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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현 May 02. 2019

6. 후쿠오카 동네 마실

여행에서의 급한 마음은 잠시 멀리 두고

2010년 7월 21일


#아침밥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만큼 늦잠을 잤다.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 보니 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누나는 이미 출근을 한 것 같다. 일단 목을 축이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어젯밤 마신 술기운이 조금 가신다. 


다시 소파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고 있을 때, 문이 덜컥 열렸다. 예비 매형과 함께 처음 보는 사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네 누나가 점심을 챙겨주라고 해서 왔어. 어서 씻고 점심 먹으러 가자. 그리고 인사해 여긴 내 친동생이야.”


부스스한 머리로 인사를 나눴다. 예비 매형의 유일한 형제로,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었다. 예비 매형과 같이 일본에 와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대학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는데, 지금은 방학중이어서 형 집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고. 


서둘러 씻고 나와 다 같이 집 근처에 있는 라멘집에 왔다. 전국 라멘 대회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기도 했다며 같이 가보자고 한다. 라멘집은 마을에서 가장 큰 도로의 길 가에 있다. 가게 자체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래도 가게 주차장이 꽤 큰 것으로 봐서는 외부에서 오는 손님이 많은 것 같았다. 가게 앞에 일렬로 늘어진 일본 특유의 깃대 장식이 라멘에 대한 기대를 크게 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벽면에 줄지어 있는 사케들이 눈에 들어온다. 매형 말로는 유리병으로 된 사케가 양이 많아 한 번에 마시기 어렵다고, 사람들이 킵을 해놓고 간 거라고 한다. 신발을 벗고 단상 위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가장 맛있다는 돈코츠 라멘을 주문했다.



#동네수영장

라멘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매형과 아재(?)가 이제 뭘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후쿠오카 중심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이 곳은 그렇게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뭔가 갑자기 생각난 표정을 짓던 아재가 수영장에 가자고 하였다. 대뜸 수영장을 가자니 당황했지만, 즐거워하는 예비 매형의 표정을 보니 나도 얼떨결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갔던 수영장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조금 걷다 보니 낮은 담장 너머 야외 수영장이 보인다. 자그마한 동네 워터파크다. 그래도 야외풀장, 워터슬라이드, 폭포수 등 있을 건 다 갖춘 수영장이다. 꼬마들과 어른들이 뜨거운 햇살 아래 풀장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오는 길에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이 잘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여기는 주민들이 심심하면 오는 놀이터 같은 곳으로, 더운 날씨에 모두 여기 모인 것이다. 



#일본의자전거주차

수영장 입구에 오니 자전거들이 눈에 들어온다. 엄청나게 많은 자전거들이 그냥 놓여있다. 말 그대로 그냥 놓여 있어 조금 놀랬다. 어디에 묶어두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처음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전거를 잘 훔쳐가지 않아 그런 것인가 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작은 시건장치가 뒷바퀴 위에 달려 있다. 뒷바퀴만 고정하여 굴러가지 못하게 끔 되어 있는 장치다. 번쩍 들고 가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예비 매형이 알려줬다. 자전거도 자동차처럼 시에 등록이 되어 있어, 분실이 되어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자전거를 묶을 곳을 찾을 걱정 없이 쓱 놓고 잠가놓고 가는 모습을 보니 자전거 주차하고 다니기 정말 편하겠다 싶었다. 


자전거 뒷바퀴에 달려있는 자물쇠



#집을짓고있던할아버지

수영장에서 누나네 집으로 가다, 어제 봤던 할아버지 혼자 집을 짓고 있던 집 앞을 지나갔다. 


“매형, 어제 여기 공사장 보니 할아버지 혼자 집을 짓고 있더라고요? 벽을 혼자 세워서 작업하시던데.”

“아 그분? 혼자 집 짓고 계시고 있지. 여기 동네에 새로 짓는 집들은 조립식으로 짓고 있어서, 혼자 집 짓기도 하더라. 근처에 엄청 큰 공구 마트가 있으니까, 한 번 가봐. 건축 공부한다고 했지? 그럼 꼭 한 번 들러봐.”


자전거를 타다 지나치며 봤던 공사장들이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현장에 일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건물들이 조립식으로 지어져 적은 인력으로도 지어질 수 있게 되었나 보다. 그래도 할아버지 혼자 집을 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2010년 7월 22일


#여행에서의급한마음은잠시멀리두고

자전거로 일본 횡단 여행을 떠나겠단 마음을 먹은 게 1년 반 전. 이 여행을 위해 집 문을 열고 나선 지 열흘이 다되어간다. 


