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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소 Jun 04. 2019

대안적분쟁해결(ADR): 들어가는 글

싱가포르 협약(Singapore Convention) by 김아주

대안적 분쟁해결, 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소송 외 분쟁 방식 혹은 협력적 갈등 해결방법으로 알려져 있는 ‘대안적(또는 대체적) 분쟁해결(이하 ADR)’ 방법에는 주로 중재(arbitration), 조정(mediation), 협상(negotiation)을 꼽을 수 있다. 본 브런치의 ‘국경을 넘는 분쟁 해결’ 매거진 1화에서도 ADR이 잠시 언급된 바 있다. 각 ADR 방법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협상은 갈등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합의와 대화로 갈등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조정과 유사하지만 그 과정에 제삼자인 조정자가 참여하지 않는다는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한 법적인 효력이 없고 결정의 모든 책임에 대해 갈등 당사자의 자유의사에 맡기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다음으로, 조정은 갈등 해결에 있어 제삼자인 조정자가 참여를 하지만 중재의 중재자와 달리 조정자의 경우 갈등 당사자들의 갈등 해결에 조언자 또는 자문의 역할을 수행하며, 최종적인 결론은 갈등 당사자들의 합의로 결정이 나도록 한다. 대부분의 조정의 경우 법적인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제삼자가 갈등 해결에 있어 그 권한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중재와 가장 큰 차이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중재는 갈등의 해결에 있어서 갈등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갈등 해결이 아닌 중립적인 제삼자가 갈등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 협상에 개입하여 분쟁 당사자들이 쉽게 해결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갈등 해결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재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보다 제삼자인 중재자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는 형태로, 소송과 유사하지만 그 효력에 반드시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경우가 없는 경우가 있어 이에 소송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1]


사건 당사자의 국적이나 사건에 적용되는 법, 사실관계가 일어난 국가 등을 기준으로 '국내' vs '국제' ADR이냐의 여부가 다루어질 수 있는데, 국내 ADR과 국제 ADR에 대한 차이는 국가별 ADR 관련법이나 각 사건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 ADR은 국내 ADR에 비해 서로 다른 국적의 당사자 간의 분쟁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효율성·공정성 등의 이유로 국내 법원을 개입시킬 여지가 더 적다는 점, 분쟁 규모가 큰 사건들이 많아 비용이 더 들 수 있는 점, 언어/문화/지리적 차이 등으로 증거수집 및 해결 과정이 더 복잡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2]


필자와 본 매거진은 국제중재 및 국제 ADR 관련 주제·사건들을 다루고자 한다. 최근에 이루어진 싱가포르 협약(Singapore Convention)은 국제 ADR에 대한 관심과 수요의 증가를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와 멤버 국가들의 3년 넘는 숙고 끝에 2018년 6월 26일에 국제상거래법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싱가포르 협약은 ‘조정을 통한 국제 합의에 대한 협약(Convention on International Settlement Agreements Resulting from Mediation)’을 공식 명칭으로 한다. 싱가포르 협약은 오는 2019년 8월 1일에 싱가포르에서 체결될 예정이며 3개 국가의 비준 후에 본격적인 효력을 가지게 된다. ‘싱가포르’ 협약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가 근무했던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ICC) International Court of Arbitration (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 또한 UN Observer 기관으로서 싱가포르 협약에 관한 Working Group II (Arbitration and Conciliation) 회의에 주기적으로 참석해 기여해왔다. ICC는 국제중재뿐만 아니라 국제조정도 집행/제공하는 기관이다.


필자는 2019년 2월 4-8일 UN본부에서 열린 UNCITRAL Working Group II의 싱가포르 협약에 대한 추가논의에 ICC 담당자와 함께 참석했다.


싱가포르 협약은 공식 명칭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조정을 통한 국제 상업 합의(international commercial settlement agreement)에 법적 강제성을 부여한다. 이는 조정제도에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는 첫 국제협약이다. 싱가포르 협약은 중재판정(arbitral awards)에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는 뉴욕 협약(New York Convention)(공식 명칭: Convention on the Recognition and Enforcement of Foreign Arbitration Awards)을 모델로 삼아 이루어졌다. 뉴욕 협약이 중재판정을 해당 비준국의 국내 법원을 통해 직접 집행할 수 있는 절차를 제공한다면, 싱가포르 협약은 조정을 통한 국제 상업 합의를 해당 비준국의 국내 법원을 통해 직접 집행할 수 있는 절차를 제공한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조정을 통한 합의에 반드시 조정자(mediator)의 서명이나 조정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증명할 수 있는 문서가 있어야 한다. [3]


