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봉사에 의미감을 불어넣는 방법
15분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시간을 쏟을까?
1. 책을 선정하는 데 최소 1시간이 소요된다.
도서관이나 서점, 동네 책방에 오고 가는 시간은 제외한다. 순수하게 여러 책을 보고 읽고 생각해 보는 시간만 잡아도 최소 한 시간이다. 이번주에 들어갈 학급에 전달할 만한 내용인지, 필요한 주제인지, 검토하고 직접 읽어봐야 한다.
2. 집에서 내 아이들에게 리허설하는 데 30분이 소요된다.
책 읽어주는 데 무슨 리허설까지 하냐고 할 수 있지만, 필수다. 내 아이와 학년이 같지 않아도 같이 그 학년을 생각하면서 읽어본다. 아이들의 반응, 질문 등도 예상할 수 있다. 15분 내에 읽기에 내용이 너무 많거나 적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어떻게 조절해서 읽을지도 미리 판단할 수 있다. 2~3권을 같이 읽고 그중에서 아이들의 의견에 따라 최종 한 권을 선정하기도 한다.
3. 당일 10분 일찍 도착하고 15분을 읽는다.
책 읽어주는 활동은 8시 55분에 시작하지만,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도록 10분 전 도착을 해야 한다. 회원들 간 인사도 하고, 서로 무슨 책 가져왔나 이야기도 하고, 노란 앞치마도 입는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8시 54분이 되면 각 학급에 들어가 책을 읽고 나온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하기 위해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만 해도, 대략 2시간이다. 이동시간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이 활동을 위해 하는 시간만.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이 가치 있게 느껴질까?
물론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봉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가 있다. 모든 회원들이 그 마음으로 학부모동아리에 가입했을 것이다. 다양한 어른들이 각양각색의 목소리로 읽어주는 골고루 맛있는 책. 직접 교실에서 아이들과 책 읽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구에게? "아이들에게"
나는 "회원 자신에게" 의미가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좋은 활동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자신을 뿌듯해하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읽을 책을 고르다 자신이 감동받는 그 순간을 의식하길 바랐다. 그러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를 소망했다.
방법은 단순하다.
내가 한 일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
대략 2시간을 이미 사용한 회원들을 30분 더 붙잡았다. 리뷰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교실에서 나온 회원들이 그 책을 들고 다시 도서관 의자에 앉았다. 우리끼리 둘러앉아 몇 학년에 어떤 책을 읽었는지 소개하기로 했다. 아이들 반응이나 질문은 어떤 것이 나왔는지도 얘기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또한 신기한 그림 다시 한번 보고, 서로 생각하는 것을 나누게 되었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가,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나름대로 요약하고 정리했다.
책 표지 사진과 함께 책 제목, 저자, 출판사 정보 그리고 회원이 입으로 얘기하는 것들을 옮겨 적었다. 최대한 말한 그대로 적으려 하였으나 길게 말하는 회원대로, 짧게 말하는 회원대로 입말을 적으려니 머릿속이 바빴다.
어떤 책인지 대략의 소개글을 넣거나, 특이한 아이들 반응이나 질문이 있으면 그것을 넣었다. 그리고 그림만 한 번 더 봤다거나,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거나 하는 내용은 꼭 넣었다.
이렇게 어느 출판사 신작도서 홍보 팸플릿처럼 만들어 우리 회원들 뿐 아니라 전체 학부모에게 공유했다.
이를 통해 얻은 명확한 효과 중 두 가지만 말한다면, 회원 스스로가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느낀다는 것과 다른 학부모들로부터 응원을 받아 더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같이 얘기하니까 더 재미있다.", "서로 책을 나누니까 우리가 스터디하는 것 같다." 등의 반응이 생겨났다. 그리고 다른 학부모들도 좀 더 관심 있게 보게 되고 아이와 얘기 나눌 거리가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내가 힘들었다. 언젠가는 학부모 동아리 대표 자리를 누군가에게 인계해야 할 텐데, 이렇게 입말을 들으며 요약정리하는 작업을 넘기면 안 될 것 같았다. 문화로 자리 잡으려면 지속가능한 시스템이어야 했다. 모두가 편하게 기록하면서 공유할 수 있고, 또 의미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기록과 공유 방식을 한 번 더 진화시켰다.
오늘의 한 문장을
필사해 보세요.
백 마디 말보다 한 문장의 힘이 강할 때가 있다.
필사는 글쓰기의 입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 생각 한 줄 쓰기가 두려울 때, 나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 어느 책의 한 문장을 베껴 쓰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회원 각자가 아이들과 읽은 책에서 의미 있는 한 문장을 고르거나, 또는 자신이 생각한 메시지를 "오늘의 한 문장"으로 직접 쓰게 했다. 나는 포스트잇을 나누어주면 된다. 회원들은 도서관 의자에 앉자마자 펜을 들고, 책을 다시 한번 들추며 신중하게 한 문장을 작성한다. 그리고 동아리 회원 단체대화방에 각자가 사진을 찍어 올린다. 그러면 그날 담당이 아니었던 다른 회원들도 올라온 사진을 보며 좋은 책을 읽었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주기도 한다.
우리에게 서로 읽어주면 어때요?
어른도 다른 사람이 책 읽어주면 참 좋다.
아이들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반응이 아니라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읽어줬던 책을 이제 회원들을 위해 읽기로 했다. 물론 아직은 어른들 앞에서 읽어주는 게 어색해서 한 페이지씩 넘기면서 설명하듯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 권씩 여섯 권을 오롯이 읽고 나누어야 남는다. 나는 한 권을 읽어주러 왔지만, 총 여섯 권의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양한 주제에 놀라고 색다른 작가들을 만나게 되고, 무엇보다 회원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감동하게 된다.
활동 리뷰라기보다 이젠 스터디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나는 이전처럼 리뷰 포맷에 책 표지, 제목, 작가명과 출판사명을 적는다. 그리고 회원 각자가 올린
사진을 보고 '오늘의 한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전체 학부모와 공유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일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바로 자신이 의식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다. 학부모의 재능기부, 봉사 활동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그것을 학부모 자신이 의식하고 보람을 느끼려면 누군가는 기록하고 공유해야 한다. 자기 자신이면 더 좋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