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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비공 Sep 01. 2018

이루마의 쓴맛을 느끼다

'river flows in you' 제목부터 뭔가 잔잔한 느낌을 주는 이루마의 대표곡이다. 이 곡은 내게는 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피아노를 배운지 두 달여만에 첫 번째 선생님이 갑작스레 개인 사정이 생겨 그만 두셨다. 다음 선생님도 두 달 정도 지도하시다가 마찬가지로 개인 사정 때문에 심지어 인수인계도 제대로 못하고 그만 두셨다. 지금 내 선생님은 세 번째 선생님이다. 이 곡은 그 세 분 모두에게 지도받은 유일한 곡이어서 나름의 의미도 있고 그 분들의 서로 다른 스타일도 돌이켜볼 수 있는 곡이다. 

바흐의 평균율 1권 프랠류드 1번을 어느 정도 칠 수 있는 수준이 되자 두 번째 레퍼토리를 만들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의 모든 곡을 다 칠 수 있을 같다는 헛된 호기도 생겼지만, 그리 만만한 곡이 많지 않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어떤 곡을 택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학원에서 치맥파티가 열렸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도중에 이 곡이 흘러나왔다. 그때까지 멜로디는 알고 있었지만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이것이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래서 다들 이루마, 이루마 하는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이 곡이라면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학원 컴퓨터로 악보를 뽑아보았다. 가장조, 샵이 세 개 붙은 다섯 장짜리 악보였다. 다장조 아닌 곡은 처음 시도해보는 건데, 정신 차리고 파도솔은 옆의 검은 건반 누르면 되겠지. 일단 끝까지 한 번 쳐보자 생각하며 악보를 보고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30분 정도만에 그럭저럭 더듬거리면서 4페이지까지 칠 수 있었다. 내가 이 정도로 늘었단 말인가? 처음 보는 악보를 거의 다 쳐낼 수 있다니, 이런 감격이 들었다. 역시 어렸을 때부터 음악의 길로 갔었어야 하는가, 하는 회한도 들었다. 그런데 4페이지 중간 쯤에 조금 어려운 부분이 나온다. 몇 번 해보다가 차차 연습하기로 마음먹고 학원을 나왔다.

저녁에 원곡을 들어보며 분위기를 익히자는 생각에 유튜브를 검색해보았다. 이루마가 모 TV방송에 출연해 라이브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영상이 제일 처음에 떴다. 클릭을 하고 듣던 와중에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내가 연습할 때보다 더 많은 소리가 들리지? 연습 많이 했더니만 피곤해서 환청이 들리나? 혹시 라이브니까 이루마가 즉흥연주를 하는 걸까? 클래식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건 뉴에이지 곡이고 무엇보다 본인이 작곡한 노래를 본인이 즉흥적으로 바꿔 치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겠나 싶어서 앨범판을 들었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연습한 것보다 음이 상당히 많이 들린다는 것을. 결론은 내가 연습한 곡은 오리지널이 아니라 초보자용으로 편곡한 것이라는 점이었다.

다음날 학원에서 다시 검색해보니 아니나다를까 오리지널 버전 악보가 따로 있었다. 같은 가장조인데 페이지 수는 오히려 세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래도 뭔가 어려움이 있으니 편곡본을 따로 냈겠지. 그러나 조성도 같은데 굳이 편곡본을 연습하고 나중에 또 원곡을 연습하는 건 왠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라면 오리지널이지! 나는 힘차게 인쇄 버튼을 릭했다.



왜 편곡본이 따로 존재해야 했는지 불과 두 소절만에 감이 왔다. 내가 어려움을 느끼고 차차 연습하자고 미루어두었던 부분이 두 소절째에 등장했다. 왼손과 오른손이 각기 16분 음표를 연주하는데 엇박이다. 오른손이 중간에 이음줄로 인해 한템포 쉬는 동안에 왼손이 그 공백을 메꿔야하는데 이게 은근히 까다롭다. 풍물패를 했던 경험이 있어 리듬감은 꽤 있다라고 생각했지만, 손가락으로 이런 식의 엇박 리듬을 표현해본 적이 없어 애를 먹었다. 게다가 왼손 반주의 음역대가 너무 넓다. 기본적으로 두 옥타브를 넘나들며 왼손이 움직여야 한다. 무슨 라흐마니노프도 아니고.. --; 그 와중에 오른손 역시 도약이 큰 부분이 있어서 둘이 합쳐지는 순간이면 몸놀림이 아주 가관이 된다. 이때 연습 영상 안 찍어놓은 것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우울할 때마다 한 번씩 보면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우울증이 더 깊어지려나? --;

지금 단계에서 이걸 꼭 해야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좀 이상스런 고집이 있는 사람이다. 갑자기 군대 시절 겪었던 완전군장 행군을 비롯해 갖가지 어려웠던 기억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 이 정도 난관도 극복하지 못하면서 이 험한 세상의 풍파를 무슨 힘으로 헤쳐나갈 것인가. 한 번 낙오자는 영원한 낙오자가 될 뿐이다. 고작해야 이루마도 포기하는 정신상태를 지닌 주제에 무슨 낯으로 베토벤, 쇼팽을 뵙겠다는 것이냐.

