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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Kim May 02. 2019

이것이 불교다: 영화 <브루클린>으로 불교 들어가기

영화 "브루클린"의 입국도장과 불교의 시작

영화 <브루클린>의 에일리스는 가난한 아일랜드 여성이다. 그녀는 명민하고, 젊고, 아름답지만, 그녀의 조국, 50년대의 아일랜드에는 활력도 돈도 없다. 영국의 서쪽에 바짝 붙어 있는 섬이 아일랜드다. 크기도 영국 본토보다 조금 아담해서 형과 아우처럼 보인다. 아일랜드의 형님 국이었던 영국은 강대했지만 아일랜드는 항상 약소국이었다. 한때 본토의 100배에 달하는 엄청난 땅을 경영했던 대영제국의 영광은 영국의 것이었지 아일랜드의 것은 아니었다.

동네 상점에서 마귀할멈 같은 주인의 구박을 받으며 일하던 에일리스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다. 언니와 언니가 알던 신부님의 주선으로 미국 뉴욕에서 일자리와 하숙집을 제공받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에일리스는 어렵게 말을 꺼내지만 어머니는 흔쾌히 수락한다.

저 미쿡 갈래요.


미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드넓은 대서양을 배로 건너야 한다. 며칠, 몇 주가 걸리는 여정의 첫날 에일리스는 배 안에 식당에서 자기 혼자 뿐임을 발견한다. 잠시 후, 지독한 뱃멀미에 먹은 것을 다 게워낸 후에야 에일리스는 이 길이 쉽지 않음을 직감한다.     

대서양을 건너 다다른 육지. 카메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뉴욕의 풍경을 보여준다. 푸른 바다가 있고 고층빌딩이 켜켜이 서있는 곳. 그러나 아직 바다를 건너 조금 더 가야 한다. 지금 서있는 이곳, 입국심사장을 통과하면 뉴욕이다.      

그녀는 입국 심사관 앞에 선다. 배에서 사귄 뉴요커 친구의 조언을 떠올리며, 아일랜드인의 촌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자연스럽게 보이려, 긴장하지 않으려, 원래 미국 사람인 듯 당당하려 애써 자세를 잡는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가 서있는 곳은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 앨리스 섬일 것이다.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인 것 같지만 자유의 여신상은 뉴욕 바로 앞바다 안에 있는 앨리스 섬에 있다 보니 실은 뉴욕도 뉴욕 아닌 곳도 아닌 곳에 있는 셈이다. 미국의 가치는 자유이고,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자유를 상징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모두에게 미국에 입국할 자유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쿵! 하는 스탬프가 힘차게 여권의 종이에 박히고, 잉크가 옮겨가 스탬프가 찍혀야지만 ‘월컴 투 어메리카’라는 환영의 인사를 비로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사관은 그녀를 훑어보고, 쿵! 그녀의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준다. 문이 열리고 환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뒤로하며 그녀는 뉴욕에 발을 디딘다.

웰컴 투 어메리카!


불교가 어렵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불교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입으로 두말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법당의 높은 곳에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데, 스님들은 부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바로 너다”라고 한다. 사람은 죽어서 업에 따라 극락과 지옥에 간다고 하면서, 천국과 지옥은 다른 곳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고 가르치기도 한다. 수능이 되면 백일기도를 하러 절에 오라고 하면서(즉 기도하면 들어준다고 하면서), 불교는 신이 없는 종교라고 하기도 한다(그럼 내 기도는 누가 들어줄지?). 사람들에게 불교가 어렵게 느껴지게 한 데에는 불교의 책임이 크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다행히 불교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것뿐 아니라, 복잡한 것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것도 잘한다. 입국심사관이 에일리스에게 도장을 꽝 찍어주는 것이 미국에 들어와도 된다는 확실한 보장이었듯이, 불교도 이것이 불교의 진리다 하며 세 가지 도장을 찍어주는 게 있다. 세 가지(삼) 진리(법)의 도장(인)이라고 해서 “삼법인”이라고 부르는데, 이 삼법인은 불교의 핵심 중에 핵심이다. 즉, 불교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뭐라고 말했다고 했을 때, 삼법인에 맞아 들어가면 불교, 그렇지 않으면 불교가 아니라고 확실히 가를 수 있다. 그야말로 불교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국 도장인 셈이다.     