그동안 조정은 법적 효력이 없어서 무용지물이 될 우려가 많았고, 조정을 통한 합의 의무 불이행 시 ‘계약 위반’으로 국내 법원에 소를 제기해 법원 판결을 얻어내야만 합의내용을 집행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다르게는, 조정을 통한 합의에 중재자(arbitrator)의 서명을 얻어서 합의문이 중재판정의 효력을 가지게 한 후 뉴욕 협약 비준국의 국내 법원을 통해 이 합의가 법적 구속력을 가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곧, ‘조정을 통한 국제 상업 합의’만으로는 강제성이 없으니 ‘중재판정’으로 둔갑하고 중재판정에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는 또 다른 국제적 권위(뉴욕협약)를 통해 효력을 찾아가는 셈이다. 이처럼 갈등 당사자들이 소송 외 대안적 해결방법을 택하는 취지와 미흡하게도 소송이나 중재를 통하지 않고는 합의내용을 집행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싱가포르 협약 하에 조정을 통한 국제 상업 합의가 법원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게 됨으로써 기업과 개인에게 미치는 파급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한국이 싱가포르 협약을 비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4]


한편, 싱가포르 협약이 조정을 통한 모든 합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 협약 제1.3조는 다음의 경우를 협약 적용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5]  

    개인적(혹은 소비자적) 혹은 가정/가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계약상 분쟁에 대한 합의 

    법원 승인이 있거나 소송 과정에서 이루어진 합의  

    중재판정으로 기록/등록되거나 중재판정의 효력을 가지는 합의  

이들이 싱가포르 협약 적용범위에서 제외된 것은 뉴욕 협약이나 헤이그 협약 (Hague Convention for the Pacific Settlement of International Disputes) 등 이러한 합의를 집행하는 데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국제협약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6] 단, 이와 같은 합의에 대한 기준과 규제는 철저히 싱가포르 협약 비준국의 국내법적 절차 규칙(rules of procedure)에 의거한다. [7]


싱가포르 협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분분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싱가포르 협약이 인정하는 조정을 통한 합의가 조정자의 서명을 요구하는데, 미국을 포함한 몇몇 국가에서는 조정자가 서명을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청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차후에 해당 합의를 둘러싸고 소송이 진행될 경우에 증인으로 소환되어 법정에 출석해야 하는 경우를 우려하는 것이다. 또, 조정제도 자체에 대한 인식 및 평가에 기반된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국제적으로 ADR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한국의 조정제도도 연구·발전되어 온 평가를 받지만, 국가마다 조정에 대한 입장이나 법체계가 다르다. 한국에서 조정을 이용하는 경우는 여전히 다소 적은 축에 속한다. 평균적으로 연간 백만 건의 민사사건 중 8-9% 정도가 조정을 통해 해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8] 조정이나 조정을 통한 합의에 대한 각 나라별 사회적 인식 및 법적 구조에 대한 변화가 어떻게 바뀔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싱가포르 협약이 체결됨으로써 조정을 통한 국제 상업 합의의 수적 증가는 기대해볼 수 있겠다.



[1] 한국행정학회 용어해설 (http://www.kapa21.or.kr/epadic/epadic_view.php?num=834)

[2] “What’s the Difference Between Domestic and International ADR?” Legal by the Bay (https://blog.sfbar.org/2016/12/15/whats-the-difference-between-domestic-and-international-adr/)

[3]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United Nations Convention on International Settlement Agreements Resulting from Mediation, A/73/17 (2017), Article 4, available at http://www.uncitral.org/pdf/english/commissionsessions/51st-session/Annex_I.pdf UNCITRAL A/73/17.

[4] ‘韓, 싱가포르 협약 가입해야…동북아 분쟁조정 허브 기회,’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42819311),  ‘조정에 법적 강제성 부여 “싱가포르 협약”…한국이 “키맨” 됐다,’ 한국경제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9041434081)

[5] 영문으로는 다음과 같다. (i) settlement agreements concluded to resolve a dispute arising from transactions engaged in by one of the parties (a consumer) for personal, family or household purposes, (ii) settlement agreements that have been approved by a court or concluded in the course of proceedings before a court, and (iii) settlement agreements that have been recorded and are enforceable as an arbitral award, A/73/17 (2017), supra, at 4, Article 1.3.

[6] Patrick R. Kingsley, “The Singapore Convention on Mediation: Good News for Businesses,” available at https://www.stradley.com/insights/publications/2019/01/adr-advisor-january-2019 (last visited Apr. 7, 2019) or https://www.law.com/thelegalintelligencer/2019/01/09/the-singapore-convention-on-mediation-good-news-for-businesses/?slreturn=20190309152159 (last visited Apr. 10, 2019).

[7]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port of Working Group II (Dispute Settlement) on the work of its sixty-eighth session (New York, 5-9 February 2018), A/CN.9/934 (19 February 2018), p. 5, available at https://documents-dds-ny.un.org/doc/UNDOC/GEN/V18/008/77/PDF/V1800877.pdf?OpenElement.

[8] 2009-2015년의 경우, 등록된 민사사건의 약 9%만 조정을 통해 해결된 것으로 측정된다. “The Emergence of Mediation in Korean Communities,” Pepp. Disp. Resol. L.J., Vol. 15: 515, 2015, p. 517, available at https://digitalcommons.pepperdine.edu/cgi/viewcontent.cgi?article=1296&context=drl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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