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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May 03. 2023

암탉의 알 품기를 방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

포란의 자유를 뺏다

만 17개월이 된 암탉 화이트가 포란(알 품기)을 시작했다. 살랑대는 봄바람이 느껴지던 4월 중순 무렵, 흰색 털이 고급스러워 눈에 띌 수밖에 없는 화이트가 자취를 감추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침, 점심, 저녁으로 지켜보니 정말이다. 포란을 시작했다. 그러한지 오늘로 2주 정도 되었다.


화이트는 지난해 봄에도 포란을 했었다. 말썽꾸러기 수탉들을 차례로 어딘가로 보내고, 암탉들만 고이 모시고 살 때였다. 수탉과의 교미 없이 낳은 무정란을 병아리 한 번 태어나게 해 보겠다고 며칠을 산란장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혹은 그 덕에 편히 병아리 얻어보려는 욕심에 유정란을 사다가 그 품에 넣어 줬었다. 그리고 세 마리가 태어났었다.


6번의 인공부화 전적을 통해 나는 인간의 이기심을 뼈저리게 느꼈다. 암탉선호사상에 분명하게 젖어있었던 것이다. 다른 곳에 보내버리는 수탉들에게 느끼는 미안함이 서서히 줄어든다는 걸 인지했다. 그래서 책임지지 못할 무차별적인 인공 번식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화이트가 포란을 하기 시작하자 나는 새로운 합리화를 했다. '이것은 인공부화가 아니라, 암탉이 스스로 포란하는 자연부화잖아!' 화이트의 욕구 충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남의 닭 알을 쓱 넣어주었다. 그렇게 세 마리가 무사히 태어났고, 쑥쑥 잘 자랐지만 암평아리 한 마리는 산책길에 집을 나가 돌아오지 못했고, 수평아리 한 마리는 성계가 되었으나 우리 집 1호 암탉의 목덜미를 무자비하게 공격해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다. 결국 남은 건 암컷 한 마리다.


이번엔 진짜 결심했다. 아무리 네가 포란을 한들 남의 알을 사다가 대리모로 만들지 않으리라. 너의 모성본능은 참으로 기특하지만 너희들의 세계에 간섭할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수컷이 나오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하기 싫고, 병아리들 또 언제 키우나 하는 염려도 하기 싫다. 포란을 하는 동안 호르몬의 변화로 알을 안 낳는 것도 싫다. 예쁘던 네 볏이 축 늘어져있는 것도 보기 싫다. 이것들이 내가 암탉의 포란을 방해하는 이유다. 나는 그냥 지금 있는 너희들만 고이고이 어여쁘게 키우다가 마지막까지 책임지리라.


화이트와 블랙은 포란(알 품기) 중


화이트와 같은 날 태어난 블랙은 화이트를 시샘해 포란도 따라 했다. 두 마리가 각기 자리를 잡고 열흘동안 꼼짝 않고 다른 닭들이 낳은 알을 품었다. 나는 하루 한 번 냉정하게 알을 수거했다.


"이건 무정란이야. 아무리 품어도 병아리 안 돼~"

"나와서 밥 먹어~ 뭐 해~"

"포란 그만해. 힘들어~"

"제발 그만해라. 너만 힘들잖아."


병아리가 태어날 수 없는 무정란을 품고 식음을 전폐하는 이 녀석들이 한심하다가, 기특하다가, 가엾다가 결국 사정을 했다. 알을 수거하러 가서는 이 두 암탉을 쫓아내기도 하고 품에 안아 쓰다듬고 어르기도 했다. 포란한 지 열흘쯤 되자 블랙은 포기하고 나왔다. 그러나 이 주째 된 지금도 화이트는 산란장을 떠나지 않고 있다.


포란 열흘째. 볏이 축 늘어졌다

자기 몸에서는 알이 나오지도 않는데, 다른 암탉이 낳아 놓고 간 알을 부드러운 가슴털 속으로 끌어 넣는다. 산란장 문을 열기만 해도 온 긴털을 바짝 세우고 몸을 부풀리고 꾸르륵꾸르륵 경계 어린 소리를 낸다. 매몰차게도 품을 들썩거려 알을 꺼낸다. 몇 시간을 품고 있어 적당히 따뜻한 알을 만지면 그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벌써 2주가 지났으니 어느 정도(일주일) 더 하면 병아리가 태어날 것이라 기대할까? 매일 새로운 알을 품으니 그때로부터 3주가 다시 시작되는 걸까? 때가 된 것 같은데 계속 알에서 부화가 안 되면 실망할까? 포기하긴 할까?


이 또한 인간의 이기심일 수 있으려나 싶지만, 그래도 이제 그만하자. 너의 포란의 자유를 빼앗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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