에일리스는 새로운 하숙집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무뚝뚝해 보여도 알고 보면 츤데레이지만, 친구들은 은근히 에일리스를 무시한다. 번듯한 백화점의 매대에서 손님들을 맞는 우아한 직업은 얻었는데, 처음 보는 손님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 매니저가 다가와 처음 보는 손님들을 처음 보는 ‘친구처럼’ 대하라고 조언해줘서, ‘노력하겠다’라고 대답했는데, ‘너는 팬티를 입으려고 노력해? 노력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해’라는 핀잔만 더 듣고 말았다. 새로운 환경은 이렇듯 그녀에게 중압감을 주는데, 그녀에게는 고향 아일랜드를 향한 지독한 향수병마저 번진다. 편지로 마음을 달래 보지만, 사람처럼 편지도 배를 타고 대서양을 천천히 오가는지라 그녀의 향수병은 마음의 병으로 커져가려고 한다.

그걸 이제 아셨어요?

사람은 환경이 바뀌면 이토록 힘들어한다. 물론, 환경이 바뀌어서 좋은 경우도 있지만,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은 부담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일은 몸에도 마음에도 익히고 자동화시키고, 이 자동화 과정이 내일도 일어나리라 가정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자동화를 두 글자로 줄이면 ‘일상’ 일 텐데, 사실 우리의 일상은 똑같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바뀐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루틴으로 출근이나 등교 준비를 하는 것 같지만, 현미경으로 확대해보면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은 보통은 세수를 먼저 하고 큰일을 보지만, 급할 때는 큰일을 보고 세수를 하기도 한다. 출근 준비할 때 내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똑같은 순서로 똑같은 시간에 한다고 해도, 아침에 집을 나서서 문밖의 공기를 느끼는 순간, 갑작스레 공기가 평소보다 더 따뜻해져 있기고 하고, 어제까지는 분명 해가 떠 있었던 것 같는데 오늘은 어둑어둑해져 있기도 한다. 내가 변하지 않아도 계절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변화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 당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인간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힘들어한다. 요즘과 같은 환절기에는 아침에 무엇을 입고 나갈까 한 번쯤은 고민해 보기 마련이다. 변화가 적을 때에는 그다지 느끼지 못하지만 클 때에는 송곳처럼 튀어나와 우리를 찌른다. 우리 주변에 당연히 존재하는 변화를 불교에서는 ‘무상’이라고 부른다. 어떤 것도(무) 같지 않다(상)는 뜻이다. 무상, 이것이 불교의 첫 번째 도장이다.     



에일리스는 급기야 일하던 도중에 울음을 터뜨리고, 츤데레 매장 매니저와 인자한 신부님의 도움으로 안정을 조금 되찾는다. 신부님은 표정만 인자하신 게 아니어서, 너처럼 똑똑한 아이는 공부를 해야 한다며 인근 브루클린 대학의 야간과정 한 학기 등록금을 내주신다. 에일리스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브루클린 대학에서 부기(bookkeeping)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신부님의 말씀대로, 점점 두각을 나타내며 수업에 빠르게 적응해 나간다.     

하숙집 친구들은 짓궂은 것 같으면서도 에일리스의 패션감각을 업그레이드시켜주려 노력한다. 그 덕분인지 에일리스는 성당에서 열어주는 성스럽기 그지없는 댄스파티에서 가뭄에 콩 나듯 있는 남자다운 남자, 이탈리아인 토니를 만난다. 같은 이민자라서 일까? 토니는 에일리스에게 조금씩 다가온다. 그는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탈리아 남자가 환장한다는 야구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영화를 같이 보며 조금씩 조금씩 가까워진다.


Would you dance with me?


이제 에일리스는 거의 뉴요커가 다 된 것 같다. 낯설었던 뉴욕 생활은 또 다른 일상이 되었다. 매장에서도 그녀의 표정은 밝기만 하고, 대학에서도 우수한 성적표를 받는다. 토니의 가족 식사에 초대받고, 토니와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일랜드에서 비보가 전해온다.     


언니가 죽었다.