첫 번째 선생님께 지도받은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이 곡의 악보를 가지고 들어간 그날이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사정이 생겨 죄송하다며 몇 가지 포인트만 일러주고 다음 선생님께 제대로 배우길 바란다는 작별 인사를 남겼다. 중학교 때 실습나온 교생 선생님이 실습 끝나고 돌아갈 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선생님은 첫 번째 선생님처럼 깐깐한 분은 아니었다. 성인이라고 배려하는지는 몰라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연습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정도의 선에서 지도하는 편이었다. 부분보다는 전체를 중요시한다고나 할까. 일단 전체를 완성해놓고 세세한 부분은 차근차근 만들어가자고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이 선생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의 자존심에 심하게 스크래치를 만들어놓았다. 내가 연주를 하면 울상이 된 얼굴로 '이 곡은 그렇게 세게 치면 안 돼요. 이건 소녀 감성의 곡이예요."라고 하소연한다. 대여섯 번 소녀감성 소리를 듣자 차츰 무안해지기도 하고 반발심도 생겨났다. 죄송합니다. 소녀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제가 딱히 무슨 산적 감성 같은 것의 소유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제가 알기로는 이루마 씨도 소녀가 아니거든요. --;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소녀였던 적도 없고요. 그 사람이나 나나 외모에는 서로의 장점과 특이성이 있으니 거론하지 않기로 하고, 나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좀 갸름하게 생겼다는 것 뿐인데, 뭐 이를테면 기생오라비라고나 할까, 그 사람은 소녀감성이고 나는 장비 감성인가요? 왜 자꾸 소녀를 강조하세요?

두 달이 채 못되어 이 분도 학원을 그만 두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다음 선생님한테 인수인계도 못하고 황급히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세 번째 선생님이자 현재의 내 레슨 선생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워낙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분이라, 나중에 뒷담화 한 번 언급해보고 싶다. 아무튼 이 분이 첫날 내 악보를 보더니만 놀란 표정으로 한 일 분 정도 아무 말 없이 악보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하고 묻자, 피아노 배운지 오 개월 되셨다고 했죠? 하고 되묻는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런데 벌써 이 곡을 치세요? 하고 묻는다. 그간의 개고생했던 기억은 송두리째 날아가고 뿌듯한 마음이 생겼다.

한 번 쳐보라고 해서 치자 총평을 한다. "보통 남자분들이 이 곡 치면 너무 세게 연주해서 분위기가 안 사는데 소리를 예쁘게 내시네요." 아싸! 소녀 감성! "그런데 대충 넘어가는 부분이 많네요."

나는 첫 번째 선생님이 대단히 깐깐한 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분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함부로 그 분을 '지옥의 피아노'니 뭐니 투정했던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 분이 지옥이라면 이 분은 그야말로 '지옥의 가장 아래층', '신조차 잊어버린 곳', 불교식으로는 '아비 지옥', '규환 지옥'에 해당하는 분이다. 첫 인상은 약간 맹해보이는 노다메같은 분위기인데, 레슨 시간에는 해병대 독사 조교다. --;

일단, 앞의 두 선생님과는 달리 이 분은 어느 한 부분이 성에 차지 않으면 절대로 뒤로 넘어가지 않는다. '안 되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 연습을 시킨다. 앞의 선생님들과 레슨을 하다보면, '레슨 끝났습니다' 소리를 들으면 '벌써요?'하고 물었는데, 이 선생님과 레슨을 하면 내가 먼저 '아직 끝날 시간 안 됐나요?'하고 묻게 된다. 사실 처음에 등록할 때만 해도 이런 분 밑에서 스파르타 훈련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겪어보니, 이건 아닌 듯하다. --;

그래도 이 분과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 곡이 익숙해지자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 발목을 잡는다. 'river flows in you'에는 반복되는 멜로디가 몇 개 있는데, 등장할 때마다 묘하게 왼손 반주가 바뀐다. 앞에서는 '미 - 시 - 솔#'이었는데 뒷부분에서는 '미 - 시 - 솔# -시'이런 식으로 음 한 개 정도가 살짝 덧붙는다. 나는 아직 건반을 안 보면 심하게 미스터치가 발생하기 때문에 곡이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 싶으면 그 다음부터는 악보를 안 보고 건반만 보고 치는 습관이 있다. 이걸 선생님은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한 번 레슨 받을 때마다 '악보 보세요' 소리를 열 번은 넘게 듣는데, 그럴 때면 나도 항변을 한다. '어차피 악보 보고 치면 더 틀려요. 건반을 봐도 미스터치가 나는데 악보만 보면 칠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래도 습관을 들여야 해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루마 이누마가 이런 식으로 살짝살짝 반주 패턴을 바꿔놓는 터에 전세가 갑자기 불리해졌다. "악보 왜 안 보세요?", "아니 머리가 좋아서 저절로 곡이 외워지는데 자꾸 뭐라고 그러시면 저더러 어떻게 하라고요.", "그럼 틀리지 마셔야죠." 강적이다. 나, 다루기 힘든 학생으로 정평이 난 사람인데... 고딩 때는 학교 교장하고 학생주임도 나 함부로 못 건드렸는데... 교수님들도 내가 질문하면 쩔쩔맸었는데... 이렇게 쉽게 나를 다루다니...

