, 음식은 옆에 가게에서 가져오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계신다. 돈을 버시는 게 목적이 아니기에 가끔 술값을 안 받기도 하신다고. 


예비매형은 아주머니께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주점 안쪽에 딱하나 있는 좌식 테이블로 들어갔다. 

거긴 이미 할아버지 손님 두 분이 앉아 계셨는데, 형과 친한지 바로 인사하고 합석을 하였다. 일본어가 오가는 테이블에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일본 할아버지께서 한국에서 왔냐며 나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누나와 형이 옆에서 통역을 해주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취기가 오르셨는지, 노래방 기기를 켜서 노래를 부르신다. 트로트에 가까운 일본 음악이었는데, 바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다 같이 따라 부르신다. 가게 전체가 금세 흥으로 가득 찬다. 예비매형 말로는 여기가 이 동네 유일한 가라오케인데, 방이 하나고, 방음처리 이런 거 없이 가게에서 다 같이 들리게 노래한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노래가 끝난 할아버지께서 노래를 해보라시며, 나에게 마이크를 주셨다. 이런 상황까진 생각해보지 않아 무슨 노래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윤도현 밴드의 노래가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시작 버튼을 눌렀다. 


#정산0720
- 도시락 : 450엔
- 아사히 맥주 : 140엔
- 오후의 홍차 레몬티 : 97엔
- 공중전화 : 100엔
#자전거일지0720
달린거리 : 30.27 km
누적거리 : 259.53 km
일본누적거리 : 30.27 km
평균속도 : 11.30 km/h
최고속도 :  (미기록)
달린시간 : 2: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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