친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


에일리스는 장례식에 참석할 수도 없다. 가는데 시간이 너무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례식이 끝나고 한참이 있고서야 아일랜드로 돌아온다. 아일랜드로 돌아오기 전 불안했던 토니는 그녀에게 결혼을 제안하고, 둘은 식은 없었지만 혼인신고를 먼저 한다. 에일리스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힘겹게 언니를 떠나보내주고, 이제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런데 그 찰나 언니의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왔다. 에일리스가 부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데다, 그 동네에서는 그런 인재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저자세이고, 보수도 두둑하다. 그래서 미국행을 조금만 미루기로 하고, 경리로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새로운 남자가 나타났다. 바로 짐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여유 있고 잘생긴 데다가 매너까지 좋은 이 남자에 에일리스는 조금씩 빠져간다. 이제 아일랜드의 여유 있고 로맨틱한 삶이 일상이 되어가고, 뉴욕에서 구축한 일상은 과거가 되어간다. 그 와중에 뉴욕의 토니는 계속 편지를 보내온다.


양다리는


영화에서는 두 남자와의 모습이 교차적으로 등장한다. 에일리스는 짐과 연애를 하며 토니를 떠올린다. 아일랜드의 생활을 하며 뉴욕의 삶을 떠올린다. 그녀는 짐을 정리하고 뉴욕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아니면 이곳에 정착하고 토니에게 편지 한 통으로 결별을 선언할 수도 있다. 짐과의 관계는 결혼을 향해서 달려가는데 결혼은 그녀에게 이미 한번 일어난 일이다. 달콤한 지금의 현실은 다시 괴로움이 되어간다. 그녀는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부유한 짐이냐 가난한 토니이냐(토니는 배관공이다)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녀와 그녀와의 문제이다. 자기 발전의 기회는 적지만 가족이 있고 추억이 있고 편안한 아일랜드의 나를 선택할 것인가, 큰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은 다소 궁핍하고 불안정한 뉴욕을 선택할 것인가.  이렇게 괴로운 이유는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나는 착한 딸, 영화도 별로 안보는 수수한 여성, 평범한 가게의 평범한 직원이었다. 뉴욕의 나는 독립적인 사람, 수영복을 입고 비치에서 데이트를 하는, 대학을 다니며 사무직을 꿈꾸는 당찬 여성이었다. 아일랜드에 돌아와 보니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아니다.      


나는 나의 변화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인지했을 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 것 같지만 실은 다르다. 머리카락도 조금 더 길어져 있고 손톱도 조금은 더 자라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루 사이의 변화는 그냥 똑같은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사실 별생각 없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같다고 퉁치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러한 미미한 변화가 꾸덕꾸덕 쌓여서 쑤욱 올라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25살이 넘은 독자라면 어느 날 한순간 거울을 보며 변해버린 내 모습에 다소 씁쓸했던 순간이 한 번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꾸준히 변한다, 이것이 불교의 두 번째 도장, 무아이다. 없을 (무), 나 (아)라는 말은 내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나는 없다는 말이다. 나도 계속 변한다는 말이다. 조금 눈치가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말은 첫 번째 도장인 무상-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을 ‘나’라는 대상에 적용시킨 것이다. 무상과 무아는 같은 말이라는 뜻이다.     



세상은 쉼 없이 변하고, 나도 쉼 없이 변하는데, 이것을 잘 받아들이기가 힘드니까 사는 게 괴롭다. 이것이 불교의 세 번째 도장 “고”이다. 고통이다. 우울한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불교가 고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이다. 변화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된다. 변화하는 것을 변화한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러면 지금의 내모 습, 어느 한순간의 내 모습, 돈 많은 내 모습, 똑똑한 내모 습, 치졸한 내 모습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 내게 나쁜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을 버리고 좋은 모습으로 가면 된다. 나는 원래 변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세상이 변하고 나도 변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몸과 마음으로 깨닫고 받아들이면 평안함이 찾아오는데 이를 열반적정이라고 한다. (열반적정 말이 어려운데 일단 평안한 상태라고 해두자.) 삼법인 <무상-무아-고>로 끝나면 너무 우울한 느낌이 들고 불교는 괴롭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열반적정’을 넣어서 네 가지 진리의 법, 사법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떠날 불교로의 여행은 이 세 가지 입국 도장부터 꾹 찍고 시작하자.     



에일리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일랜드에서 안온한 삶을 누렸을까 뉴욕의 역동적인 미래를 택했을까? 독자들의 일상에 소소한 기쁨을 뺏지 않고 싶어서, 결말은 말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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