실은 오늘 자전거에 짐을 모두 싣고 출발을 하고 싶었다. 오래전 계획 한 여행이 시작되어 이렇게 일본까지 왔는데, 마냥 편하게만 있기엔 조급해진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한시 빨리 출발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어젯밤, 저녁을 먹으며 누나와 예비 매형에게 말을 했었다. 하지만, 약속한 듯 두 사람 모두 하루 더 있다 가라고 한다. 


“이왕 온 거 조금 더 편하게 있다가. 언제 이렇게 만나 저녁을 또 먹겠어. 안 그래?”

“여행 출발하면 언제 올지도 모른다고 했지? 그러니까 하루 더 푹 쉬었다 가”


다시 생각해보니 예약한 숙소도, 정해진 일정도 없다. 하루 더 쉬었다 간다고 해서 여행에 큰 지장이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할 일도 없다. 그냥 나의 마음이 조급해졌을 뿐. 그래도 누나에게 얹혀 지내는 것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딱 하루만 더 있다 가기로 했다. 



#후쿠오카마실

누나도 매형도 출근을 하고, 나 혼자 남았다. 특별히 할 것이 없다. 이왕 이렇게 하루 더 여유가 생기게 된 것, 후쿠오카에 다녀오기로 한다. 자전거로. 모든 짐을 다 놓고, 카메라와 백팩만 메고 가기로 결정했다. 누나 집엔 오후에 다시 돌아올 거니까. 


그래도 한 번 지나갔던 길이라 그런지, 조금은 익숙한 느낌이다. 첫날 지나간 방향의 반대로 가는 것이긴 하지만, 그때 눈에 띄었던 건물과 간판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자전거 도로 위를 가볍게 지나간다. 확실히 자전거 짐이 없으니 편하다. 푸른 하늘에 녹색 잎이 달린 가로수가 줄지어 있다. 강가를 따라 만든 도로 위에는 사람 한 명 없이 한적하다. 페달을 밟는 느낌이 상당히 좋다. 


모모치해변으로 가는 길
강변 아파트
재미있는 형태의 미끄럼틀


#Take016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모모치 해변에서 지금 쉬고 있다. 하하.

다자이후에서 다시 후쿠오카 시로 들어왔는데, 후쿠오카 타워가 뒤에 있고, 앞에 모모치 해변이라고. 여기 동네가 정말 뭐랄까, 한적하다고 해야 하나, 유유자적한 그런 분위기다. 

옆에 야구구장인 야후돔이 있고. 여기도 관광지이긴인데, 한국사람, 외국사람보다 일본 사람이 많이 오는 장소인듯하다. 부산 해운대, 광안리보다는 좀 더 한적한 분위기다. 

여기가 제주도보다 아래쪽이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조금 습하고, 조금 더 덥고 그런 느낌이 있다. 내가 대구에 살아서도 이렇게까지 더운 적이 있었나 모르겠다. 

이상.


모모치해변



#야후돔산책

모모치 해변에서 유난히 크게 보이는 돔 건물이 하나 있다. 야구장인데, 이름이 야후돔 Yahoo! Dome이다. 어릴 적 많이 쓰던 검색 사이트가 이렇게 큰 간판으로 보이니 뭔가 이상하면서도, 친숙했다. 우리나라에서 네이버가 많이 쓰이듯, 일본에서는 야후가 많이 쓰인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름을 야후돔이라고 한 것일까. 


야후돔은 12개의 일본 프로야구 구단 중 하나인 소프트뱅크 호크스 Softbank Hawks의 홈구장이다. 건물 곳곳에 호크스의 마스코트가 상당히 많이 보인다. 사람처럼 야구 유니폼을 입은 독수리가 웃고 있다. 야구에 관심이 많았다면 무언가 더 많이 보였을 테지만, 나에겐 큰 흥미를 일으키진 못했다. 단지 이렇게 닫혀있는 큰 지붕이 열린다는 점이 신기하였다. 내부에 잠깐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쉬웠다. 