하루는 또 악보 안 보고 치다가 "여기서는 '시' 안 쳐요."라는 소리를 듣자 나도 모르게 외마디 탄성이 터져나왔다. "아오 썅!!! --;  아니, 왜 이렇게 반주를 살짝살짝 바꿔놨대?" "원래 작곡가들은 똑같이 반복 안 해요. 그건 작곡가의 자존심이에요." 정말 그럴까? 가령 바그너의 악극 탄호이저 서곡은 '순례자의 합창'의 선율로 시작한다. 히틀러가 무척 좋아해서 본인이 행사에 참가할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울려퍼지게 했다는 그 선율. 그리고 마지막도 '순례자의 합창'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관악기의 선율은 그대로이지만 바이올린 반주 패턴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처음 등장할 때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이지만 마지막에는 그 긴장을 해소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 같은 패턴으로 바뀐다. 이 정도의 변화라면 나는 얼마든지 용납한다. 곡을 어렵게 썼다는 이유로 작곡가를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막돼먹은 인간이 아니다. 이루마의 곡이 물론 내게는 어렵지만 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중'이나 될듯말듯한 난이도일 것이다. 어려운 곡 썼다고 때려야 한다면 쇼팽은 멍석말이를 당해야 하고 리스트는 조리돌림을 당해야 한다. 그밖에 능지처참해야할 작곡가도 수두룩하다. 곡의 어려움은 숭고한 극복의 대상이지 내가 짜증을 낼만한 어떤 사안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건 경우가 다르다. --; 도대체 '시' 한 음 넣었다 빼는 게 어떤 음악적 효과를 발휘하는가? --;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나처럼 악보 잘 안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 골탕먹이기 이하도 이상도 아닌 것 같다. --; "선생님, 아무래도 이루마 만나면 뒷통수 한 대 때려야겠어요." --;

그래도 이런 우여곡절 끝에 얼추 음악 비스무리한 소리가 내 손에서 나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습의 묘미가 안 될 때는 정말 온갖 짜증이 다 생기는데, 그 과정을 극복해서 얼추 원곡의 느낌과 비슷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시점을 접하게 된다. 그때부터는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재미에 빠져 하지 말라고 해도 반복해서 치게 된다. 계속 치니 문제점은 점점 극복되고 소리는 더욱 만족스럽게 들리고, 완전 부익부 빈익빈 현상 같은 게 피아노 연습에도 성립한다. 나도 그 시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루마를 만나면 정중하게 사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곡을 만든 분을, 내 미천한 손가락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뒷통수를 때리겠다는 생각을 했다니... 한 번 한 번 연습할 때마다 나는, 이루마여, 당신의 마음 속에 흐르는 강은 어떤 것인가? 잔잔한 시냇물 같은 강인가, 아니면 바람이 불면 해일처럼 변모하는 격정을 지닌 아마존인가, 설마 녹조라떼 흐르는 4대강은 아니겠지. 당신의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 속에 나도 발 한 번 담궈보고 싶다. 이런 것을 일컬어 소녀감성이라 부르는가? 이런 혼잣말을 되뇌였다.

그런데 그놈의 자식에게 흐르는 강물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2501


 

이루마하면 「River flows in you」인데 만들게 된 계기는.

     

2집에 수록된 곡인데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썼어요. 제가 그냥 텔레비전을 켜놓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나온 곡이거든요. '리버 댄스(River dance)'라는 아이리시(Irish) 춤이 있는데 영국에서 이 춤과 관련된 쇼를 해요. 탭 댄스같이 다리만 움직이고 팔은 뒤로하고 막 떼로 나와서 추는 뭐 그런 건데. 화면에 그 쇼 광고가 나오는 거예요. 심심해서 아무거나 치고 있는데 문득 제 손가락이 그 리버 댄스를 추는 것처럼 보이길래 트릴을 넣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곡을 만들어갔어요. 그래서 제목에 'River'라는 단어를 넣었고 흐르는 느낌도 나서 'Flow'를 붙였죠.
 
뭐냐 이건? --; 그런 거였냐? 그동안 내 마음 속에 떠올렸던 강물들의 이미지는 다 뭐가 되는 거냐? --; 갑자기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안 되겠다! 너 좀 맞자!"

며칠 전에 학원 3주년 기념파티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처음 보는 20대 여자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다. 등록한 지 3일, 레슨 한 번 받았고 피아노는 처음 배운다고 한다.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 뭐냐고 묻자 이루마의 'river flows in you'라고 한다. 아직 이루마의 쓴 맛을 못 봤군 하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가 일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도전해보시라고 말을 건네는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보았다면 아마도 악마의 미소로 보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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