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친구가 개종을 했다.
불교에 관심도 많고,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인데, 교인이 되었다.
종교는 개인의 자유이고, 나름의 고민과 이유를 가지고 개종했을 것을 잘 알기에 과정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슴 한구석이 무척이나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십수 년 전 내가 대학생일 때.
나와 무척 가까이 지내던 과 친구.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세상에 선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는데, 이 친구는 정말 선한 바닷가 마을 청년이었다.
이 친구는 선한 의도로 나보고 교회 가자는 말을 가끔 했었다. 정말 가끔이었다. 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조심 말하는 것을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교회를 본격적으로 다녔다고 하기는 뭣하지만, 교회에서 반년 정도 성경공부를 한 적도 있고, (타의지만) 고등학교는 미션 스쿨을 나와서 교회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익숙했었다. 그러다 군대를 갔고 무슨 바람이 불어 수계를 받고 확실한 불자가 되었다.
나를 면회 왔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불자가 되었다고 밝히는 순간 그 친구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와 같이 교회 가지 그랬어..'
난 그 순간 그 친구에게 전혀 화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은 미안했다.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오늘 그 친구의 얼굴이 무척이나 떠오르는 것은 내가 그 친구의 마음을 이제야 제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인 걸까?
또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과외했던, 나를 무척이나 잘 따랐던 친구.
불교에 관심이 많다며, 알려달라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던 친구인데, 나는 과외를 하면서 대학원도 다니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틈틈이 불교 활동도 하느라 사실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자신이 없었다. 불교를 적극적으로 알려주었다가 오히려 실망하면 어떡하지, 종교가 얼마나 영향력이 큰데, 내가 아직 자라나는 고등학생에게 내 멋대로 이렇게 가치관을 전달해줘도 되는 건지, 이 친구가 스스로 커나갈 때까지 시간을 둬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래서 알쏭달쏭하고 그럴듯한 말만 던져주고, 내 믿음을 잘 안내해 주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그 친구 역시 교인이 되었다.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다른 이를 둘러싸고 있는 벽을 깨고 내 믿음을 전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한발 물러서 있는 것이 배려인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불교가 내게 힘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이다. 불교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연결"이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고, 나와 세계가 다르지 않고, 내 선의와 내 아집은 맞닿아 있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불자가 되어 아쉬워했던 친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하게 된 오늘. 나는 그 친구와 뒤늦겠지만 조금 더 연결되었을 것이다.
내게 힘이 되어준 불교가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불교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