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키운 지 만 3년이다. 두 마리에서 시작해 우리 집 닭장을 거쳐간 닭들이 열 마리가 넘는다. '거쳐간'이라고 표현한 데에는 두 가지 경우다. 첫 번째는 수탉이너무 시끄럽게 울어서 다른 집에 보냈거나, 들고양이에 의해 실종된 것을 말한다.
야트막한 뒷산과 연결되어 있어 딱따구리나 물까치새, 가끔 만나는 청설모도 참 반갑다. 하지만 눈빛부터가 범상치 않은 그 들고양이는 어른인 나도 움찔하게 만들었다. 다섯 마리의 닭이 그 녀석 혹은 그 녀석의 친척에게 당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씩집 닭장의 울타리를 좁히고, 그물로 하늘을 막고, 더 견고한 기둥을 만들면서 진화시키는 것이다. 닭들의 안전을 위해서.
1세대 닭들은 한껏 자유를 느꼈었다. 예쁘고 쾌적한 조립식 닭장에서 숙식만 해결하고, 언제든 열려있는 문 밖으로 나와 마당을 헤집고 다녔다.
2세대 어린 병아리들을 합사시키며 내놓았다. 얼마 지나지않아, 검은색 들고양이 한 마리가 석축 옆에서 호시탐탐 닭들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때, 처음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래도 운동장은 넓게 해 줘야 한다며 뒷산으로 넓게 울타리와 그물망을 쳤다. 날이 좋을 땐 울타리 문을 활짝 열어 뒷산에도, 앞 밭에도 다녀오라고 허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들고양이 한 마리가 가장 어린 중닭 한 마리를 낚아채갔다. '꼬억~~' 하는 비명소리와 뒷산으로 나있는 길에 떨어진 하얀 속 깃털들. 그다음엔 울타리 문을 굳건히 닫고 산책을 금지시켰다. 한 번은 철새 소리에 놀란 닭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라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그 넓은 울타리 위를 그물망으로 덮었다. 몇 주 있다가 마음이 약해져 한낮에 산책을 시켰는데 한 마리가 또 실종됐다. 얼마 안 있다가는 사방이 울타리가 처져있는 울타리 안으로 들고양이가 들어와 내가 가장 애정했던 1호 암탉의 목숨을 앗아갔다. 물고 가진 못해 땅에 묻어주기라고 한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가온 주말에 모든 울타리과 그물망을 걷어냈다. 남편이 목공소에 가서 목재를 사 와서 이틀에 걸쳐 닭장에 이어 붙일 운동장을 만들었다. 그물로 덮고 위아래 빈 틈 없이 타카를 쳤다. 양심 없이 닭 사료를 공유하던 참새들이 들어올 만한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조치는 들고양이로부터 닭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유로움과 안전함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우리 가족은 이웃집에서 얻은 달걀을 얻어와 부화시키면서 다짐했다. 이 좋은 환경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키우자고. 뜯어먹을 풀들이 지천에 널려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냐고. 더우면 나무 그늘에서 흙목욕하다 오고, 배고프면 풀이나 벌레를 잡아먹도록 하자고. 인증받진 않았어도 이들이 낳은 알이 바로 난각번호 1번 자유방목 유정란 아니겠냐며 스스로 뿌듯했었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은 점점 크기가 작아졌다. 밤에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근사한 닭장 하나 지어주고 그들의 자유를 지원했던 초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미 자연과 자유를 맛본 우리 집 닭들은 내가 사료를 주러 다가가기만 해도 문 앞에 쪼르륵 마중을 나온다. 나보다는 '열린 문'을 기다린 것이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안전한 울타리에서 편안하게 놀고먹고 하다가 알도 잘 낳아주면 참 좋겠는데, 닭들은 일단 후의 일은 잘 모르겠고 밖에 나가서 마음껏 풀 뜯어먹고 뒷산을 누비고 싶은가보다.
무엇이 더 옳은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아마 앞으로도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아이들에게도 자유와 안전 중에 어디에 더 비중을 둬야 할지 매 순간 매 상황에서 고민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유와 불확실성을 추구할 것이냐 프레임에 속하면서 안정성을 추구할 것이냐가 많은 순간 충돌한다.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그 판단은 다를 수 있으나 중요한 건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일과 상황에서 주체인 사람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무엇을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 어떻게 다른 편의 것을 최소한이나마 지켜줄 수 있는지 고민해 보는 것. 결국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깨닫는다.
그나저나 닭과는 어떻게 소통하지? 직접적인 대화는 안 되지만 그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날이 적당한 오전 시간에 산책을 시키고 나는 옆에서 지키고 서있는다. 뒷산에는 못 올라가게 길목을 차단하고 이제 막 세상 빛을 본 여린 풀들을 가차 없이 뜯어먹는 것을 지켜본다. 그러다 낯선 소리가 나면 닭들은 고개를 쳐들고 경계하고선 부리나케 닭장 안으로 들어간다. 셀프 닭몰이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결과적으로 닭들에게는 최소한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며 감사하게 알을 받아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