야후돔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내려와 사진을 찍으려 했다. 카메라를 들으니, 맞은편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던 학생들 몇몇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 준다. 혹시나 내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것인 줄 알고 뒤돌아 봤더니 아무도 없다. 나도 반가운 마음에 나도 고갤 숙여 답례를 했다. 뭔가 여유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야후돔 앞에서 단체 사진찍는 학생들



#일본도심에서자전거를탄다는것은

후쿠오카 도심에서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경험이다. 자동차 도로와 자전거도로 그리고 인도가 어느 구간을 가더라도 잘 구분되어있다. 자전거가 아스팔트로 포장된 자전거도로 위를 매끄럽게 지나간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일본인이 상당히 많이 보이는데, 그중엔 학생,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와 비교 시 눈에 띄는 점은, 자전거도로에 보행자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혹여나 자전거 도로에 올라와 있는 보행자가 있을 때도 있었는데, 내가 다가갈 때쯤엔 눈치를 채고 바로 옆으로 비켜주었다. 조금 과할 정도로 잽싸게 비켜주는데 내가 피해 갈 수 있었을 상황이라 미안할 정도였다. 보행자 스스로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 질서를 위한 것인지는 알 겨를이 없으나 자전거 타기 상당히 좋은 환경이었다. 물론 나도 안전사고가 나지 않게 조금 천천히 조심히 달리기도 하지만 말이다. 


후쿠오카 타워


#대형마트장보기

누나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여 집에 와 있었다. 저녁에 누나 회사의 직원들이 나를 보러 여기로 올 거니 장을 보러 가자고 한다. 누나와 매형을 뒤따라 집에서 조금 멀리 있는 대형 마트로 향했다. 1층짜리 대형마트다. 


우리나라에 있는 대형마트와는 크게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었지만, 그래도 곳곳에 일본 특유의 모습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던 것은 ‘도시락 코너’와 ‘참치 해체쇼’였다. 도시락 코너가 마트 한 켠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양도 종류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뷔페식 코너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먹고 싶은 반찬과 요리를 하나의 도시락 통에 담아 제각각 계산하는 것이다. 도시락을 사 먹을 때 싫어하는 반찬이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건 본인이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 담을 수 있으니 남기는 반찬 없이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것은 ‘참치 해체쇼’였는데, 화려하게 꾸며놓은 부스와 테이블에 참치 한 마리가 통째로 놓여 있고, 흰색 요리사 모자를 쓴 아저씨가 회칼로 참치를 해체하고 썰어냈다. 현란한 손짓과 요란한 목소리로 눈길을 안 줄 수가 없었는데, 보기만 해도 재미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아저씨가 썰어 포장한 회를 집어 들기도 했다. 


요란했던 참치 코너를 돌아 이것저것 음식을 고르던 누나가 장을 마치고 계산대로 나섰다. 나와 매형이 한 짐 가득한 비닐봉지를 나눠들며 누나네 집으로 향했다. 



#일본에서먹는집밥

주방에서 상당히 맛있는 냄새가 난다. 누나와 매형이 왔다 갔다 하더니 어느새 요리가 완성되고 있었다. 혼자 소파에 앉아 있기 미안하여 상을 펴고, 수저를 가져다 놓았다. 상 위에 음식들이 하나둘씩 올라가고 있었다. 한 두 개 정도일 거란 내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어 엄청 많은 음식들이 올라왔다. 거의 마지막 음식이 올라갈 때쯤, 누나의 회사 동료들이 집으로 왔다. 5명이서 상 주위에 둘러앉았다. 


누나의 음식은 상당히 맛있었다. 어릴 적에 누나가 만들어준 음식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그때도 요리를 정말 잘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누나에게 감사하단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을 하러 왔다는 내 말을 듣고, 누나 회사 동료분들은 반반의 모습을 보였다. 대단하다는 의견과, 끝까지 하기에 힘들 것 같다는 의견. 하지만 모두들 약간 과장 섞인 표현으로 말하시며 격려를 해주셨다. 격려에 감사인사를 드리면서도, 속으로는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양쪽 의견에 대한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 여행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중간에 포기를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불쑥 찾아왔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여행에 대한 기대와 걱정을 뒤로하고, 누나가 차린 음식과 술을 맛있게 먹었다. 


누나가 차려준 저녁상



#자전거일지0722
달린거리 : 44.21 km
누적거리 : 303.74 km
일본누적거리 : 74.48 km
평균속도 : 13.40 km/h
최고속도 :  (미기록)
달린시간 : 3:17:30
#정산0722
- 은색테이프 : 49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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